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임금 섬기지 않는다"…죽음과 바꾼 '불사이군'의 존재

서후면 교리

조선건국 61주년이 되는 1453년 10월10일은 조선역사에서 큰 분수령이 되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이 발생하여 수양대군이 김종서 ·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은 10월 18일 사사하였다. 10월 15일 정난공신에 수양대군 · 정인지 · 권람 · 한명회 · 신숙주 등 총 43명을 선정하였다. 1455년 을해년(乙亥年)에 세조가 대권을 장악한다. 이들 세력은 훈구파로 지칭되면서 명종대까지 약 1세기 이상 조선정계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훈구파에 반대한 세력들은 절의파로 사육신과 생육신을 배출하게 된다. 

1456년 병자년(丙子年) 6월 2일에 박팽년·하위지 등의 단종복위운동을 김질과 그 장인 정창손이 고발한 사육신사건이 발생하였다. 1457년 6월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유배도 잠시 9월에 경상도 순흥에 위리안치되었던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단종은 목을 매 자진하였다. 야사에 의하면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현재 장릉(莊陵) 자리에 안장했다고 한다.

교지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운동의 현장인 순흥의 죽계천은 ‘정축지변(丁丑之變)’으로 무수한 인물들의 핏물이 흘렀던 아픔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죽계천은 안축의‘죽계별곡’과 이황의 ‘죽계구곡’으로 유명한 곳으로 현재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감아 흐르고 있다.

세조에게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신하들이 생육신인데, 곧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남효온 등을 말한다.‘생육신(生六臣)’ 남효온의‘추강집’에 수록된 ‘육신전’에서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류성원ㆍ유응부 등의 ‘사육신(死六臣)’이 비롯되었다.

이후 사육신은 숙종 때에 사육신 6명의 관작을 회복시키고 민절서원을 지어 이들의 위패를 안치하였다. 영조 때에는 김문기ㆍ박중림 등의 관작도 회복되었다. 현재 노량진 사육신 묘역에는 김문기를 포함해 모두 일곱 명의 무덤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박팽년과 유복손 박일산

순천이 본관인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자는 인수, 호는 취금헌(醉琴軒)으로 충남 회덕 출신이다. 박팽년은 학문과 문장·글씨가 모두 뛰어나 ‘집대성(集大成)’이라는 칭호를 받았을 만큼 최고의 평가를 받은 인물로 명분과 의리, 도덕성을 몸소 실천한 최고의 충신이었다.

순천박씨의 시조는 박영규이다. 그는 견훤의 사위로, 후백제 건국과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해 개국공신이 되었다. 순천박씨 중시조는 박팽년의 고조부인 박숙정(朴淑貞)이다. 박숙정은 강릉 경포대(현 경포대와 위치가 다름)를 건립한 인물로 5남을 두었는데 다섯째가 원상이다.

박원상(박팽년의 증조부)의 4남 가운데 3남 박안생이 박팽년의 조부이다. 증조부와 조부모의 묘가 대전시와 세종시에 있는 것으로 보아 박팽년의 선조는 충청도에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단종복위운동으로 박팽년 일가는 멸문지화를 당했다. 그의 아버지 박중림과 형제들인 박인년, 박기년, 박대년, 박영년도 처형됐다. 또한 아들 박헌·박순·박분이 모두 처형되어 삼대가 참화를 입었다. 이와 함께 그의 어머니·처·제수(弟嫂)·딸 등도 공신들의 노비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기적적이며 드라마틱한 일이 발생했다. 박팽년이 죽을 때 아들 박순의 아내 이씨와 박팽년의 여종이 같이 임신 중이었는데, 이 여종이 이씨에게 말하기를 “마님께서 딸을 낳으시면 다행이겠으나, 아들을 낳는다면 쇤네가 낳은 아기로 죽음을 대신하겠습니다.”하였는데, 이씨가 해산을 하니 아들이었다. 딸을 낳은 여종이 맞바꾸고는 이름을 박비(朴婢)라 짓고 길렀다.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이 일을‘청장관전서’에 기록하여 대장부다운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덕을 드러내어 칭송했다.

▲ 류동학 혜명학술원장
이후 이모부 이극균이 이 사실을 성종에게 알려 성종이 이름을 비에서 일산(壹珊)으로 고쳐주었다. 그 후 박일산은 묘골 순천박씨 충정공파 입향조가 되어 경상도 묘골(달성군)에 정착하게 된다. 박팽년이 복관된 것은 숙종대인 1691년(숙종 17)이다. 1758년(영조 34)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정(忠正)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560년 내력의 박팽년 가문의 세거지로 성장한 묘골(달성군 하빈면)에는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사육신 사당인 ‘육신사’와 ‘태고정 (보물 제554호)’ 안평대군의 친필인 ‘일시루(一是樓)’ 또한 박중림의 사당과 사육신을 제향했던 사액서원 ‘낙빈서원’ 도 있다.

