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씨앗이 되어 어디론지 날아가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를 맺고 뱉었던 당사자들에게 돌아가 독이 되기도 하고 달콤한 과즙이 되기도 한다.지금 세상에 험악한 말이 너무 많이 날아다닌다. 어떨 때는 지겨워진다. 덕담은 날개가 없고 악담이나 험담만 날아다니는 것 같다. 해마다 입시 정보를 보면 법대에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 이런 수재들이 법을 공부하여 판사도 되고, 검사도 되고, 변호사가 된다. 정치계에 투신하여 활동하는 분들도 많다.그런데 희한하다. 오히려 법질서는 어지러운 것 같으니 말이다. 법이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나거나 줄기도 하
설 명절 전후에 좋을 꿈을 꾸라는 덕담을 많이 하고 많이 받는다. 평소에도 젊은이들에게 꿈을 지니도록 당부를 한다. 허황한 꿈이 아니라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꿈을 지녀야 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곤 한다. 이 꿈은 잠자면서 꾸는 꿈이라기보다 자신이 세운 삶의 목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명절에 좋은 꿈 많이 꾸라고 덕담할 때는 행운의 꿈과 생활실천의 꿈의 의미가 복합되어 있을 것 같아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잠을 자야 꿈을 꾼다. 잠은 몸과 마음의 휴식시간이다. 낮의 노동은 정신
포항시 북구 신광면사무소 마당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비석 한 점이 보호각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국보 제264호‘영일군(현재 포항시) 냉수리 신라비’. 비는 1989년 냉수마을에서 밭갈이하던 중 주민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당시 한국 고대 사학계를 시끌벅적한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그리고 3개월의 연구와 고증 후 보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특히 관련 전문가와 많은 교수님이 냉수리에 집결한 덕분에 대학생이었던 나는 연이은 한국 고대사 수업 휴강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한 기억이 떠오른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소와 예술,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느릿한 덩치와 날렵한 상상력, 야성미와 절제미, 우유부단과 재기발랄의 부조화 탓이다. 한데 의외로 예능 속의 우공은 멋진 소재로 인상적 활약을 펼친다. 심지어 난국에 처한 국가를 구하는 제물이자 인생 역전의 종잣돈이 되기도 한다.사마천의 ‘사기’엔 현고호사 얘기가 나온다. 약소국 정나라 상인인 현고가 소 열두 마리로 조국을 구했다는 고사성어. 또한 한국 기업사 거인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소를 팔은 돈을 들고 야반도주해 성공을 일궜다. 우리 정치사 감동적 장면의 하나로 그의 소떼 방북
“의젓이 연좌(蓮座) 위에 발돋움하고 서서/ 속눈썹 조으는 듯 동해(東海)를 굽어보고/ 그 무슨 연유(緣由) 깊은 일 하마 말씀하실까.몸짓만 사리어도 흔들리는 구슬소리./ 옷자락 겹친 속에 살결이 다비치고, 도도록 내민 젖가슴 숨도 고이 쉬도다.해마다 봄날 밤에 두견이 슬피 울고,/ 허구 헌 긴 세월이 덧없이 흐르건만, 황홀한 꿈속에 쌓여 홀로 미소(微笑)하시다.”초적 김상옥 선생님의 ‘십일면관음’이란 노래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 뒤에 있는 아름다운 관음보살이다. 현진건은 ‘불국사 기행’에서 “수없이 늘인 구슬 밑에 하늘하늘 옷자락
약 50년 전 1970년도 애송이 교사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계산기도 없었을 때라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치고 성적을 낼 때는 등사판으로 시험지를 밀고, 손으로 채점하고, 주판으로 통계를 내고, 먹물에 철필로 성적표를 작성하던 시절이다. 중간고사 후 성적통지표를 나누어주었는데 한 학생이 찾아와 성적표 수정을 요구했다. 마침 내가 자리 없을 때라 교감 선생님에게 간 것이다. 성적을 옮겨적으면서 24번 학생의 성적이 25번 학생과 바꾸어진 것이다.나의 잘못을 발견하고 학생에게 사과하고 통지표를 수정하여 주
사람은 토포필리아를 추구하는 존재다. 희랍어인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와 사랑을 나타내는 ‘필리아’를 합성한 개념. 요컨대 물리적 영역에 인간의 감정이 투사된 의미 공간이 장소인 셈이다. 인류가 살았던 땅에는 어디든 토포필리아 흔적이 남았다.장소에 이름을 짓는 행위는 나와의 관계를 맺는 첫 단추다. 예컨대 ‘북위 37도 동경 129도’라는 방위는 별다른 감각이 없으나, 정동진이란 명칭이 부여되는 순간 감흥이 떠오른다. 새해 일출과 모래시계와 고현정이 연상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작품은 이를 절묘하게 묘사한다.대부분 도시는 나
