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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숲에서의 기억이 하루에도 백 번 천 번 어른거린다. 나는 소망한다. 대나무를 빼곡히 심어서 처자(妻子)가 저 편에서 부르게 하리. 또 소망한다. 한쪽은 튀어 놓아 층층 누각이 구름 위로 반쯤 솟아 있게. 여름에는 흩날리는 눈발을 생각하고, 낮엔 어지러운 달빛 떠올린다네.…” 박제가의 ‘연행시(燕行詩)’의 앞 부분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가 중국을 다녀와서 쓴 문학적 향기가 느껴지는 글이다.‘도충이용지 혹불영 연호사만물지종(道沖而用之 或不盈 淵乎似萬物之宗·도는 텅 비어 있어 그 쓰임은 어떤 경우에도 가득 차지 않는데 있
삼촌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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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이슬람이 세계 문명을 주도했던 때가 있었다. 12세기였으니 대략 천 년 전쯤 그들은 정복지의 문명을 받아들여 크게 승화시켰다.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아직 후진국이었다. 이들은 영토분쟁만 일삼아 무기는 발달했지만 문화는 뒤처져 있었다. 이 때 ‘십자군’은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어리석다. 적은 외부에 있다”며 예루살렘을 점거하고 있는 이슬람, 유대와 전쟁을 시작했다. 십자군은 이 이슬람 정벌 때 처음 ‘커피’를 맛봤다. 전쟁 중에 그 환상적인 향기와 맛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러나 커피는 ‘이교도가 마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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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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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당시 미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되면서 ‘살찐 고양이(fat cat)’란 말이 나왔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80년, 지금으로부터 90년도 더 전이다. 1928년 저널리스트 프랭크 켄트가 쓴 ‘정치의 행태(Political Behaviour)’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살찐 고양이’는 원래 정치자금을 많이 바치는 부자나 특권을 누리는 부자들을 상징했다.금융위기 속에 직원들은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에 내몰리는데 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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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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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1일 대구지방검찰청 의성지청이 쓰레기 수거 업체 대표와 그 동거인을 구속했다. 구속된 이들은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폐기물 재활용사업장을 운영하면서 허가 받은 물량 2157t 보다 80배 가량이 많은 17만 3000t의 폐기물을 반입한 후 처리하지 않고 방치해 놓은 혐의였다. 이들이 폐기물을 받아 쌓아 놓은 의성군 단밀면 처리장에는 ‘쓰레기 산’이 만들어져 있다. 쓰레기 산에는 폐비닐을 포함한 각종 생활 쓰레기가 거대한 말발굽 모양으로 10m 높이로 쌓여 있다.이들이 구속되기 앞서 같은 달 3일, 미국 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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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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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의 일이다. 1968년 11월 2일 밤 북한의 유격대원들이 남한에 활동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울진과 삼척 해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생포된 유격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일당은 1968년 7월부터 3개월 간 유격 훈련을 받고 10월 30일 원산항에서 배로 출발해 그날 곧바로 울진 해안에 도착했다. 되돌아 갈 때는 무전 지시를 받기로 했지만 실패해 독자적으로 육상으로 복귀를 기도했다.북한 유격대원 120명은 8개 조로 나눠 밤에 배를 타고 경북과 강원도의 경계 마을인 울진군 북면 고포 해안에 상륙해 울진, 삼척, 봉화, 명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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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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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신경에 작용해 정신 상태에 영향을 주는 각성제, 수면제, 진정제, 마약 등의 약물은 19세기 문예 사조의 낭만주의를 기점으로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계몽과 합리에 신물이 난 예술가들이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라며 그동안 종교제의나 특정 사교모임 때 쓰던 약물을 개인 도취를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이처럼 지난 시대에 질병처럼 번졌던 향정신성 물질로 인한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집단이 연예계다. 이들이 지난 시대의 빗나간 예술혼을 추종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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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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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 감독과 20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의 아름다운 동행이 준우승 신화로 마무리됐다. 정정용 리더십이 미완으로 남은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정 감독은 다양한 전술과 용병술로 한국 남자 축구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무엇보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인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끌어내 ‘원팀’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했다.