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항해술로 무장한 스페인이 ‘무적함대’를 띄워 16세기 유럽 최강자로 군림한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잉카제국까지 식민지로 삼았다.1588년 5월, 스페인은 여세를 몰아 130여 척의 함대를 앞세우고 영국 원정길에 오른다. 2만7000명의 병사가 동원된 사상 최대 규모였다. 도버 해협에서 운명의 결전이 펼쳐진다. 영국은 전함 80척으로 맞섰다. 돛으로 항해하는 스페인 함대 갈레온선이 도버해협의 빠른 조류에 적응하지 못했다. 메디나 사령관은 스코틀랜드까지 북상한 뒤 뱃머리를 돌리도록 명령했다. 그 사이 영국의 작은 배들이 날쌔게 치
조선시대에 지금으로써는 가당찮은 팔도(八道) 사람들의 품성에 대한 사자평(四字評)이 있었다.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거울에 비친 미인)’이라 하고,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이라 평했다. 이 사자평 중에는 함경도 사람들에 대한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다)’라는 평도 있었다.태조의 물음에 정도전이 한 팔도특질 평이라 전한다. 그런데 함경도 출신인 태조가 함경도 사람의 특징이 ‘이전투구’라는 말을 듣고는 금방 안색이 붉어졌다. 그러자 정도전이 함경도는 ‘석전경우(石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전류(Current)가 아니라 돈(Currency)이야.” 2019년 개봉된 영화 ‘전류전쟁’(Current War. 감독 알폰소 고메즈). 토마스 에디슨은 직류시스템(DC)를 고집하고 있었다. 직원 니콜라 테슬라가 ‘장거리 송전이 가능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며 교류시스템(AC) 채택을 건의한다. 하지만 에디슨은 ‘교류 전기가 위험하고 전동기가 감당하지 못 한다’며 거절했다. 이미 에디슨은 1882년 뉴욕을 백열등으로 밝히는 등 전기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에디슨은 실망해 회사를 떠나는 테슬라의 가슴에
유럽 중세 폐가를 1유로(약 1500원)에 살 수 있다. 성주처럼 한번 살아보고 싶은 중세의 폐가가 1유로라니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1유로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사업은 폐가를 재생해 지방 도시의 인구 유출을 막아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시작됐다. 인구 감소로 빈집이 늘고 있는 이탈리아가 이 사업을 적극 받아들여 인기라고 한다.‘1유로 프로젝트’는 1유로에 집을 산다지만 구매자는 일정 금액 이상의 보증금을 내고 3년 이내 리모델링을 시작해 빈집을 정비해야 한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는 중세식
“신 홀로 아룁니다. 여진족은 미련해 한 번 원수를 맺으면 때마다 보복하기에 경솔히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황희, 맹사성과 함께 세종조 3대 재상이었던 허조(許稠). 그는 소수의견을 많이 냈다. 세종에게 성가신 존재였다. ‘허조가 홀로 아뢰다’는 뜻의 ‘독허조왈(獨許稠曰)’이 세종실록에 많이 등장한다. 여진족 정벌을 그가 홀로 반대했다. 정벌하면 여진족의 잦은 복수로 백성들이 고통받을 것이란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세종의 개혁정책에 반대의견을 많이 냈다. ‘대의의 반대쪽에 불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의가 있다’는 점
“지역구도는 반드시 해소돼야 합니다. 이대로 두고는 우리 정치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해서 선거법을 개정해주시기 바랍니다.”총성 없는 심리적 내전이다. 적어도 지도상에 색깔로 표시된 22대 총선 표심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극단적인 여소야대 국면보다 극명한 동서분열 양상이 더 우려스럽다.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4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지역구도 타파를 제안했다.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게 내각 구
“낙화야~!” 휘영청 달 밝은 밤 한 장정이 강가에서 소리쳤다. 그러자 부용대 절벽 위에서 강을 가로질러 만송정으로 연결한 줄에서 숯불 가루 불꽃이 비처럼 강물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굽이 돌아 흐르는 낙동강 밤 강물 위에는 깜빡깜빡 달걀불들이 유유히 흘러내려 온다. 배를 탄 선비들은 갓을 삐딱하게 고쳐 쓰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낙화(落火)에 취해 탄성을 지른다.‘하회야연(河回夜宴)’, 줄불놀이는 하회마을 만송정 숲에서 부용대 절벽까지 낙동강을 가로질러 줄을 연결하고 숯 봉지를 매달아 불을 붙이며 시작된다. 숯 봉지가 타오르며
