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선(77) 할머니는 긴 한숨과 눈물부터 쏟아내셨다. 대담은 처음부터 말씀이 반 눈물이 반이었다. 필자는 당혹스러웠고 눈길을 어디에 둬야 좋을지를 몰랐다. 저는 19살에 시집가던 첫날밤 어머님이 기절하셔 돌아가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요. 신랑은 6·25에 참전하여 수류탄을 맞고 온 몸에 중상을 입은 상이용사였습니다. 저는 곧바로 엄마의 뒤를 따라 죽으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신랑을 다시 볼 때마다 까무러쳤으나 죽지 않고 되살아났습니다. 저의 혼사는 전쟁 직후라는 당시의 사정도 있었지만 사돈 될...
"통장아제! 우리 집에 또 형광등이 나갔서요…, 우짜면 좋겠노?" 조준현(56)통장 댁에는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딱한 처지에 있는 노인들이 나름대로 사연을 가지고 찾아오신다. 하지만 통장은 한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장 내외는 소문난 효자·효부다. 부모님한테 효도하는 사람은 남의 부모도 섬길 줄 안다. 그래서 통장 부부는 14년 전 부터 마을에 사시는 노약하고 의지할 곳 없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동네에서 통장직을 맡았고 그동안 소리 소문 없이 많은 공...
"예로부터 성인도 시속(時俗)을 따른다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우리 노인들도 어르신으로 공대받으려면 지금의 시속을 따라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노인들도 세상을 따라 변화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달라졌는데 아직도 생각은 옛날식으로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노인들이 섭섭한 일을 자주 겪게 되고 젊은 사람들한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도 사고방식이 시대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노인들도 옛 어른들이 하신 것처럼 이 사회가 요구하는 어르신의 역할을 해야 가정과 사회에서 우대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
그를 만나면 언제나 고맙다는 말부터 먼저하고 싶었다. 젊은이는 통이 크고 다재다능했으며 겸손하고 효자였다. 특히 노약자를 돕는데는 헌신적이고 애정이 각별했다. 백진욱(46)대표를 알게 된 것은 몇해전 설을 앞두고 노인들이 자살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을 무렵 여기저기서 무의탁 노인들이 양식이 떨어지고 연탄마저 떨어졌다고 화급하게 도음을 간청해 올 때였다. 그 당시는 필자로선 속수무책이었다. 불안하고 답답했다. 바로 그때 지인으로부터 한 독지가를 소개받았다. 그가 바로 백진욱씨다. 필자는 단도직입 전화로 구조를 요청...
웃음은 신이 내려준 보약이라고 하고 영험한 치료제라고도 하는 것은 사람은 정신과 육체를 결합한 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정신에 영향을 주고, 정신 또한 몸에 영향을 준다. 옛말에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란 말이 있는데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를 내면 한번 늙는다는 뜻이다. 웃음은 몸에 좋은 약이 되고 화는 독이 된다.서양의학에서도 웃음은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고 엔돌핀 같은 몸에 좋은 물질을 분비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다고 한다. 요즘은 웃음에 대한 연구가 깊어...
"노인을 천시하고 여성이 아기를 낳지 않으려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고 장차는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출산기에 있는 젊은이들이 자식 키워 놓으면 늙어서 학대받고 버림받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가 출산하려 하겠습니까?!" '효·사랑 실천운동'이 부진하여 노인회에 말씀을 얻으러 갔다가 오남진(82)회장님에게 이렇게 꾸지람부터 들었다. "효도와 경로는 하면 좋고 안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위험천만한 사고입니다. 예부터 효는 백가지 선행을 낳고 불효는 만가지 불행의 씨앗이 된다했습니다. 요즘 심각하게 사회문제...
