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포항의 젊은 문우(文友)들과 호미곶을 찾았다. 호미곶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관광지로 누구나 한번 찾고 싶은 곳이다. 한국 지도에서 동쪽으로 튀어나온 호미곶은 일설에 의하면 일제가 우리 민족의 기(氣)를 약화시키기 위해 토끼 꼬리를 닮았다고 했다. 그것에 반기를 들고 주장한 것이 우리나라는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이며 호미곶이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일반화되면서 어느 핸가 면 이름도 호미곶면으로 바뀌었다. 외지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으레 구룡포를 거쳐 호미곶으로 손님을 안내한다. 그러다보니 일 ...
더운 주말 오후, 시집 ‘청록집’을 들고 경주 건천 목월 생가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식물 이름을 매칸없이 적어보았다. ‘백일홍, 박, 메밀, 여주, 풍선덩쿨, 천인국(루드베키아), 석죽, 코스모스, 금송화, 분꽃, 개망초, 채송화, 비비추, 옥잠화, 천사의 나팔, 해바라기, 나팔꽃, 금잔화, 가죽나무, 참죽나무 ….’ 더위에 풀죽은 식물들의 이름을 적어보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시인이 엮은 ‘청록집’을 넘겼다. 목월 시인의 ‘박꽃’이란 시가 눈에 띄었다. ‘흰 옷자락 아슴아슴/사라지는 저녁답/썩은 초가지붕에/하얗게 ...
20세기 끝머리 1999년이었다. 난 새 차를 뽑았다. 그러면서 당시 일각에서 일던 30만 ㎞ 타기 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내심(內心) 약속했다. 그때 뽑은 차가 주행거리 30만 ㎞를 맞이한 때는 올해 3월 울산광역시에 들렀을 때였다. 30만 ㎞ 그 거리 안으로 참 많은 다리를 건넜다. 빨리 갈 수 있는 다리는 유혹이었다. 다리를 지나 서울, 인천, 강원도 등 우리나라 곳곳을 누볐다. 다리가 없는 경기도 제부도에 들어갔다가 물에 갇혀 썰물 때까지 섬에 갇히기도 했다. 그뿐만아니라 임진강 다리를 건너 개성 가는 길로 차를 올렸다가 ...
선배 문학인의 작품을 읽으며 무한한 감동에 젖을 때가 있다. 어느 한 작품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훌륭한 작품엔 생각의 독특함, 소재의 특이함, 유려한 문체를 비롯하여 작가가 살던 시대의 모습도 엿보게 된다. 그런 작품에선 우리 조상들의 삶의 양식이 문장에 섬세하게 용해되어 있음도 발견한다. 그렇기에 많은 지역에서는 문학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한다. 그 지역 출신의 유명 문학인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삶의 과오를 떠나 많은 돈을 들여 문학관을 짓고, 생가를 복원하고, 널리 홍보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한다. 문학 작품의 소재지 역시 ...
오래전이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의 신에 대해 아니 힌두교의 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은 신은 파괴의 신 시바(Shiva)였다. 파괴의 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 유지의 신 비슈뉴(Vishnu)도 있었다. 힌두교 사원에 들러 파괴의 신 시바신의 형상을 보면서 그들의 독특한 믿음을 엿보았다. 그러면서 이질적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우주는 파과와 창조의 신이 공존하기 때문에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했다. 새로 생기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관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편의 시 창작을 위해 잠을 못 이루었다만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창작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는 것에 자위하면서 스스로 만족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하나, 결론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일이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더라도 널리 알리는 데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질적 문제 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은 울산 남구청에서 후원하는 '2016 울산고래축제'에 다녀온 후였다. 인구 53만이 넘는다는 포항지역 문학판에서 나름대로 질 높은 지역문화...
여성가족부는 5월 둘째 주를 시작으로, 가정의 날(15일)이 있는 주를 매년 '부모교육 주간'으로 지정해 부모 교육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교육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했다. 지난 겨울, 오랜 기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관리자로서 교장과 교육장을 지낸 지인과 점심을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녀 이야기가 나왔다. 자녀는 잘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대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녀 중 따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사가 되겠다는 것을 말렸단다. 그 좋다는 교사를 말렸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정의 달 5월의 달력을 펼치자 활짝 핀 이팝나무, 아카시 하얀 꽃 저쪽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날', '성년의날' 등 사랑 넘치는 날들이 꽃처럼 환하다. '어린이날'이 들어 있는 올해 5월은 어린이들의 존재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된다. 정부는 어린이날 다음 날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국내 관광과 내수활성화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6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부모의 손길이 없으면 나들이를 스스로 할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연휴는 등교보다 고통스러운 날이 될 수도 있다. 어린이는...
물이나 협곡(峽谷) 따위의 장애물을 건너거나 질러갈 수 있도록 두 지점을 연결한 구조물을 다리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야 저쪽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를 것 같은 다리 저쪽 세상은 항상 미지의 세계였다. 궁금하고, 무엇인가 있을 것 같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도히 흐르는 물 위를 건너야 했다. 가고 싶은 저쪽까지 다리를 놓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동원돼야 하고, 큰돈이 들어가야 한다. 서울 한강의 강북과 강남을 잇는 다리도 그렇고 뭍과 섬을 연결하는 ...