“우리나라 정치는 시아파나 수니파의 대결 같다. 옆에서 보기에는 다 같은 이슬람이고 그게 그건데 자신들은 엄청나게 다른 것으로 주장한다.” (‘검사내전’ 김웅)운명이다. ‘그게 그것’인 정파와 인물 속에서 그래도 선택해야 한다. 비례대표 정당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그 선택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제대로 가려야 한다. 그게 유권자라는 이름의 대중이 처한 운명이다.세계 최고 교향악단 지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고고한 음악 평론가일까. 언론일까.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 많은 노인 관객이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아름다웠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는 흠 잡을 데 없었다. 특히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에 젊은 층은 열광했다. 편법과 특권이 사라지고 ‘절차적 공정’이 보장될 것으로 믿었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로 현대 민주주의의 출발을 알린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견줄 명연설로 평가됐다.하지만 실망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입시비리 의혹에 젊은 층은 좌절했다. 특히 ‘그들만의 리그’
인천 계양을은 4·10 총선 최대 관심 지역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원희룡 국민의힘 후보의 이른바 ‘명룡대전’이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계양을에는 명룡 두 후보 외에 안정권 무소속 후보가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안 후보는 이 후보가 형수에게 한 욕설을 확성기로 틀어대며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다.이 후보의 욕설에는 여성 비하를 넘어 여성 혐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형수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했던 이 대표가 지난 2일 유튜브 생방송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서울 동작을)를 향해 ‘나베’라 공격했다. 제1 야당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을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하는 소명이 운명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지난달 창당대회에서 당면 목표로 ‘검찰독재 조기 종식’을 내세웠다.노무현 대통령 때 불을 지핀 검찰 개혁이 본격 의제로 등장한 것은 공교롭게도 2019년 9월 문재인 정부 당시 이른바 조국사태였다. ‘외모패권주의’란 신조어를 만들며 ‘팬덤’을 형성한 조국 법무부 장관과 가족의 입시비리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부터다. 팬덤은 촛불과 함께 ‘조국수호’, ‘검찰개혁’ 구호를 들고 서초동에 집결했다. 그들은 ‘의혹
히포크라테스는 2400년 전 그리스에서 활동한 의사다. 그의 집은 대대로 의업(醫業)을 이어왔다. 당시에는 한방의 비방(秘方)처럼 의술을 남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히포크라테스에게 의술을 배우려고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히포크라테스는 그에게 의술을 배우는 사람에게 의술을 악용하지 않고 유익하게 활용하도록 선서하게 했다.“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로 시작해서 “나는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될 치료를 해주며, 절대로 해치거나 옳지 않은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눈부시다. 햇살 담은 4월 벚꽃은 유혹이다. 흰빛이 이리도 선정적일 수 있는가. 코끝이 꽃잎에 저절로 다가간다. 누군가를 유혹할 의지가 없다는 듯 향기는 미미하다. 그런데도 벌들은 쉼 없이 날아든다. 내 퇴화된 후각이 놓친 무엇이 있는가. 아니면 이 형광 빛 흰색이 그들을 유혹한 것인가.4월 초순의 햇살 좋은 오후는 벚꽃과 벌이 있어 여유롭다.“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그대가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그대가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봄의 정
산업생산의 두뇌에 해당하는 구상기능을 담당하는 연구소와 엔지니어링센터가 더 우수한 인력을 얻기 위해 수도권으로 이전하면서 산업도시가 단순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있다. 사회과학자 양승훈은 저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부키)에서 ‘구상과 실행의 분리, 공간 분업’으로 재조업의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획·연구개발 기능이 외지로 빠져나가 자동차·조선·화학 등 3대 산업의 메카였던 울산의 쇠락 징후가 뚜렷하다고 분석했다.현대자동차는 울산에 있던 연구소를 1990년대 경기도 용인 마북연구소로 옮겼다. 이후 기아자동차