-우병철(74) 선생님은 교장으로 정년퇴직하셨고, 연세도 많아 말기암 의료병동에서 봉사하시기엔 너무 노약하신데. "사람이 하는 일에는 다 본분이 있고 때가 있습니다. 봄에는 씨를 뿌려야 하고 가을에는 거두어야 하듯이 사람의 일생에도 배우고 일할 때가 있고 가르치고 베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는 나이가 많아도 의지만 있으면 할 수가 있고 임종을 수발하고 영혼을 위무하는 데는 교직에 종사했던 노년이 가장 적임입니다. 그리고 만년에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 거리며 하느님한테도 제일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음(素蔭) 권오경(82) 서백(書伯)의 일필휘지에 주눅이 되어 서당에선 제대로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훈장님 같았고 공맹학을 전공하는 학자들 같았다. 서예실 벽면은 온통 명필과 주옥같은 명구들로 가득했고 방문객들은 스스로 삼가고 마음가짐은 저절로 경건해졌다. 명필은 써놓은 글을 볼 때하고 그 글을 쓸 때 직접 보는 것 하고는 그 감동의 차이가 천양지판으로 달랐다. 선생님이 붓을 잡고 집중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정신일도의 경지 바로 그것이었다. 서도의 신비의 차원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선생님은 "글...
월성주공3단지 임대아파트는 면적이 12~13평이고 가난한 사람들과 고령자가 많고 특히 몸이 불편하면서도 혼자 사는 노인이 많다. 그래서 안전과 생계 면에서 가장 취약하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부녀회장을 명예심으로는 하겠다는 사람이 없고 누가 나서서 내가 희생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누구라도 십자가를 지는 심정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낸다. "혼자 사시는 노인이 가스레인지 불 위에 음식물을 올려놓고 외출해버립니다. 고장 난 전자제품을 수리도 안하고 사용해 사고를 냅니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조금만 연기가 새 나와도, ...
사방팔방을 둘러보고 탐문해도 효자는 없었다. 이 땅에 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꼭꼭 숨어버린 것일까? 다 사라져 버린 것인가? 백성을 나라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은 섬길 부모님이 이 땅에 계시고 사랑할 자식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아닐까? "효자 없는 사회, 나라의 근본을 무엇으로 대신할 것인가?" 홀몸노인을 남달리 섬기고 제자들에게는 영원한 스승으로 존경받는 신천호(전 고교교장)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곳은 효자 최윤호(68)씨가 살고 있는 대구 진천동의 자그마한 아파트 - 필자가 현관에 들어서자 효자는 정중히...
"저는 심장질환으로 명예 퇴직한 것이 아쉬워서 몇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퇴임한 후로는 학습이 부진하고 부모 없는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 저소득층에는 불행히도 빈궁하면서도 부모님마저 없는 어린 자녀들이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로는 교육적으로 거의 방치되고 있어 초등교육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언제나 가슴이 아픕니다. 초등교육과정은 중고등학교 교육의 밑바탕이 될 뿐 아니라 민주시민의 기초적 자질과 소양을 기르는 중요한 시기라 아이들이 같은 또래에서 소외되고 균등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개인...
최고령 경로회장님을 찾아뵙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어르신은 정녕 어떤 모습을 하고 무슨 말씀을 해주실까? 궁금한 것도 많고 자못 기대가 컸다. 소문에 의하면 회장님은 목소리가 청년 같고 눈과 귀도 음주량과 활동량도 아직은 혈기왕성한 장년 같다고 전해 들었다. 필자는 이 소문이 필시 과장되었으리라 생각해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들은 이야기들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했다. 이윽고 필자가 만나본 할아버지 회장님은 한마디로 거짓말 같이 건강하셨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허리가 전혀 굽지 않았고 머리 숲은 청년...
좋은 일 하는 사람은 다 호감이 가지만 그는 좀 특별했다. 인간적인 매력이 넘쳤다. 이름부터 드라마 속의 협객 김두한과 비슷하고 용태도 흡사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위력적인 안면 근육, 넉넉해 보이면서도 사람을 긴장되게 하는 분위기를 가졌으며 발상의 기발함과 웅대함이 영화 속에서 주먹의 황제 김두한과 정치인 김두한을 함께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김두환 다복회 회장은 웅변가였다. 자신이 성장한 과정을 얘기할 때는 애절함과 통쾌함이 있었고 소나기처럼 쏟아 붓는 역설을 듣고 있을 때는 누구라도 그를 만나면 속절없이 설득 당할 것 ...
