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오정희, 1980)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전쟁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의 유년의 기록입니다. 어느 국가, 민족에게나 전쟁소설이라는 장르는 있기 마련입니다. 전쟁은 문학의 소재가 되는 가장 보편적인 사건입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그 전쟁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부른 사건이라는 점에서 다른 전쟁들과는 많이 다르다 할 것입니다. 그만큼 비극적인 일들이 더 많았고 그 후유증 또한 깊게 남아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립니다. 모든 문화와 윤리를 파괴하고 삶의 현장을 폐허로 만듭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다루는 전후의 제
‘다른(heteros)’과 ‘장소(topia)’의 합성어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프랑스의 지성 미셀 푸코가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공간으로 명명한 개념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와 달리, 현실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 기능을 수행하는 현실화된 유토피아라는 의미다.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도 정상성의 궤도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헤테로토피아는 일상 탈출이며, 그래서 반(저항적) 공간으로 이해된다. 일종의 설렘을 동반한다.집과 회사를 무한 반복하다 가지는 휴가철 여행지는 곧 헤테로토피아가 된다.
한국 영화 중에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작품이 있다. 스무 해도 훨씬 전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인터넷에서 영화 소개 자료를 검색하면 나오듯이 각기 다른 성격의 두 남녀가 한정된 공간을 공유하며 티격태격 다투는 사이에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을 다뤘다.영화 줄거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설렘과 풋풋함으로 가득하다. 휴가 나온 병사인 남자 주인공이 사전예고하지 않고 여자 친구의 집을 깜짝 방문한다. 그런데 친구는 이미 이사 가버렸고 결혼식 비디오기사를 하면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여자 주인공이 산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는 어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대학생들에게 아침밥 문화를 확산시키고 쌀 중심의 올바른 식습관 형성을 도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청년들의 아침 식사 결식률이 2021년에 53%에 다다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고, 쌀 소비량 또한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문제적인 상황 속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정책사업으로 ‘천원의 아침밥’이 등장한 것이다.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쌀 소비를 늘리는 동시에 고물가 시대에 학생들의 식비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업의 구조는 아침밥 식대로 학생이 1천원, 정부가 1천원을 부담
요즘 노는 일이 주 일과입니다. 퇴직 선배들이 “노는 일도 만만치 않다”라고 말했던 것이 헛말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하루하루 계획을 잡아서 놀아야 하니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닙니다. 무작정 놀려니 하루하루가 여삼추(如三秋)입니다. 아주 옛날 어릴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도 노는 일이 큰 인생사였습니다. 그때처럼 노는 인생이 다시 찾아왔습니다만 몸에 배인 출퇴근 관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노는 방법도 다 까먹은 상태이고요. 노는 일로 이렇게 노심초사해야 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호모 루덴스(Homo Ludens, 노는 인간)
평생학습도시 청도군에 혁신의 바람이 세게 불고 있다. 청도군은 최근 대구한의대학교와 손을 맞잡고 청도군민만이 진학할 수 있는 지역전문학과를 학위과정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군민을 위한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쌓인 성과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시도로 보인다. 지자체가 대학과 연계하여 지역의 주민을 지역의 전문인재로 양성하여 지역 혁신의 주체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전국 최초의 시도이다. 대구한의대도 청도군의 이 같은 계획에 함께 적극 부응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협력의 결과이다.지난해 지
다가오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조셉 바이든(Joseph R. Biden) 대통령의 초대로 미국을 국빈방문한다고 한미 양국은 공식 발표했다. 우리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방문하는 것은 2011년 이후 12년 만의 일이며, 올해가 한미동맹 7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에 정치적으로도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번 국민방문은 한미 양국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5월과 11월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결과를 바탕으로 △연합방위태세 및 확장억제, △미래 첨단기술 및 경제안보, △
바야흐로 대립과 분열의 시대가 절정에 달한 듯하다.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대립과 분열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좌우 진영 사이에 날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강성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대화와 협상은 무시한 채 극한 대립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화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을 강행한 야당이나 그에 맞서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의 행태는 두 쪽 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부 여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양 진영의 대립과 갈등이 언제까지
최근 과거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십수 년이 흘러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공적인 절차로는 정의를 구현하지도 그 부족분을 메우지도 못했기에, 사적 차원에서 가해자들에게 과거 악행에 대한 갚음, 곧 응보를 내려야 했던 처절한 과정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만 끝까지 피해자가 가해자들로부터 받아내지 못한 것은 ‘진심 어린 사과의 말과 마음’이었다.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및 갈등 상황에서의 분쟁해결은 특히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 강조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회복
“자네는 리얼리스트구만.”오래전 일입니다. 젊어서 직장 근처에서 하숙을 할 땐데, 같은 방을 쓰던 직장 동료가 잠들기 전에 불쑥 그렇게 말했습니다. 동거(同居)한 지 몇 달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쪽이 조금 연상이어서 호형호제하던 사이였습니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결국 몇 개의 이름을 얻느냐로 가늠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여태 리얼리스트란 이름은 처음이었습니다. 내 평생에 그런 평가는 처음 들어보는 거였습니다. 그 반대말을 알아야 제대로 뜻이 잡힐 것 같았습니다. 리얼리즘이란 말이 주
