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씀이 탄핵소추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될만한 충분한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짧은 이 지면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죄는 큽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물론 국민의 기대와 여망을 깡그리 져버린 것입니다. 저는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실망감을 역력히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잘 될 것이다. 카리스마 중에서 가장 위력이 강한 것이 유전된 카리스마이고, 우리나라의 정치 실정에서는 박근혜의 카리스마적 정당성이 상당한 순기능을 발휘할 것이다”라고요. 막스 베버가 한 이야기를 그렇게 아전인수, 견강부회했던 것입니다. 그 말이 웃음거리가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요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인선에서부터 여지없이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떻게 하면 나와 내 가족의 인생이 더 행복해지겠는가”라는 것에만 평생 골몰해온 인사들만 골라 쓰고 있었습니다. 국민이 원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사지로(生死之路)에서 오직 나라의 안위만을 염려하고 “신(臣)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공복(公僕)을 원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요구를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이니까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정 하기도 어려울 만큼 청개구리 갈지자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의 탄핵 정국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위세와 특권을 누리며 갑질을 일삼던 자들이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전락해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 대통령의 놀라운 본색(本色), 그리고 그 허깨비 대통령을 둘러싼 모리배들, 그들의 죗값을 논하는 일이 매스컴의 주 임무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흡인력이 있었던지, 온갖 드라마나 예능 프로들이 모두 손님을 잃고 마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저부터도 그랬습니다. 듣고 또 듣는 거였지만 도대체 물리지도 않았습니다. 아, 이렇게까지 나라가 시궁창에 떨어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심란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한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멉니다. 어지러운 마음들을 정리하고 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오전부터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탄핵소추 과정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저는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영화였습니다. 첫사랑, 모정, 운명, 그리움, 생명의 의미 등을 잘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입니다. 제 트라우마를 건드릴 것이 두려워 차일피일 10년 넘게 미루어 두었던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두어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영화에서 만나 인생은 참 슬프고 아름다웠습니다. 우리 인생은 본디 그렇게 슬퍼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다 함께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