'스마일 예술봉사단' - 이름만 듣고도 기분이 좋아 졌는데 류만현 회장을 만나보니 소문대로 회장님의 얼굴은 더없이 온화했고 말씀엔 미소와 정감이 넘쳤다. 그런데 류회장은 필자와 마주 앉자 서둘러 자신의 노후문제와 양로원 애기를 꺼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나이 일흔이 다 되어서야 자신의 노후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못 흥분하셨다. "저는 우연히 친구 따라 양로원을 갔다가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본 양로원은 너무나 적막했습니다. 아니 비참했습니다. 한없이 안타까웠고 슬펐습니다. 어르신들의 얼굴...
"13년 전에 가업으로 하던 공장이 부도를 당하면서 설상가상으로 4살 난 손자가 뇌졸중을 앓게 되고 며느리는 집을 나가고 아들은 방황하고 영감님은 병을 얻었지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당장 손자도 살려야 하고 파탄난 가정도 수습을 해야 했습니다. '소아뇌졸증' - 당시로서는 병명도 처음 듣는 희귀병이었고 지방서는 고칠 수도 없었습니다. 천우신조로 서울 병원들을 헤매다가 손자의 목숨을 살렸지만 수술 후에도 한 달에 몇 차례씩 생사를 넘나드는 극심한 후유증에 애간장을 태워야 했고 막대한 병원비에 쫓겨야 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이유는 짐승 같은 패륜이 유행병처럼 날로 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에 담기 두렵다고 쉬쉬하고 수치스럽다고 지도자들마저 나서길 꺼린다면 장차 우리 사회는 금수 같은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2011년 대구 생명의 전화 한 곳에서 성문제로 상담한 사례(1842건) 중 근친상간이 758건으로 41.15%나 차지했고 더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부모와 자식 간의 불륜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2년 현재 전국에서 19개 상담소가 운영되고 있으니 드러난 것만 봐도 작금 우리...
만세의 스승이신 공자님도 죽음에 대해선 '모른다' 했으니 누구도 천당이 있다 없다 장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보통사람도 생명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자신이 살아 있으므로 생명을 인식할 수 있듯이 철든 나이가 되면 참나인 내 영혼도 어디서 왔다가 생을 다하면 또 어디론가 새 삶을 찾아갈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생각하면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 노년에 이르러서도 생에 대한 인식이 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아무리 돈과 명예를 가졌다 해도 짧은 인생 너무 바쁘게 살아 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버기자가 만...
최정태(67)씨는 재난이 발생한 곳에는 일단 어디든 달려간다. 그리고 뭔가 현장에서 도움을 줘야 직성이 풀린다. 누구의 권유나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할 도리로 생각할 뿐이다. 그는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신안군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숭례문 화재 때도 어김없이 달려가 구호 활동을 펼쳤다. "2005년 대구 서문시장 화재 때는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갔습니다. 12월 그날 밤은 유난히도 추워서 현장에서 본 소방관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새까맣게 그을...
홍희자(54) 대장의 첫마디는 강한 믿음과 힘이 실려 있었다. "엄마들의 열정과 할머니의 지혜로 똘똘 뭉쳐서 우리 지역 노약자들의 안전은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방범복에 순찰모를 쓰고 방범봉을 들고 나서니 대원들의 모습은 당당했고 명분과 권위를 갖추었기에 주민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환영을 받기에 충분했다. - 부녀 방범대는 언제 만들었고 현재 대원은 몇 명입니까? "2000년 8월 20일 뜻을 같이 하는 주부 15명이 모여 단체를 출범시켰고 12년째로 현재 대원은 33명입니다."(대장 홍희자) - ...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받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 제 소리를 듣고 가슴이 후련하다고, 듣기 좋고 부르기 쉽다고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많아 7년 전에 '민요교실'을 열었습니다. 민요는 백성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 구전(口傳)되고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어 민중의 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민요는 악곡이나 사설이 지역에 따라, 부르는 사람의 취향 따라, 부를 때 즉흥성에 따라 다르게 부를 수도 있으니 쉽고 흥겨우며 언제든지 불러도 우리네 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