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야구 최강 쿠바가 자랑하는 핵타선은 '괴물' 류현진(21.한화) 앞에서 딱총처럼 딱 두 번 터졌다.

23일 우커송야구장에서 벌어진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쿠바 타선은 한국대표팀 선발 류현진에게 속수무책으로 묶였다.

전날 미국과 준결승전에서 홈런 4방을 쏘아 올리며 10-2로 대승했던 쿠바였지만 류현진의 바깥쪽 체인지업과 낮게 깔리는 직구에 당황한 듯 1회부터 8회까지 타이밍을 전혀 잡지 못하고 움찔하기 일쑤였다.

0-2로 뒤진 1회말 2사 후 미켈 엔리케스가 류현진의 높은 커브를 힘으로 잡아 당겨 좌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솔로 아치를 그리고 1-3이던 7회 말 알렉세이 벨이 역시 커브를 받아쳐 좌측 스탠드로 솔로포를 추가했을 뿐이다.

8회까지 단 4안타에 묶여 공격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쿠바는 2-3으로 뒤진 9회 안타와 볼넷으로 1사 1, 2루 마지막 역전 찬스를 잡았다.

들쭉날쭉한 스트라이크존으로 장난을 치던 푸에르토리코 출신 카를로스 레이 코토 구심이 명백한 스트라이크를 몇 개씩이나 볼로 판정한 탓에 류현진을 볼넷을 내줘 1사 만루에 봉착했다.

그러나 구원 정대현이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유격수 병살로 처리하고 승리를 지키면서 류현진의 역투는 다시 생명력을 되찾았다.

겁없이 던지는 류현진의 괴력투는 캐나다를 넘어 쿠바까지 정복했다. 9전 전승으로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퍼펙트 우승'을 달성하면서 그는 김광현(20.SK)과 더불어 이번 대회 강력한 최우수선수 후보다.

한 차례 완봉 포함 두 차례 완투승. 그것도 모두 1점차 승리. 보통 담력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본선 풀리그에서 4승 고지를 거두는 데 가장 고비로 쳤던 15일 캐나다전에서 9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산발 5안타 무실점으로 역투, 1-0 살얼음 승리를 지켰던 류현진은 8일을 푹 쉬고 등판한 쿠바와 결승전에서 절묘한 변화구로 다시 한번 상대 타선을 농락했다.

직구 최고구속은 시속 145㎞를 넘지 않았지만 볼 끝에 힘이 있었다. 우타자 바깥쪽에 낮게 깔리면서 쿠바 타자들은 뻔한 직구였음에도 제대로 받아치지 못했다.

직구 위력이 산 건 역시 전매특허인 체인지업이 오른손 타자 쪽에서 가장 먼 쪽으로 잘 떨어진 덕분이다. 류현진은 5회까지 매회 삼진을 낚는 등 탈삼진 7개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자신감. 류현진의 최대 강점이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때 처음으로 성인대회 태극마크를 단 이래 올림픽 전까지 5경기에서 1승1패 평균자책점 5.71에 그쳤지만 최종예선에서 패했던 캐나다와 15일 5개월 만의 리턴매치에서 멋지게 설욕한 뒤 확실히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다.

류현진은 이날 8⅓이닝 동안 2점을 주면서 8회까지 매회 선두 타자를 한 명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홈런도 2사 후 방심하다 허용한 것으로 그만큼 타자와 승부에 강한 집중력을 뽐냈다.

15일 캐나다전 승리 후 "타선 지원이 없어 불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가 못 던지면 질 것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던졌다"던 그였다. 대표팀 에이스로 책임감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타자의 심리를 이용해 밀고 당기는 솜씨는 이미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철저히 당겨치는 쿠바타자들의 심리를 역이용, 바깥쪽에 집중하게 만든 뒤 몸쪽 떨어지는 변화구로 헛방망이질을 유도했다.

때리고 싶은 욕심이 강한 쿠바 타자들은 원바운드 공에 힘없이 방망이를 내뻗으며 씁쓸함을 다셨다.

데뷔 첫 해이던 2006년 사상 처음으로 프로야구 신인왕과 최우수선수를 동시에 석권한 그는 올해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리며 국내 최고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세계적으로 급성장한 그는 '일본 킬러' 김광현과 함께 '미국.쿠바 킬러'로 향후 국제대회에서 큰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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