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모니터 속 글자들이 내 처분만을 기다리는 듯 모여 있다. 크고 작은 글자들은 제각각의 개성을 살려주어야 하기에 수십 가지의 서체들을 대입시켜 보지만 영 마뜩잖다. 한참을 이 옷, 저 옷으로 바꿔 입혀 보다가는 정해진 결론처럼 고딕과 명조로 마무리한다.

모두들 제 나름의 일을 하고 살아간다. 나는 글자들을 배열하고 다듬는 일을 한다.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던 시절에는 틀에 박힌 글자 모양만도 충분했던 때가 있었다. 컴퓨터가 보급되고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수많은 글자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고딕과 명조는 글자체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고딕은 제목 글자체로 탁월하다. 우직하고 곧은 획은 어떠한 역경에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어 본문을 이끌어 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글자체이다. 그에 비해 명조는 약한 듯 부드럽지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날카롭게 전달하는 글자체로 본문으로서 믿음이 가는 체다.

생각해 보니 강인하고 고지식한 고딕과 부드러운 척, 날카로운 명조는 우리 부부를 닮아 있다.

결혼 초, 새 신부는 예민한 명조 같았다. 어려운 시어머님, 동갑내기 시동생과 함께 시작한 신접살림은 숨소리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시어머님과 오도카니 지낼 아내가 안스러워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출판 일을 배우게 했다. 돈벌이를 하는 직장은 당당한 외출이 허락되는 일이었고 무섭고 버거운 시어머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회사에서 대하는 남편은 성실하고 유능했다. 출장이 잦아 늘 퇴근이 늦었지만 한 달에 서너번씩은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시어머님께 서운했던 투정도 시집식구들의 험담도 남편은 달게 받아주었다. 하지만 어머님의 편에 서는 일도 없었거니와 내 편 서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아는 것인지 모른 척하는 것인지 남편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무뚝뚝한 고딕같은 남자였다.

어머님이 계신 우리 집에는 시시때때로 시집식구들이 모여들었다. 사시사철 모여드는 객식구들로 늘 시끄러운 장터 같았다.

첫 아이를 임신해서 산달이 가까워 올 즈음이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떠났었다. 무거운 몸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음에도 시집식구들은 그다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서열순위가 낮은 탓에 여행지에서의 허드렛일은 모두 내 차지였다. 씩씩한 나를 모두들 ‘씽씽고’라며 대견해했지만 겪어내야 하는 나는 죽을 노릇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짐을 풀었다. 이제야 쉴 수 있겠다는 희망에 찬물을 끼얹듯 “식구들 끼니 먹여 보내라”는 시어머님의 엄명이 떨어졌다. 배는 쇳덩이를 엎어 놓은 듯 무거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식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뒷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깊은 밤이었다. 잠든 남편 곁에 고단한 몸을 뉘이니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그때였다.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아무 말 없이 퉁퉁 부은 내 다리를 한참동안이나 주무르는 것이 아닌가, 빙그레 웃는 남편의 눈을 마주하며 나도 그만 활짝 웃고 말았다. 든든한 타이틀인 고딕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본문을 정리하듯 명조를 보듬어 주었다.

시숙의 이혼으로 혼자 남겨진 조카딸아이는 당연히 할머니가 계신 우리 집으로 옮겨왔다. 아이는 오랜 시간 부모의 불화에 찌들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누나, 언니와 같이 지내게 되어 좋아라 했다. 조카는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 보였다. 뒤처진 공부가 신경 쓰여 학원도 보내보고 아들과 함께 지도도 해보았지만 놓아버린 공부는 떠내려간 신발짝처럼 되찾을 수 없었다. 내 아이에 맞춰 줄을 팽팽히 당길 수도, 조카에 맞춰 느슨히 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명확한 해답을 찾지도 못한 체 속앓이만 하고 있었다.

조카가 딱해 우리아이와 격을 주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조카는 차츰 눈치만 늘어갔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같이 키우는 일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때쯤에야 느꼈던 것 같다.

조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를 할 즈음이었다. 시숙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시점이라 나는 조심스레 남편에게 조카 문제를 의논했었다. 남편은 내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는 아빠의 곁으로 돌아갔다.

남편의 결정에 단 한번도 반발하지 않았던 내 약발이 제대로 먹힌 셈이었다. 남편은 내가 자기 손바닥 위에 있다는 얘길 자주 한다. 하지만 사실은 남편이 내 주먹 안에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나 있을까, 때론 제목으로서의 고딕이 명조로 아우러진 본문의 예리한 지시어라는 것을 둔하디 둔한 고딕이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어머님과 함께한 오랜 세월, 말 못할 고단함으로 우울해 하고 있을 때 토닥토닥 등 두드려 주는 남편이 아니었다면 어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남편은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지만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남자다. 고지식하지만 아내에게만은 예외가 되어주는 유일한 내편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라곤 없을 것 같이 딱딱하고 메마르지만 허트러지지 않는 꼿꼿한 고딕 같은 남자다. 때론 자기 주관이 강해 내 속을 태울 때도 있지만 내가 누구던가, 약한 듯 부드럽지만 예리한 명조가 아니던가, 큰소리로 다투지 않고서도 지혜롭게 대승한다.

고딕을 제목으로 야무지게 채워 나갈 명조의 작품을 기대하시라, 우리는 천생연분이다.



■수상 소감

▲ 김현지씨= 동서문학상 입상, 경북일보문학대전 2015년 가작 당선.
느릿느릿 목적지도 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지치지 않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멀고 먼 길을 걸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도착합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긴 호흡을 합니다. 가을바람이 너무도 향기로워 오래도록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턱없이 모자란 재능을 열정 하나만으로 꿋꿋이 버텨내기란 욕심을 버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버렸더니 채워지더라는 비움의 진리를 터득한 기분입니다.

글쓰기란 ‘고품질의 신경안정제’라고 일러주시던 선배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이 신통한 약을 거르지 말고 매일 복용하리라 다짐해보지만 게으름은 살그머니 약봉지를 밀쳐내고 맙니다.

부끄러운 글을 작품이라 읽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선생님 그리고 선배 문우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아름다운 가을날, 나의 영원한 고딕과 함께 소중한 추억 엮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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