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한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겨울의 상징인 12월은 가을과 임무 교대식을 막 마친 상태다. 들녘과 산하를 물들이던 가을의 긴 여운은 자취를 감췄다,겨울바람은 어느새 숲에 정착했다. 엽서 같은 단풍이 사라진 키 큰 나뭇가지를 타고 숲으로 소리 없이 다가왔다겨울 숲은 고요하다. 마치 숲의 정령이 높은 하늘에서 내려와 숲을 지배하는 듯하다. 높고 시린 겨울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전나무 사이로 동화 같은 풍경이 숲을 맴돈다. 고요와 침묵이 내려앉은 겨울 숲은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온 시간이 기나긴
‘삼경(三更)에 눈을 뜨니 가을이 숨을 죽이고 있다.사방은 고요하고 옅은 어둠이 숲을 감싼다.밤새 가을은 한로(寒露)를 맞이하고나뭇잎은 찬 이슬에 단풍들 준비를 한다.’가을이 깊어간다. 어느새, 찬 이슬이 내리는 한로(寒露)이다. 곧 찬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이 다가온다.밤새 찬 기운이 소리 없이 내리고, 가을은 정적에 휩싸였다.깊은 새벽,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 자지러지다가 바람결따라 멀어진다.모두가 잠든 시간, 누가 황망한 시간을 맞이하고 있을까?밤새 불청객 역병이 찾아온 것일까.코로나로 잃어버린 가을이 우리를
1990년에서 2020년, 30년이 지나갔다. 2020년에서 2050년, 다시 30년이 기다리고 있다. 경북일보가 30주년을 맞으며 새로운 30년을 맞이한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30년을 지나왔다. 지난 30년 전, 지역 언론 발전을 다짐한 경북일보 호(號)는 힘찬 기적을 울리며 출발해 ‘30주년’이라는 중간 기착지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몰아쉰 열차는 다시 달려갈 30년을 향해 숨을 고르고 있다.고도성장의 가파른 상승에 IMF라는 좌절, 2002 월드컵의 환희, 촉발지진 피해 등 숱한 세월이 30주년 역사에 고스란히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 영일만에 내리는 햇살은 눈 부시다. 귀중한 손님을 기다리듯, 영일만을 가득 채운 은빛 바다가 빛나고 있다.쏟아지는 햇살은 바다에서 춤추고, 하얀 파도는 끊임없이 포구로 밀려든다. 광야(曠野)에서 초인(超人)을 기다리듯, 영일만은 흰 돛단배 타고 올 귀인(貴人)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영일만 7월 햇살은 이육사(李陸史)의 청포도를 영글게 한다. 강렬한 햇살은 영롱한 청포도에 알알이 박혀 부서지고, 마침내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간다.‘칼의 노래’ 김훈 작가는 햇살이 자전거 바퀴살에 부딪혀 부서지는 영일
코로나19 공포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인류에게 코로나19는 지구 상 어떤 물리적 전쟁보다도 더 강력한 위협이 되고 있다.코로나19는 ‘선진국’과 ‘후진국’,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지성인’과 ‘비 지성인’, ‘명예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지금까지의 재난과 같이 가진 자는 예외일 것이라는 인간의 잣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래서 코로나19는 평등하다는 역설도 들린다.세계는 코로나19가 닥치기 전부터 각종 전염병과 맞닥뜨렸고 그에 대한 혹독한 대가도 치러왔다.스페인 독감과 페스트 등이 창궐하면서
지진의 긴 터널을 지나니 코로나 세상이 펼쳐졌다.땅이 취한 듯 흔들리는 순간을 못 견뎌 하며 정신없이 달려왔다.더러는 놀란 가슴을 부여안았고, 누구에겐 그토록 원하던 무대가 됐다.원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는 달리는 지진 열차의 승객이었다.비좁은 객실에 갇힌 사람들은 또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어떤 이는 현실에 불만을 쏟아내기 급급했고, 또 다른 이는 실현성 없이 내뱉는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즐거워했다.같은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지진 열차는 어느새 ‘코로나19’ 열차로 이름이 바뀌었다.짧고 강렬한 흔들림에
