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이 시행되면서 농촌 지역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주민 전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경북 대부분의 농촌 지역의 경우 지자체에서 근무라는 공무원들의 소비로 지역 경제가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법 시행 후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면서 지역 경기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크다.

실제 봉화 송이 축제를 앞둔 봉화군에서는 축제 환영 만찬을 취소했으며, 29일 읍면장 회의에서 읍면별로 예정됐던 읍면 체육대회도 전면 취소했다.

일부에서는 모임을 하려 해도 좁은 지역에서 서로 안면을 아는 사람들끼리 부딪쳐 오해를 받을 바에 괜한 오해도 받지 않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근 대도시에서 하자는 공무원들도 있어 당분간 농촌 지역에서는 연말 등의 특수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영양이나 청송군 지역의 경우 대구나 안동 등에서 모임을 갖고, 울진이나 영덕군의 경우 인근 포항에서 모임을 갖거나 만나겠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저녁 그야말로 농촌 지역 술집은 된서리를 만났다.

평소 분주했던 식당가와 술집에는 손님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한산했으며, 주점이나 노래방은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양읍의 한 음식점은 평소 싼 음식 가격에 20평 남짓한 실내에는 북적이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으나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저녁에는 한 명의 손님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 김모(여·59)씨는 “우리 집은 음식 가격이 저렴해 평소 예약을 하려는 전화가 많았지만, 오늘처럼 손님이 없기는 처음”이라며 “오히려 싼 가격에 김영란법 시행으로 손님들이 몰릴 것으로 봤으나, 가격에 상관없이 식당에 손님이 없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청송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이모(49)씨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이 씨는 “그나마 식당들은 오늘 몇 팀의 손님들이라도 받았지만, 주점은 아예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였다”며 “농촌 지역 경제는 지금까지 공무원들에 의해 좌지우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무원들이 몸을 잔뜩 움츠리면서 농촌 전반에 경기침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에 공무원들은 동감은 하지만 혹 1호 대상자가 되지 않을까 아예 오해받지 않도록 사람들을 만나지도, 먹지도 말자는 입장이다.

봉화군에 근무하는 모 공무원은 “이번 주말 송이 축제를 앞두고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들로부터 축제장에 놀러 가겠다는 전화는 많이 오고 있지만,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을지 걱정돼 28일부터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며 “지역 경제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시행 초기 시범 케이스에 단속이나 애매모호 한 상황을 피하려고 모든 약속을 취소하거나 심지어 축제 기간 다른 지역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가려는 직원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안동시의 모 공무원도 “김영란법 시행 후 우스갯소리로 공무원들과는 이제 만남도 모임도 같이 하지 말자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며 “투명 사회를 만든다는 취지도 좋지만, 오히려 너무 공무와 관련 없는 사생활에까지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 같아 외톨이가 될까 우려스럽다”며 걱정했다.

공무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들만 움츠러든 건 아니다.

영덕에서 사업하며 공공기관의 각종 위원회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모(60)씨는 아직 시행령과 판례가 없는 상태에서 조심스럽기만 하다.

김씨는 “사업을 하면서 공공기관의 각종 위원회 등 사회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김영란법에 공공기관 위원회 위원들도 법 적용 대상이 된다는 얘기에 사업상 공무원들과 관련 없는 사람들도 함부로 만나지 못하게 됐다”며 “지금까지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각종 활동을 했지만, 사업에까지 지장을 받을 것 같아 그만둬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얘기했다.

예천 군민체전을 앞둔 예천군은 체육회에서는 군민체전을 앞두고 기업들로 받아 오던 경품 찬조 등을 아예 받지 않기로 했다.

예천 군청의 한 공무원은 “군민체전은 군민들의 화합을 위한 잔치로 꼭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지자체 직능별 체육대회 행사와 축제에 대해 법의 유권해석이 확실히 나오지 않아 김영란법에 오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아예 차단해 행사 규모를 축소했으며, 아예 오해되는 찬조 경품 등 받지 않기로 해 주민들의 참여가 떨어지거나 외면할지 걱정”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정형기 기자
정형기 기자 jeonghk@kyongbuk.com

경북교육청, 안동지역 대학·병원, 경북도 산하기관, 영양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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