정 감독은 예선 2차전 남아공전을 시작으로 결승 진출까지 매 경기 보여준 마법 같은 용병술로 선수들과 깊이 교감했다. 고비였던 16강 한일전에선 초반 양 측면 윙백까지 철저하게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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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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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진식에게는 원방과 계방이라는 아들들이 있었다. 하루는 손자들이 진식을 찾아와 원방과 계방 중에 누가 더 훌륭한지를 물었다. 진식은 어느 한쪽 편을 든다면 다른 한쪽이 상처를 받게 될 것 같아 신중하게 대답했다. “너희들의 아버지는 인품으로나 학식으로나 형을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아우를 아우라 하기도 어렵구나.” 결국 진식은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았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할 때 쓰는 ‘난형난제(難兄難弟)’ 고사다.중국 고사에 쓰인 ‘형제’는 조선중기 이전까지 문헌에 한 배에서 났다고 해서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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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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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초 형!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경주읍에서 불국사로 가는 도중의 십리허(쯤)에 있는 옛날 신라가 번성할 때 신인사(神印寺) 고지(古址·옛터)에 있는 조그만 암자이다. …석초 형! 혹 여름에 피서라도 가서 복약이라도 하려면 이곳으로 오려무나. 생활비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한 것이 천 년 전이나 같은 듯하다. 그리고 답하여라. 나는 3개월 정도 더 이곳에 있을 것이다.”육사가 경주 남산의 옥룡암에서 요양하면서 시인 신석초에게 보낸 편지의 부분이다. 육사는 석초 보다 5살 위지만 벗을 높여서 불러 ‘형’이라 썼다. 이 편지를 쓴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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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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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홍관이 진봉사(進奉使)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 홍관이 변경에 머물고 있었는데 송의 관리 양구와 이혁이 황제 휘종의 명을 받고 숙소로 찾아왔다. 이들은 대뜸 홍관에게 글씨와 그림 족자를 달라고 했다. 홍관이 김생이 쓴 행초(行草) 한 권을 보여주자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지게 놀랐다. 이들은 ‘오늘 왕우군(王右軍·왕희지가 우군장군의 벼슬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 왕희지가 쓴 글씨를 보게 될 줄은 미쳐 몰랐다’라고 했다. 두 사람이 웃으면서 ‘천하에 왕우군을 빼놓고 어찌 이런 신묘한 글씨가 있겠소’라며 김생 글씨라 여러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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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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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민족의 성가(聖歌) 아리랑은 척박한 삶이 ‘아리고 쓰리다’고 해서 ‘아리랑’이라 부른다고 했다. 또 경복궁 중수에 징발돼 나가는 부역꾼들의 탄식이 담긴 ‘어유하 아난리(魚遊河 我難離·고기는 물에서 노는데 나는 이별하고 떠날 수 없네)’에서 아리랑의 후렴 중 ‘아라리가 났네’의 ‘아라리’로 변했다고도 했다. 이렇게 아리랑의 기원에 대한 정설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아리랑은 몽골리안 반점처럼 우리 민족 개개인의 유전자 속에 각인돼 있는 고유한 염색체다.기본 세마치 박자에 따라 붙는 후렴구에 따라 어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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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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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알아?(who) 네가 뭘 안다고?(what) 어딜 감히(where) 내가 왕년에는(when) 네가 어떻게 감히(how) 내가 그걸 왜?(why)” 꼰대화법 육하원칙이다. “다 너 잘되라고 말해주는 거야,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내 자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하며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에 대해 말하면 분명 꼰대다.내가 꼰대가 아닌가 의심되면 꼰대력 테스트도 해 봐야 한다. △만나면 나이부터 묻는다 △젊은이들은 불평불만만 하는 것 같다 △~는 ~인거야 식의 진리 명제를 자주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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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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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민주당의 김대중,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후보가 3파전을 형성한 대통령 선거전에서 대형 사건이 터졌다. 선거일을 일주일 앞둔 그해 12월 11일, 부산 대연동의 초원복국집에 직전 법무 장관을 지낸 김기춘, 부산시장 김영환, 부산지방경찰청장 박일용 등이 참석한 비밀 회동이 있었다.비밀 회동이었지만 이들이 모여 대화한 내용이 도청돼 다음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 관계자에 의해 언론에 폭로됐다. 