묘골마을 입구에는 ‘사육신기념관’과 ‘삼충각’이라 불리는 선생과 아들, 손자 3대의 충절을 기린 정려각도 있다. 또한 도곡재(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2호)와 삼가헌(중요민속자료 104호)도 중요한 문화재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 부부의 묘소와 후손의 묘, 박일산을 몰래 키웠던 성주이씨 외조부모의 묘도 이 마을과 인근에 있다.

취금헌 선생의 18대 후손인 9선의 국회의원과 3선의 국회의장을 역임함 박준규 의원과 박두을(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여사의 생가 터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은 박팽년 선생 탄신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택리지’에 ‘조선인재 반은 영남에서 나오고, 영남인재 반은 선산에서 난다’는 말은 선산이 인재의 산실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선산의 장원방(현 구미시 노상리, 이문리, 완전리 일대)은 개국 후 60년간 선산출신 문과 급제자 총 36명 가운데 12명을 배출됐다.

장원방을 빛낸 인물은 야은 길재의 제자 김치와 김치의 사위 정지담, 연안전씨의 시조 전가식, 생육신 이맹전의 장인 김성미, 농사직설을 편찬한 정초, 야은 길재의 문하에서 영남 사학파를 계승한 김숙자와 그의 두 아들 김종석과 김종직 등 면면히 대단하다.

그러나 장원방의 최고 가문은 진주하씨(晉州河氏) 집안이다. 하위지의 부친 하담과 그의 형제 하강지, 하기지 부자 4명 및 외조부인 유면도 장원급제하여 한 집안에서 5명(하담, 하강지, 하위지, 하기지, 유면)의 급제자가 나왔다. 막내 하소지는 소과급제했다. 아버지 하담은 부장원을, 하위지는 장원급제했고 동생인 하기지도 동반급제했다.

그러나 단종 복위를 꾀하다 단계 하위지 집안 전체가 화를 당하고 말았고 이후 장원방에서는 과거급제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후 선조대 김여물과 영조대 박춘보가 장원을 차지하여 장원방의 명성을 이어갔다. 단계의 유허비는 선산읍 비봉산 자락에 있다. 단계가 태어날 당시 집 앞 시냇물이 붉게 무려 사흘간에 이르자 훗날 자신의 호를 ‘붉을 단(丹)’과 ‘시내 계(溪)’를 써서 단계(丹溪)로 지었다. 단계의 유허비는 선산읍 비봉산 자락에 있다.

단계 하위지 선생 영정.
단계의 가문은 결국 단종복위운동으로 멸문지화를 피할 수 없어 두 아들, 호와 박도 처형당했으며 아내와 딸들은 노비로 전락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조카 하포, 하귀동(동생 하소지의 아들), 하분(형 하강지의 아들)은 살아남았다.

그 당시 7세인 하귀동은 뒤에 이름을 하원(河源·1451년~1518년)으로 개명하고 하위지의 양자가 되어 외가(봉화 금씨)가 있는 봉화군으로 피신하였다가 그의 장인 권개의 고향인 경상도 안동에 정착하였다. 그 후 하위지는 숙종 때 복권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됨과 동시에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현재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 단계의 18대 종손인 하용락씨와 종부 강순희씨가 고택체험과 발효식품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교리에는 1809년 창렬서원으로 승격된 강당에서 불천위 제사(기일 음력 9월 8일)를 모시고 있다. 단계는 국불천위가 내려진 교지가 있는 드문 예이다.


사육신 중 현재 박팽년과 하위지만이 직계 후손이 전한다. 그 밖에 사육신 가문의 가까운 친인척 중 살아남은 인물은 이개의 종증손이 살아 남았다. 바로 이개의 숙부지만 세조편에 선 이계전의 후손들로 그들은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이고 종현손은 북인 당수 이산해였다.

성삼문은 본관이 창녕으로 함흥차사로 유명한 성석린의 동생인 성석용이 성삼문의 증조부이다. 성삼문은 부친 성승과 형제들 성삼빙, 성삼고, 성삼성과 아들 성맹첨, 성맹년, 성맹종 등이 모두 처형당하여 그의 후사는 끊겼다. 가까운 친척으로는 그의 당숙(5촌) 성희의 후손들이 살아남아 현존하고 있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성담수가 성희의 아들로 성삼문의 6촌 동생이었다.

외손으로는 사육신 류성원의 친척인 류자미의 아들에게 출가한 손녀의 후손과 매제 박림경에게 출가한 여 동생의 후손이 현존하고 있다. 성삼문의 고모부는 한혜( 개국공신 한상경의 아들)로 한명회의 당숙이 된다.

역대 최대급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게이트’로 대한민국이 지진이 일어 난 듯 국민들이 수치심과 어이없음으로 허망해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충신은 어디에 있는가? 사육신과 생육신의 정신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위정자는 있는가? 있다면 대답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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