군자방미연(君子防未然)이니 불처혐의간(不處嫌疑間)이라.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 수숙불친수(嫂叔不親授)요 장유불비견(長幼不比肩)이라. 노겸득기병(勞謙得其柄)이나 화광심독난(和光甚獨難)이라.당나라 시인 섭이중의 시 군자행의 일부이다. 군자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때문에 혐의를 받을 처세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참외 밭을 지날 때는 신발을 고쳐 신지 아니하고 오야나무 밑을 지날 때는 갓을 바루어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고를 발생시켜 놓고 수습하는 것이 제일감이 아니라 사고를 발생하
인생은 시공간 세계로 이뤄졌다. 흔히 생애라 불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백 년을 넘지 못한다. 한데 공간은 이와 달리 신축적 함의를 품었다. 개개인 삶의 질적인 차이는 장소와 밀접히 연결된다. 여행은 이를 확장시켜 생명을 고차원 경지로 이끈다.인간은 유람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생활을 풍요롭게 이룬다. 진귀한 음식을 찾는 욕구도 그중의 하나다. 가장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 일상적 행동은 ‘먹기와 말하기’다. 특히 ‘먹방’으로 상징되듯이 다들 먹는 행위에 열광한다. 그 본질은 뇌에서 발생하는 쾌감이란 경험에서 비롯된다.광합성 작용을 하
인간의 역사는 음식을 찾아서 이동한 족적이기도 하다. 척박한 대지와 열악한 기후로 굶주린 민족은 물산이 풍성한 지역에 눈길을 돌렸다. 유라시아 대초원 서부의 인도 유럽어족과 동방의 유목민 흉노가 이주하면서 세계는 격렬히 요동쳤다.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카자흐’다. 튀르크어로 ‘이주하다’란 뜻이다. 동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는 세계 각처로 퍼졌고, 일만 년 전쯤에 정착 생활을 하면서 농경의 시대가 펼쳐졌다. 거대한 전환점이자 문명 기록의 출발로 평가된다.농사의 시작으로 도시가 형성되면서 정치권력과 종교 권위의 탄생, 그리고
지난 일요일 등산 겸 오어사와 선무도로 이름난 골굴암을 탐방했다. 두 사찰이 모두 원효와 관계가 있고 안내판에 화쟁사상을 밝히고 있어 화쟁사상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화쟁사상은 대립적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는 사상. 반목과 대결의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어가는 한국 불교의 특징적 사상으로 원효가 집대성했다. 불교이론들이 매우 다양하고 논쟁이 격심하여 각 이론들 간의 충돌이 심했다. 이러한 상호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창안한 것이 화쟁(和諍)의 방법이다. 모든 불교 이론들의 논리적 근거를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일심(一心)에 두었다.원효에 따르
관례적 새해맞이는 ‘해맞이’가 아닐까?어제 해와 오늘의 해는 같건만 유독 신년 1월 1일에 떠오르는‘태양 맞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게 만든다. 그만큼 새해 ‘맹세 빨’이 한 해의 좋은 기운을 다 모으는 듯하다.한반도 최동단 호미곶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올해로 호미곶 해맞이 축전이 22회를 자랑하니 이제는 연륜이 쌓여 대한민국 대표 축제장들 중 한 곳임은 분명한 듯싶다. 몇 해 전 나는 이 축제의 한 부분인 대동한마당 놀이를 진행하기 위해 태양 맞이 백리 길에 합류했다. 놀이는 월월이청청(月月而淸淸)이다. 월월이
12월에 들자 말자 한해의 마지막 달을 맞는 마음과 코로나로 갇혀 지낸 답답함을 풀 겸 아내와 단둘이 1박 2일로 남해 금산 보리암과 여수 금오산 향일암을 다녀왔다. 두 암자가 모두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절경 속에 있기도 하지만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완상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이기도 하다.먼저 보리암을 찾았다. 아내가 태어난 곳이 남해라서 감회가 더 새롭다.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명승 39호 이름에 걸맞은 경관이다. 춘원 이광수가 부
지난달 초 경주 보문탑 야외공연장에서 제9회 판소리명가 장월중선 명창대회에서 예인 장월중선 추모특별공연을 관람했다. 해마다 열리는 대회지만 올해는 ‘코로나 9’로 늦어졌다. 남상일, 박애리의 정감 넘치는 사회로 정동극장의 ‘화랑무’,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신영희 선생의 춘향가 중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는 부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정순임 선생의 심청가 중 뺑덕어멈 부분의 창을 감상하고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이호연, 박소연, 강효주의 경기민요를 감상. 이어서 남상일과 그의 조카가 함께 출연하여 부른 심 봉사 눈뜨는 부분과