‘도시는 신종 코로나로 정적에 갇혔다. 붐비던 도로는 한산해 길을 잃었다. 시민들의 유쾌한 일상적 언어는 생기를 잃고 마스크 뒤로 숨어들었다.’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구와 경북에 창궐해 도시를 휩쓸고 있다. 도시의 거리는 인적이 끊기고 숨죽이듯 조용하다.최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인간의 자부심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백신’이라는 대응무기를 갖지 못한 인간은 무방비 상태에서 바이러스에게 자비심을 구걸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인간이 인간을 소멸시킬 수 있
2020년 경자년(庚子年), 흰 쥐의 해가 시작됐다.쥐는 십이지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동물로, 방위의 신이자 시간의 신이다. 우리 민속에서 쥐가 다산과 풍요, 영민과 근면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됐다는 점을 부각한다. 쥐가 열두 동물 중에서 첫 자리인 것은 영민하기 때문이다.설화에 의하면 신이 동물들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켰다.다른 동물에 비해 형편없이 덩치가 작은 쥐는 정상적인 달리기를 해서는 꼴찌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쥐는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었다. 궁리 끝에 묘안을 찾은 쥐는 다른 동물들이
가을은 자연의 위대함에 경배하는 계절이다.추수를 마친 부부가 석양이 지는 들판에서 기도를 올리는 밀레의 만종이 떠오르는 가을이다. 지나간 봄과 여름은 위대했노라고 가을은 말한다. 봄과 여름이 있었기에 가을이 존재하는 것이다.그러기에 가을엔 경건한 촛불을 밝혀야 한다.올해는 유난한 태풍이 가을을 할퀴고 지나갔다. 가을 상처는 인간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빛과 바람, 인간의 수고로움이 결실을 맺는 가을이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결실에 경건한 마음으로 일용할 양식들을 거둔다.환희보다는 엄숙함이 찾아
추석이 왔지만, 추석 같지 않다(秋夕來不似秋夕).들녘엔 누렇게 익은 벼가 지난여름을 견뎌온 세월을 자랑하듯 황금 들판을 이룬다. 자랑스레 고개를 쳐든 벼들은 손에 손에 선물을 들고 귀향하는 자식들을 마치 내 일처럼 반긴다. 한곳에서 태어나 자란 자식들은 부모 품을 떠나 광야와 같은 도시 객지 생활의 성공담을 부모들에게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형제들은 또다시 한곳에 모여 추억을 소환하며 보름달과 함께 밤새도록 정담이 익어간다. 부모들의 흐뭇한 눈길이 자식들을 향하며 주름진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피어오른다.황금 들녘의 벼들도 초가와 함
반도 국가 한국이 주위 국가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북한 미사일 발사와 일본의 백색 국가 리스트 한국 제외, 러시아와 중국 폭격기 한국 방공식별구역 비행, 중국 사드 보복, 미국 한미훈련 방위비 증액 요구 등이다.이것은 반도 국가로서 겪어야 할 필연이다. 해결책은 힘을 기르는 방법 밖에 없다.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길목이다.지구촌은 대륙과 해양으로 이뤄져 있어서 두 곳을 이어주는 반도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지중해와 유럽대륙을 잇는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일찍이 찬란한 인류의 문명을 꽃피웠다.그리스·로마 문명이 그것이다.
유월의 마지막 날 오후, 남북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DMZ)에는 평화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긴장과 대결의 장소인 DMZ에서 남북과 미국이 함께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했기 때문이다.이날 남·북·미의 깜짝 DMZ 만남으로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힘겨루기에 들어갔던 한반도 비핵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따라서 비핵화에 이어 한반도 통일이라는 염원을 이뤄야 하는 남과 북은 이제부터 서로를 알아가고 인정해주는 소통의 길을 활짝 열어야 한다.분단 이후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선’과 ‘악’으로 존재해오고 있다.
