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정조는 조선 전기의 세종과 함께 개혁을 추진 한 학자풍 성군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소통을 위한 ‘편지 정치’로 유명하다. 정조가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였던 심환지에게 ‘비밀편지’를 보내 회유하고 설득한 사실은 그의 정치력이 어떻게 발휘됐는 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심환지는 1793년(정조 17) 이후 이조참판·규장각제학을 거쳐서 이조·병조·형조의 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벽파의 영수였다. 지난 2009년 2월에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가 처음 공개되면서 왕이 국정 현안에 대해 심환지와 편지를 보내 미리 의논하고, 정책을 추진한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정조가 심환지 한 사람에게 보낸 어찰만 무려 297통이나 됐다.

정조는 1794년 편지 서문에 편지정치, 문자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남겼다. “군왕은 친밀하지 않으면 신하를 잃는다. 남들보다 현명한 신하를 사사로이 대한 까닭은 사사로이 대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인의 은미(隱微:겉으로 드러나지 않음)한 뜻은 온 세상을 진작시키고 뭇 호걸을 일어서게 한다. 이 어찌 뒤이어 임금 노릇 하는 자가 모범으로 삼아 승계해야 할 일이 아니랴?”

왕이 정치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가까운 신하에게 공식적인 관계를 넘어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 것이 잘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신들과 비공식적으로 국정을 논의하는 사적인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이다.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도 본받을 만한 은미의 소통 정치다. 문 대통령은 미국 방문 전 첫 국무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11조2천억 원 규모의 추경은 국회에 제출된 지 오는 6일로 한 달이 된다. 여당과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경이라고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현실성 없는 ‘알바추경’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방미 성과를 자화자찬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당정, 여야 간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겠다던 대통령의 여론에 힘을 기댄 밀어붙이기 식이 아닌 정조 같은 진정한 소통의 정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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