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도매시장을 살리자(2)

포항농협이 죽도시장 내 운영하는 채소공판장에 새벽 경매가 한창이다.

지난 2001년 개장한 포항 북구 흥해 농산물도매시장에는 채소판매장이 있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텅 비어있다. 면적 1천400여㎡(약 440평)에 달하는 채소판매장은 보도블록과 비가림 시설뿐이다. 마치 버스 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바로 옆 건물인 청과동과는 눈에 띄게 차이 난다. 도매상 한 사람이 하루 구매하는 채소 양이 차량 판매로 이뤄질 만큼 많지 않은데도 트럭 판매장으로 지은 것이다.

◇ 수년 째 텅 빈 도매시장

버스 터미널처럼 건축된 포항시농산물도매시장 내 채소판매장. 바로 옆 건물로 지어진 청과동과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건물 완공에만 국비와 시비 등 330억원의 혈세를 쏟아 부은 포항 농산물 도매시장은 개장 전부터 논란거리였다.

처음에는 채소에 수산물도 입주할 예정이었으나 '수산물 위판장을 옮기면 동해안 최대 재래시장인 죽도시장이 죽는다'는 여론에 시는 개장을 코앞에 두고 취소했다.

여기에 채소공판장까지 시설 문제로 경매사와 중도매인들의 원성을 사며 사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것.

포항지역 채소 경매는 포항농협이 죽도시장내 운영하는 채소공판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곳 역시 건물이 20년 이상 돼 노후한데다 시장 안에 위치, 길이 좁아 주차는커녕 차량 진입도 어려울 정도다.

포항농협과 포항시는 도매시장 내 채소판매장 시설을 보완해 입주하거나 현재의 청과동에 합류하는 방안 등을 놓고 그동안 수차례 논의했으나 아직까지 제자리다.

이희재 포항농협공판장장은 "죽도시장은 도매상들이 채소와 양념류를 함께 팔 수 있는 등 이점이 많아 사실 중도매인들이 도매시장 입주를 원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포항시는 도매시장 내 청과 도매법인 3곳에 채소도 취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좋은 채소를 골라낼 전문성을 갖춘 경매사를 짧은 시간 안에 확보하는 일과 함께 구매 경쟁력을 지닌 중도매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포항시농산물도매시장 김한중 관리사무소장도 "각 법인들로부터 채소를 취급하겠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받아놓은 상태이나 조속히 성사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 법 테두리 밖 거래 농산물 많아

새벽마다 죽도시장 주변에는 채소를 한 가득 실은 트럭들이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차량에 실린 농산물은 산지 수집상들이 생산자에게 직접 구입해 죽도시장에 파는 채소이다.

포항시농산물도매시장에 채소공판장을 옮기는 일 보다 더 시급한 사안은 시장에 바로 풀리는 이 죽도시장의 새벽시장 농산물을 끌어들이는 문제다.

포항농협 등에 따르면 이들 산지 수집상들이 파는 채소양은 하루 죽도시장에서 거래되는 채소 양의 80~90%에 달한다.

죽도시장이 동해안 최대 재래시장인 점을 감안하면 포항지역에 풀리는 채소 대부분이 도매시장이나 공판장을 거치지 않고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산지 수집상이 차량으로 파는 농산물은 포항과 경주, 영천, 영덕 등지의 영세 농민들이 재배하는 채소이다.

이들은 생산자들이 소비지 정보에 어두운 점을 악용,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해 공판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만큼 값을 쳐주지 않는다.

탈세의 온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검찰이 최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내 경매 비리 의혹에 칼을 뽑을 수 있는 건 공영도매시장이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포항농협 채소공판장 손진식 경매사는 "피땀 흘려 농사를 지은 농민을 생각해서라도 법망을 피해 거래되는 새벽시장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며 "포항시가 불법주차 단속만 제대로 해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 도매시장도 수도권 집중 심각

포항시 농산물 도매시장은 부지 면적 8만4천53㎡(약 2만5천425평)에 건물 면적은 2만9천872㎡(약 9천36평)에 이른다.

결코 작지 않은 규모지만 전국 공영도매시장 32곳 중에 포항 농산물 도매시장보다 더 넓은 부지를 갖춘 곳이 11곳에 달하며 큰 건물을 가진 시장도 17곳이나 된다.

이처럼 전국 32개 공영 도매시장의 건물이나 부지 규모는 대형화돼 있다.

하지만 2008년 한 해 전체 취급물량 683만8천여t(청과기준) 가운데 3분의 1은 서울 가락시장이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3분의 2를 31개 도매시장이 나눠 처리하고 있는 것.

게다가 광역시 10곳과 수도권 4곳, 서울 강서시장을 제외하면 전국 중·소도시 16곳의 지방 공영도매시장이 취급하는 물량은 전체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특히 최근에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방 곳곳에 들어서면서 도매시장의 고객인 지역 중·소 상인과 재래시장 영업도 부진, 지방도매시장을 더욱 영세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지역 특성을 살려 선전하는 지방도매시장도 있다.

사과 주산지라는 강점을 키워 전국 제일의 사과 공급처로 자리 잡은 안동시장과 특례법을 활용해 전송판매, 친환경농산물 전문경매장 등을 운영하는 충남 천안시장이 좋은 사례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지방도매시장을 살리려면 지역 특색을 살려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동국대학교 식품산업시스템학과 권승구 교수는 "지방도매시장의 지역적 유통 여건을 고려한 특성화, 기능화한 시장으로의 재편성이 필요하다"며 "차별화 및 특화된 시장으로 역할 변신과 개선 노력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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