오월의 자연은 푸르다 못해 당당하다. 봄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오월의 신록도 아름다움이 온 누리에 가득하다. 자지러지듯 쏟아지는 햇살, 연둣빛 자연은 짙어만 간다. 생명의 푸름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나뭇잎은 햇살에 반짝이고 가지는 허공으로 몸짓을 가르며 춤을 춘다. 오월의 세상은 푸름으로 가득하다.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푸른 들판 가득 피어오르는 오월의 향기에 세상은 흠뻑 젖어든다. 찰나마다 푸름을 더해가는 신록은 생명의 기운으로 감싼다.그래서 오월은 축복이다. 오월의 자연은 땅 위에만 있지 않다. 오월의 짙은 생명력은 땅
포항에도 봄이 왔다. 포항의 봄꽃은 울음 같은 붉음을 토해낸다. 공포의 지진이 지나간 자리에도 봄꽃들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영일만에 해맑은 태양이 떠오르면 포항의 봄꽃은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켠다. 바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봄바람에 꽃잎을 내민다. 그날, 지축이 흔들리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박완서 작가가 6.25 피난길에서 만났던 꽃들을 생각나게 한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0년대 초반, 작가 박완서는 피난길에 나섰다가 북한군을 피해 어느 시골 빈집에 숨어든다. 때...
겨울 산자락에 찬 바람을 달래던 따사로운 햇살이 붉은 노을과 함께 서산으로 넘어간다. 햇살이 떠난 겨울바람은 기세등등해지고 계곡에는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낮 동안 북적이던 등산객은 어둠이 내리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리고 겨울나무는 홀로 남는다. 또다시 긴 겨울밤을 인내해야 한다. 햇살의 눈치에서 벗어난 찬 바람은 더욱더 차가움으로 무장한다. 이윽고 어둠과 함께 홀로 남은 나무를 포위하고 위협을 한다, 다시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나무는 알고 있다, 내일이 쌓이다 보면 봄이 온다는 것을. 봄이 오면 가...
대한민국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만든 ‘법’(法)이 불신을 받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인간은 원시시대를 지나 공동체를 이뤄 살면서 규칙이 필요했다. 공동체는 도시에서 거대한 국가를 이루며 날로 확장됐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던 인간은 인간들만이 집단을 이루는 공동체 삶을 선택하면서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법’이 탄생했다. ‘법’은 일정한 예의범절의 도덕 수준에서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공동체 삶을 위협하면서 그 욕망을 제어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욕망이 다양해지면서 법의 그물도 그만큼 세밀해졌다. 복잡 다양한 법...
계절은 또다시 가을을 지나 겨울로 치닫고 있다. ‘가을’과 ‘겨울’, ‘계절’과 ‘계절’의 사이엔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한반도 평화’와 ‘우울한 경제’가 그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남북과 북미회담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다. 반만년의 역사 동안 고작 70여 년 동안 분단의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은 영원히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아온 느낌이다. ‘도깨비 뿔’의 반공 교육을 받고 휴전선 철책 넘어 아득하게 펼쳐지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통일은 요원한 현실로 받...
실업률 증가와 고용감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자영업의 위기 등으로 나라 경제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국민은 왜 행복하지 못할까? 국가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 행복지수도 비례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본다. 국민총생산이 아무리 높아져도 빈부의 격차는 깊어만 가고 생존에 위협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빈곤계층은 오히려 가난할 때보다 사회적 비용이 많이 지출되기 때문에 점점 더 생활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후진국보다 선진국이 더 많음을 통계를 통해서 ...
언젠가부터 ‘남북 평화’ 분위기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남북 평화’가 오래전부터 얘기됐지만 됐지만 이번에는 예전과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숨이 막힐 듯 맹렬하게 우리의 삶을 위협하던 ‘폭염’도 다가오는 가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사계절이 뚜렷하듯, 한반도 역사에도 계절이 있다면 ‘핵무장’이라는 폭염을 지나 ‘남북 평화’라는 결실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결실은 폭염의 여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대전제가 있었기에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의 한반도 평화협상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여름 햇살이 맹렬하다. 대지를 적시던 물 폭탄이 지나간 자리에 마치 빼앗긴 집을 차지하듯 하다. 여름은 위대하다. 절정으로 치닫게 하기 때문이다. 곡식과 과일은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영글어간다. 녹음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간다. 여름이 없다면 결실의 가을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굶주리고 삶과 영혼이 황폐해질 것이다. 그래서 여름은 결실을 약속해 주는 보증수표이다. 순간의 불편을 이야기하기보다 자연의 흐름을 읽는 혜안이 필요하다. 자연의 리듬에 호흡을 맞춰야 한다. 인간도 자연 일부 이기에…. 올해 들어 남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