영화 ‘살인의 추억’. 198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 젊은 여성들에 대한 연쇄 강간 및 살인 사건을 재조명한 범죄스릴러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메가폰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 영화 속 화성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느닷없이 이 영화를 호출해 본다. 지난 3월에 있었던 한일정상회담으로 받은 상처 탓이다. 보름이 지났지만, 허탈함과 불쾌함을 넘어 분노감까지 치솟는다. 석연찮은 회담 추진 과정과 흉흉했던 회담 의제와 방향성에 대한 우려와 소문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국익과 함께 국민적 자존심에 큰 구멍이 뚫리고
언젠가 과거 정부에서 국가 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했던 분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국정 전반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모든 일을 막연하게 비판만 하기보다 적절한 해답을 찾는 데 앞장서는 실용적 합리주의자라는 평가를 듣는 유명 인사였다.그런 훌륭한 인물과 얘기 나누던 그 무렵은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경제는 말할 것 없고 다른 분야도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사태의 원인을 두고서는 글로벌 요인 때문이라는 쪽과 내부 요인 때문이라는 쪽이 서로 갈라져서 갑론을박했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는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설립 이전인 1981년부터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와 안동문화방송의 주관으로 ‘이육사 백일장’이 개최되었고, 1995년부터는 ‘이육사 선생 추모 문학 심포지엄’이 안동문화회관에서 열리기 시작하면서 이육사와 그의 문학에 대한 세미나, 추모제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94년에 이육사기념사업회가 창립된 영향도 있었겠지만, 1995년 당시 문화관광부가 7월의 인물로 이육사를 선정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이육사에 대한 대내외적인 관심이 증폭되었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국비 6억 원
젊어서는 지금의 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제법 친구도 많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곳도 꽤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 젊은 직장 동료(새로 부임한 신임 교수였습니다)로부터 꽤나 당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처럼 늙고 싶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루는 그렇게 말하는 거였습니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 것 같은데 별로 듣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선 “너는 늙었다”는 게 싫었고, 본받을 게 없어서 무위도식하는 것을 본받겠다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냥 웃어주고 말았습니다.잘 모르는 남들이 보면 제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 말은 단지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회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형성이 되며, 이 관계는 의사소통이라는 인간행동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행위를 유발시키는 인간행동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심리적 행동기제가 작용함으로써 가능한데 이 심리적 기제는 태어나면서부터 받는 주변환경의 영향에 의해 발달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외부적인 환경 요인에 의해 발생적 동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선천적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 욕구에 따른 행동은
2023년 신년을 거리에 특이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니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거리 곳곳에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내걸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드나드는 학교 정문 근처에도 보기에 민망한 내용의 정당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있었다. 처음에는 선거철도 아닌데 웬 정당 현수막이 요란스럽게 많이 걸렸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시간이 가도 현수막이 사라지기는커녕 내용을 바꾸어가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보통 현수막은 불법으로 내건 현수막이 아니라면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걸 수
지난 2022년 12월, 뉴질랜드는 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법정 흡연 가능 연령을 매년 상향 조정하여, 2008년 이후 출생자에 대해 담배나 관련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2009년 1월 1일 출생자부터는 담배를 구매하는 것이 평생 금지되어 있다. 이들에게 담배를 판매할 경우, 형사제재의 대상이 되어 최대 15만 뉴질랜드 달러(한화 약 1억2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는 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인구수가 매년 감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담배
어릴 때의 궁금증 중의 하나가 ‘복음(福音, the gospel)’이라는 말의 의미와 그것의 전승 방식이었습니다. 우선 왜 그 내용이 복음이라고 불리어야 하는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성서의 앞부분에 나오는 네 복음(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존재도 좀 이상했습니다. 어린 독자가 보기에 그 네 복음은 거의 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회개하라!”고 외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네 번씩
새삼 던질 필요도 없는 질문일 것이다. 근데 사람들의 대답은 의외로 싱겁다. 추리면, 결국은 더 많은 그리고 보다 나은 기회가 있다 정도다. 두루뭉술하긴 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격하게 수긍한다. 아니 수긍할 수밖에 없다.서울이 더 많은 그리고 보다 나은 어떤 기회를 제공해 줄까? 교육과 취업, 금융과 부동산, 의료와 보건, 문화 기반과 다양함, 교통과 이동의 편익, 선진적이고 글로컬한 제도와 정책…. 무엇하나 비교우위가 없는 지방으로선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는 인간과 삶의 조건들이다. 획득한 기회에 따르는 비용을 생각하라. 서울
두어 해 전에 일본 출신 여성 방송인이 비혼 출산 사실을 공개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결혼하지 않고 해외로부터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한다는 것이 헐리웃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가 된 후에는 육아예능 출연 소식까지 전해져서 다시 논란이 일었다.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출산한 비혼모(非婚母)가 공영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은 대중에게 올바르지 못한 결혼관과 가족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여러 해 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하는 한국 출신 여성이 그곳의 결혼제도와 출산정책을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