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손은 무엇을 하였을까? 떨어뜨린 볼펜을 줍거나 입을 가리고 웃는 것 외에 무엇을 하였을까? 간혹은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고 손사래를 저어 누군가의 말문을 막기도 했을 것이다.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도 했을 것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현관을 나서다 오물을 손에 묻히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무한하다. 그 일을 열거하기보다는 차라리 손으로 하지 못하는 일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 더듬어 ...
내가 그를 만난 건 십여 년 전이다. 나는 그를 자세히 지켜보고 있었고 그는 허공 같은 인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은 그의 군 입대 날이었다. 팬들을 향해 큰절을 하고 일어선 그의 젖은 눈동자를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그를 영원히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인기가 한창인 배우였으므로 그의 신상을 조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학력이나 가족관계, 여자 친구에 관해서까지 순식간에 내 눈으로 흘러들어왔다. 무엇보다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를 빠짐없이 조사했다. 그때까지 출연했던 드라마가 많...
이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러나 조금 전 각주를 바꿔달았으므로 불과 몇 분 전의 일이기도 하다. 내가 위암이라네,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내 귓전에 떨어졌을 때 나는 학교 도서관 3층과 4층 사이의 계단에 앉아있었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실내 계단이었는데 그 단단해 보이던 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현실인지 꿈인지 알아보려고 자꾸만 허공을 두드렸다.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처럼 반쯤 일어나다 주저앉기를 여러 번, 그 후로 어떻게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괴로워하는 법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된다. 삶에서 비슷한 점은 무엇이고 다른 모양은 무엇일까, 행복이 비슷하게 드러난다면 불행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말을 바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행복한 사람은 비슷한 표정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한 사람은 그 나머지의 표정으로 가지각색이다. 나의 아버지는 참 완고한 분이셨다. 완고하다는 말이 가진 고상한 품격과는 좀 다른 완고함이었지만 나는 그것도 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