“모든 선전은 대중적 형태를 취해야 하며 지적 수준은 가장 멍청한 이들의 머리에 맞춰야 한다.” 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이다. 그는 대중 선동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대중의 뇌리에 박힐 수 있게 단순화해야 한다고 했다. 대중이 이성을 가졌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은 여성적이어서 감정에 좌우된다며 감정 자극적 구호를 요구했다. 대중의 증오를 감정적으로 부채질하는 것이 나치의 선전선동 기본 지침이 된다.‘대중은 빨리 잊는다. 따라서 모든 선전선동은 단 몇 가지 상투적 공식으로 표현돼야 하고 끝없이 반복돼야 한다.’ 단순
제10대 총선이 끝난 뒤 전북 김제에 낡은 트럭 한 대가 등장했다. 간판이 있었다. ‘만고풍상상회’ 지친 삶의 냄새가 밴 이동 잡화상이었다. 확성기에서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왔다. ‘못 잊어서 또 왔네/ 미련 때문에/울며가던 내가 왔네/ 못 잊어 왔네/그리운 님 찾아서 내가 또 왔네’ 전북 김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최낙도가 방물트럭을 만들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틀며 4년간 지역구를 누볐다. 얼굴도 알리고 생활비도 버는 신판 보부행상이었다.이어진 11대 총선에 민권당 후보로 출마한다. 또 낙선. 가사처럼 미련을 버리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큰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다리 붕괴 사고는 1940년 11월 7일에 있었던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시의 현수교 타코마교 붕괴 사고다. 타코마교는 개통 당시 최첨단 현수교 공법으로 건설돼 미국 공학기술의 결정체란 평가였다. 태풍에도 버틸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다리라는 찬사를 받았다.하지만 개통된 지 4개월 만에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타코마교는 시속 190㎞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다리였다. 그런데 타코마교가 붕괴된 날의 풍속은 산들바람 수준인
“대통령은 딱 한 사람에게 감정이 있다.” 2011년 1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여당인 한나라당 최고위가 ‘부적격’ 결정을 내린다. 이 ‘반란’으로 정 후보는 낙마한다. 청와대가 안상수 대표를 겨냥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예정된 만찬이 전격 취소된다.민주주의의 절차적 본질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 효율적으로 정치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경로가 가장 효율적일까. 수 세기에 걸친 실험 끝에 ‘정당’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정당은 심판받는 조직이다. 국민의 뜻을 제대로 수렴하고 실행하고 있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정치인의 언행이 또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지원 유세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을 비판했다.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야당이 정부를 공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손을 연거푸 비비는 행동을 곁들인 이 날 발언은 야당 대표의 것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다.이 대표는 “중국인들이 한국이 싫다고 한국 물건을 사질 않는다.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謝謝·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뜻)’,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했다. 심지어 이 대표는 중국과 대만의 양안
1950년대 초 미국에 소아마비가 창궐했다. 한 해 5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걸려 3000여 명이 죽어 갔다. 루즈벨트 대통령도 걸렸다. 공포였다. 백신 개발이 절실했다.조너스 소크도 연구에 매달렸다.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진전이 없었다. 그는 배낭을 메고 무작정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어느 날 천장이 높은 한 수도원 성당을 찾았다. 아이디어와 공식이 준비된 듯 떠올랐다. 미국으로 돌아와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백신 특허를 무상으로 공개해 소아마비 정복 길을 활짝 열었다. 소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건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