식물은 꽃을 피우는 때가 제각기 다르다. 대부분 새봄에 미모를 뽐내나 일부는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개화를 한다. 그들은 꽃을 피울 시기를 어떻게 감지할까. 과학자는 이를 궁금히 여겼다. 그것은 낮의 길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하고자 햇빛에 민감하다. 해가 비치는 시간을 감지하는 기능이 프로그램화됐다. 한데 어떤 식물의 경우 따뜻한 봄날이 아니라 서늘한 추계에 만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생존 경쟁과 관련된다. 지구상 생명체는 다른 생물과 어우러져 나름의 존립을 이어간다.곤충과 꽃식물 공생 관계도 그러하다
벌써 달력이 한 장 달랑 남았다. 세월의 빠름 속에 아쉬움을 새삼 느낀다. 계절의 순환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금년에는 코로나 19관계로 초등학교 동기들과의 만남도 뜸해졌었다. 그런 와중에 몇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다. 가까운 벗들이나 지인들과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연말을 맞게 되었다. 흔히 하는 말로 75km로 달려온 셈이다.송무백열(松茂栢悅), 혜분난비(蕙焚蘭悲)라는 말이 있다. 진(晉)나라 시대의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歎逝賦)’에 나오는 글귀다. “인생의 짧음이여, 누가 능히 오래 살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은 홀연히 다
아르헨티나 작가인 보르헤스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불렸다.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했기에 국경을 넘나든 지식을 쌓았다.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한 그는 상호 텍스트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사고를 가졌다.틈나는 대로 독서를 하기에 그의 신념에 공감을 느낀다. 모든 책은 다른 책을 언급했던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여행의 기술’을 읽다가 ‘훔볼트의 대륙’을 펼친 경우가 그러하다. 저자는 유람의 방식을 소개하면서 메스트르의 침실 여행과 훔볼트의 남미 기행을 실례로 들었다.전자는 니체가 감탄했다는 글로서,
인간은 삶의 이유를 물으면서 사는 유일한 존재다. 인간만이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문제 삼고, 그에 대해 고민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진정한 환희가 있고 절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물어보지만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중국의 유명한 고승 조주라는 스님에게 “달마는 왜 서쪽에서 왔는가.”를 물었더니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했단다. 정말 선문답이다. 뜰 앞의 잣나무가 거기 있으니까 있는 것이지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 왜 거기 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누가
초혼은 망자의 혼백을 소리쳐 부르는 의식을 이른다. 생전에 입은 의복을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 서서 북쪽을 향해 이름을 세 번 외치는 고복 의례. 김소월 시인의 작품 ‘초혼’으로 널리 알려진 듯하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중략)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연전에 타계한 아버님 당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애틋한 메모를 발견했다. 푸른색 볼펜으로 정성껏 적은 ‘초혼’ 전문이다. 꾹꾹 눌러쓰시던 광경을 상기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생의 마지막 길목에 들어섰음을 예감하신 것일까.한동안 잊었
자성(自省). 스스로를 잘 살펴서 잘못을 고쳐 반성하는 것이 자성이다.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박사가 고백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경남 산청 시골마을에서 대구중학교로 유학을 했단다. 가난한 시골에서 대구로의 유학은 대단한 일이다. 1학기말 1학년 8반 68명 중 68등의 성적표. 그 성적표를 들고 고향에 돌아가자니 어린 마음에도 부모님 뵐 낯이 없어 성적을 1등으로 조작. 1등의 성적표를 받아본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지. 이번에 어쩌다 1등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기쁘구나.” 하고 동네어른들을 모시고 잔치를 열어주어 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