김명숙 서울대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주장…‘한국여성학’지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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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숙 서울대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로 알려진 경주 첨성대(瞻星臺)가 ‘여신의 신전’이었다는 새로운 연구논문이 발표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언론인 출신인 김명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이달 말 발간되는 ‘한국여성학’지에 게재되는 ‘첨성대, 여신의 신전’에서 첨성대는 한반도 최초의 여왕인 신라 선덕여왕이 시조여신 서술성모(성조)의 신전을 돌을 다듬어 우물 형태로 쌓아 올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주 첨성대(瞻星臺)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신라문화를 상징하는 건축물들 중 하나다. 흔히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로 얘기되지만, 그 실체는 아직도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고 있다.

김명숙 연구원은 이 논문에서 첨성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첨성대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존호 성조황고를 표상하는 여신의 신상이자 신전이면서 천문관측대이기도 하다. 첨성대는 우물인데 성혈·우물과 첨성은 신라인들의 신성인식에서 같은 의미연관체계 내에 있었다. 첨성대의 여신은 선사시대 위대한 여신에 뿌리를 둔, 신라 최고의 시조신이자 왕권의 수여자로서 신라의 정체성이기도 했던 서술성모다.

첨성대.

둘째, 7세기 전반 신라에는 최초의 여왕뿐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여신상들이 출현했다. 첨성대가 불탑형식의 새로운 추상적 여신상이라면 남산의 할매부처는 구상적 여신상이다. 이 여신상들은 최초로 여성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종교-정치적 배경을 말해준다.

셋째, 첨성대는 다양한 여신상징들이 합쳐진 우주적 신성체였다. 우물·성혈, 여성 몸과 성기, 동굴, 검파형 상징, 선돌 등이 그것이다. 특히 가운데 창구는 성모의 옥문을 상징하면서 자궁인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다. 그 내부는 자궁 속의 자궁으로서 가장 신성한 공간이며 서술성모의 거주처다. 서술성모의 현신인 첨성대는 하늘과 땅(산)과 바다가 서로 만나며 이어지는 위대한 우주적 어머니(Great Cosmic Mother)를 표상하고 있다.

첨성대 위에서 내려다 본 중간의 정자석과 12단의 흙바닥. 국립문화재연구소
넷째 천관녀는 첨성대의 여사제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첨성대의 형태와 관련해 현재 학계에서 가장 공감을 얻고 있는 견해는 우물설이다. 첨성대는 우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첨성대의 정체를 밝히는 데 있어 ‘여성’은 필수적인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대에 지어졌고, 우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의 공간이자 여성 생식력(성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신라 시대의 우물은 건국과 관련될 만큼 절대적인 상징이다.

신라 건국의 주역으로 ‘이성’(二聖)으로 존숭된 박혁거세와 알영은 둘 다 우물 옆에서 탄생했다.신라에서 우물이 원래 여성과 관련됐음은 알영정, 재매정 등 여성 이름이 붙은 우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첨성대 남쪽 개구부주변과 안쪽. 국립문화재연구소
박혁거세를 낳은 우물은 나정인데 나정은 계정이란 이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닭은 서술성모의 상징이므로 혁거세를 낳은 우물의 여신은 서술성모가 된다. 이는 서술성모가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다른 탄생설화와도 부합한다. 서술성모가 건국신화에 성모로 동원됐다는 사실은 그녀가 신화생성 당시 신라의 가장 강력한 여신이었음을 시사한다.

신라의 여신전통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 금장대 암각화, 울주 천전리 각석, 포항 칠포리 암각화 등에는 여성 성기를 그대로 묘사하거나 상징하는 문양들-(역)삼각형, 마름모-이 많다. 모두 여신의 상징들이다. 

첨성대 각 단의 퇴물림(돌을 안쪽으로 조금씩 들여쌓는 법을 말함). 국립문화재연구소
선덕여왕의 즉위는 여신문화가 쇠퇴하면서 가부장제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종교ㆍ정치ㆍ사회적 변동의 과정에서 징후적으로 발생했다. 우호적이지 않은 대내외적 환경에서 여왕을 옹립한 세력은 여왕에게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존호를 올렸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성조황고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여신”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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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우여신상
그 결과 즉위초기인 633년 궁궐 서쪽에 성조황고의 상징물로서 첨성대가 건립됐다. 황제여신(황고)이 시조여신 서술성모(성조)의 신전을 돌을 다듬어 우물 형태로 쌓아 올린 것이다. 당시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불탑형식도 취했다.

첨성대는 또 서술성모의 몸을 표상하는 여신상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느껴왔듯 첨성대의 곡선은 여체를 닮아있다. 첫 눈에 첨성대를 연상시키는 토우 여신상과 검파형 암각화는 첨성대가 여신상임을 실증적으로 알려준다. 검파형 암각화는 선사시대 지모신을 상징하는 여신상이다.

김명숙 연구원은 “신라문화는 우리들이 참고할 ‘오래된 미래’로서의 여러 독특한 측면들(성평등, 폭력적이지 않고 심미적인 남성성, 협치와 공동체성, 평화지향성 등등)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신라문화의 아직 잘 드러나지 않은 소중한 측면들을 총체적으로 그려보고, 이를 한국사회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지난 7월 초 이화여대 초청으로 온 네덜란드 여신연구 학자와 함께 첨성대를 방문해 그녀의 견해를 들었는데 제 논문의 내용과 일치되는 해석이었다. 여신의 신전으로서의 첨성대는 세계적인 새로운 관심거리로도 부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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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파형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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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 할매부처상.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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