직업의 사전적 정의는 '분업화된 사회에서 인간이 생활의 물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전문적으로 행하는 생업'이라 정리하고 있다. 산업의 발달에 따라 직업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인간의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그 진화 속도도 빠르고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직업도 태풍의 눈 앞에 머문 것처럼 요동치고 있다. 몇 년 지나면 인공지능 자동화 기계의 본격적 등장으로 지금 갖고 있는 많은 직업이 자동화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정교성, 협소성, 창의력, 예술...
최근 구글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우리나라 천재 프로 기사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기계의 한 종류라 여겼던 컴퓨터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으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인공지능의 발전을 놀라워하며 그 앞날에 대해 감탄과 경이, 더 나아가 충격적 두려움까지 갖게 하였다. 바둑은 오래 전 중국에서 출발하였다. 어느 한 순간 발명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인간의 머리로 개발 발전시킨 것이다. 바둑의 기본은 포...
여행을 준비하며 찾는 자료 중 하나가 여행지의 예술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그것은 오래된 습관으로 여행의 의미를 중후한 커피 맛처럼 향기롭게 한다. 남도의 강진을 찾을 땐 김영랑을, 제주도 서귀포 여행에선 화가 이중섭을…. 그러면서 그들이 왜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지, 어떤 작품을 그곳에서 창작했는지 알아보곤 그 흔적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먼 나라 여행도 마찬가지다. 지난 겨울 발칸에 속한 몇 개 나라를 여행했다. 여행하기 전 관광지에 얽힌 역사와 예술가를 알아보았다.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
연수(硏修)로 보스니아가 있는 발칸반도로 떠날 계획이다.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는 종편 채널에서 '꽃보다 누나'란 프로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발칸 여행의 불씨를 붙였던 아드리아 해 동편에 있는 나라다. 지금 은퇴 전후 세대들에겐 유고슬라비아란 이름으로 배웠던 나라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등 슬라브 민족이 결집된 연방공화국이다. 일천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 대전의 출발 진원지가 바로 발칸반도에 있는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다. 1914년 6월 28일이었다. 오스트리아 황...
"워낙 경제가 안 좋아 취업이 안 되다 보니까?"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주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은 취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넘친다. 책을 읽어야 할 도서관 열람실은 이미 취준생들이 차지한 지 오래다. 대학 졸업 시즌은 눈앞에 당도했지만 그 자리가 그리 즐거운 축제의 자리는 아니다. 우수하면 우수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걱정과 시름이 쌓인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취준생으로 취업이란 높은 절벽을 앞에 두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찬바람 부는 겨울 깊은 밤이다. 즐겨보던 교육방송의 다큐를 끄고 백석(白石)의 시집을 넘긴다.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생존하는 한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끝부분이다. 백석은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문인으로 활동하였다. 소설로 등단하였지만 주로 시를 창작했다. 얼마 전 1925년 초판...
새롭게 걸린 새해 달력을 본다. 분주하게 보냈던 지난 해 월말이 새해 첫 장 달력 속에서 작은 흔적을 남기며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사람들은 결심을 한다. 그 결심은 지난해의 잘못된 습성, 나쁜 결과, 슬픔 등과의 결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행복하기 위해 고통을 겪기도 하고, 행복하기 위해 회사에서 밤늦도록 야근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행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높은 산에 오른다. 그렇기에 새해가 시작되면 지난해보다 행복하고, 보람찬 생활이 될 수 있도록 나름...
오늘 하루가 사라지면 내일이 새롭게 오늘로 등장한다. 이 사실은 평범한 진리이면서 지구가 사라지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1632년 태생의 스피노자가 이런 말을 한 이후 아직까지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인간의 죽음으로 개인 삶의 종말은 왔지만 우주에 속한 지구는 그 끝이 어딘지 모를 곳으로 지금도 이동하고 있다. 양의 해 을미년(乙未年) 한 해를 보내는 12월에 들어서며 한 해를 결산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설계...
정말일까. 세계 농산물 교역량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커피란 사실이. 그 커피를 소비하는 곳은 가정이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카페다. 커피와 카페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 커피는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이 쌀밥보다 많이 애용하는 기호식품이 됐다. 예전에는 신도시가 들어서면 식당이 먼저 들어섰지만 지금은 커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카페가 들어선다. 내가 살고 있는 강변 효자마을에도 커피 전문 카페가 하나, 둘 들어서더니 이제는 그 숫자를 한 눈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니까 카페 옆집도 카페고, 그 ...
가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가을비는 수확하는 손길을 방해하기 때문에 반길 수 없는 손님처럼 여겼다. 지난 주말 단풍을 구경하러 형산강 상류 기계천을 따라 죽장 부근을 찾았다. 감나무는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색 물감을 칠하고 있었다. 흐린 날임에도 들과 산은 인간의 손으로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젖은 콩대를 손질하는 농부를 만났다. "요즘 가을비가 자주 내려서 걱정이네요" "어쩌겠어요. 하늘의 뜻인 걸…."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계절마다 높낮이를 조금씩 달리하며 흐르는 형산강 강물을 보...
역사란 무엇인가? 종종 이런 물음에 역사는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기록이란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다. 지난달부터 우리나라 정치판을 진원지로 언론을 달구고 있는 한국사 기술에 대한 문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며칠 전 택시를 탔을 때였다. 검인정 교과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사실 대부분 일반인들은 그 개념조차 잘 모른다. 국정교과서는 나라에서 테두리를 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국가에서 위촉한 사람들이 기술하여 국가가 저작권을 갖는 도서로, 국가적 통일성이 필요한 교과목 위주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