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예술 교육 현장을 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큐레이터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독일 최고의 포도주 생산지, 벤츠박물관, 우리에게는 발레리나 강수진으로 더욱 친숙한 슈트트가르트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발도로프 학교에서 어린 왕자를 만났다.

영어, 수학 예체능 과외에 치일대로 치며 돌아치는 우리 아이들과 너무나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같은 지구상에 살고 있지만 다른 별에 온 듯 착각이 들 정도의 이곳 어린 왕자.

'유럽의 문화예술 교육과 사회복지'라는 주제를 머릿속에 넣고 취재를 하면서 이곳에서 만난 한 한국인 학생의 간단명료한 한 마디 "자유, 최고에요"라는 말을 잊을 수 없다.

독일 슈트트가르트청소년극단의 연극배우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몸을 부대끼며 농구를 하던 이 아이가 학교생활에 대해 묻는 질문에 가쁜 숨을 내쉬며 한 치의 망설임도, 거리낌도 없이 불쑥 내뱉은 한마디, 그것은 선진 유럽 교육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대변해 준다.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은 항상 얽매여 있었고 바빴다는 그는 이곳에서 경쟁하지 않고 음악, 미술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핀란드 헬싱키 시립도서관, 노랑머리 소년이 친구를 찾아 도서관으로 뛰어들었다. 도서관이 친구를 찾아오는 놀이터가 된 것이다. 도서관에서 커피도 마실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둥이 있는 구석으로 책상을 끌고 가서 밀린 공부도 할 수 있다.

스튜디오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핀란드 헬싱키 시립도서관.

뿐만 아니다.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며 레코딩까지 할 수 있어서 도서관에서 자작 음반도 구워낼 수 있는 복합 문화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아난탈로예술학교,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대표적인 공공 문화예술기관이다. 이곳에서는 내년 1월 초까지 헬싱키 아테네움 아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전시회에 맞춰 어린이들이 직접 그리고 만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획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곳 2층에는 피카소의 작품 '책 읽는 여인'과 똑같은 대형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조각조각 해체 조립해 놓았지만 정면에서 보면 피카소의 작품 그대로여서 이 조형물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만져볼 수도 있게 해 놓은 것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어려운 피카소의 그림도 잘 이해 할 수 있게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 교외에 위치한 꺄뿔라음악학교는 아이들에게 좋은 취미생활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목적으로 생긴 학교다. 이 학교는 학교라기보다 작은 방들이 여러 개 들어 있는 음악교습소처럼 생겼다. 이 학교 2층의 두어 평 남짓한 방에서는 파블로 사라사테의 곡 찌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의 힘찬 바이올린 선율이 막 흐르고 있었다.

이 학교 출신의 한 고등학생이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유아기 때부터 음악교육을 시작하고 있다. 한 방에서는 엄마는 물론 아빠들도 4~5살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와서 교사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도 추며 일찌감치 감성교육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 학교의 학생이 되고 청소년기까지 이곳에서 유능 음악교사와 1대1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이 학교의 교육 목적은 대학진학이나 연주가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과 함께 인생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현대미술관도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체험 교육도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존 모데나(Zon Moderna) 프로젝트'라는 10대들을 위한 미술교육도 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작가와 20명의 학생, 1명의 예술교육자로 구성된 예술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완성된 작품의 관리, 보수까지 다양한 것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게 짜져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일본 가나자와 미술관에서도 벤치마킹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스웨덴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뿐 아니라 성인을 위한 시민교육 또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북유럽의 특수한 교육활동은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상명하달식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의 요구에 따라 계획이 수립되고 활동이 펼쳐진다. 이러한 문화 예술활동의 조직은 스웨덴 민주주의의 토양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유럽 각국들은 창의력의 바탕이 되는 문화예술활동에 사회 어떤 분야보다 우선적으로 재원을 배분하고 유능한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 21세기는 창의력이 경쟁력인 시대다. 문화예술활동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은 미래의 복지사회를 만드는 씨앗뿌리기 작업인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이 대부분 어린 시절 문화생활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인 여가생활을 즐기는데도 적극적이지 못하다.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술을 느끼고 감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연주회장이나 미술관을 찾는 것도 어색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교육이 입시에 얽매여 문화예술활동은 의미 없는 학습 활동 쯤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핀란드, 스웨덴, 독일 등 선진 유럽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을 사회 복지 측면에서 공적 영역의 핵심으로 끌어들여 지원하고 장려하고 있다.

유럽 각국들의 문화예술 복지서비스를 통해 우리의 문화예술 정책 현실을 돌아보고 나갈 방향을 모색해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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