식당의 이름을 따서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대선을 1주일 앞두고 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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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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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회에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박수 타이밍’이다. 박수 타이밍을 아는 사람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관객들이 매너없게 박수를 칠까 봐 조마조마하고, 박수 칠 때를 잘 모르는 사람은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몰라서 스트레스를 받는다.이런 스트레스가 포항과 같은 지방 도시의 연주장에서만 있는 일인가 싶어서 언젠가 미국에 살다가 온 사람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로스앤젤레스 지퍼홀 같은 데서도 연주회 때 때아닌 박수가 터져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그 곳에도 눈총받는 박수 관객이 많다”는 것이었다.옛날에는 악장과 악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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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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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마을에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였던 노계 박인로(朴仁老·1561∼1642) 시비가 있다. 시비는 입암서원 앞 도로 건너편, 가사천 옆에 만들어 진 작은 공원에 서 있다. 마을 앞 가사천변에는 탁립암, 즉 입암이 우뚝하고, 입암이 보이는 개울가에 높은 다리를 세워 지은 일제당은 자연과 하나돼 절경을 연출한다.“무정(無情)히 서난 바회 유정(有情)하야 보이난다/ 최령(最靈)한 오인(吾人)도 직립불의(直立不倚) 어렵거늘/ 만고에 곳게 선 저 얼구리 노칠 적이 업나다” 시비의 앞면에 새겨져 있는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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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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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집에서 키운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일 것이다. 한자의 집 가(家)자에 떡하니 돼지(豕·돼지 시)가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대부터 길러진 돼지는 식용은 물론 애완용에서부터 인간의 장기를 만드는데도 헌신하고 있다. 돼지의 간, 신장, 심장 등이 인간 장기의 크기와 비슷해서 면역거부 반응만 없으면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에 의학계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농촌진흥청의 의료용 돼지 원조 ‘지노(XENO·이종)’는 사람 등 영장류에는 없는 알파갈 유전자 일부를 없앤 돼지다. 돼지의 장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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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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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계의 라이벌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비기)와 투팍의 생전 랩배틀은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하다. 1994년에는 투팍이 그의 녹음실 앞에서 총탄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배후에 비기가 있다는 설이 돌았다. 사실은 아니었지만 사건 이후 둘 사이의 갈등은 ‘랩배틀’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첨예화 됐다.비기는 ‘이스트 코스트 스타일’이라는 힙합장르를 창조했고, 결국에는 투팍을 중심으로 하는 ‘웨스트 코스트’와 치열한 디스전이 이어졌다. 투팍이 사망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비기 또한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 둘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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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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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세종과 함께 조선시대 성군(聖君)으로 각인돼 있는 정조는 학자풍의 개혁군주였다. 정조가 학자적 기질을 정치에 유감 없이 발휘한 것은 그의 ‘어찰정치’로 잘 드러난다.정조는 당시 붕당의 핵심인사들에게 비밀편지를 주고받으며 막힌 정국을 풀어나갔다. ‘공작정치’라 폄하 하기도 하지만 왕조시대에 정조가 신하들과 소통하고 정국을 풀어 나가려 했던 노력은 특별한 것이었다.정조의 소통정치 노력은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노론 벽파 우두머리 심환지를 회유한 편지글에서 잘 나타난다. 정조는 심환지 한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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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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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가 밝힌 이라크 전쟁의 원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당신이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60년 간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전ㆍ현직 대통령을 취재한 전설적인 여기자 헬렌 토머스(1920~ 2013)의 조지 부시(아들) 대통령에 대한 ‘돌직구’ 질문이다.이탈리아 오리아나 팔라치(1929~ 2006)기자의 이란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 인터뷰 일화도 유명하다. 그녀는 호메이니에게 “차도르를 입은 여성이 수영을 할 수 있겠나?, 당신은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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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2019-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