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金洙暎; 1921∼1968)의 시 「풀」은 아주 유명한 시입니다. 이 시에는 ‘눕는 것’으로 힘을 삼는 한 생물이 나옵니다. 시의 제목이 되고 있는 풀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 전편에서 “풀은 (언제나) 눕는다”라는 말이 총 9회 나옵니다. 시인이 이 시에서 보여주는 ‘풀이 눕는 상황과 행태’는 아주 다양합니다. 바람이 불면 당연히 눕고, 누운 김에 (울다가) 또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일어나기도 더 빨리 일어나고), 날만 흐려도 눕습니다. ‘눕기’를 업으로 삼고 틈만 나면 누워서 자신을 표시합니다. 마치 어느 드라마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3월 도쿄에서 한일정상회담 이후 52일 만에 열린 정상회담이자, 2011년 이후 12년 만에 복원된 ‘셔틀 외교’가 가동된 것이다. ‘셔틀 외교’의 본질적인 의미는 분쟁·갈등 중인 두 나라를 제3국이 오가며 중재하는 것을 뜻하지만, 한일관계에는 양국 정상이 특별한 계기 없이 오로지 정상회담을 위해 상대국을 번갈아 방문한다는 정치적 수사로 사용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당초 올해 여름쯤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던 기시다 총리의 답방이 빨리 성사된
1945년 5월 8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독일이 미(美)영(英)불(佛)연합군에게 항복을 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이 났다. 아시아에서의 종전은 8월 15일이다. 이 전쟁은 인류역사에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주었고 지금도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아물지 않은 상흔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당한 한국은 아직도 피해 당사자들이 전범국인 일본에 대해 피해회복을 외치고 있으나 당사자인 일본은 이미 끝난 일이라고 치부하는 실정이다. 총성이 멈추었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인해 파
『청년(靑年)』, 당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에서 발행하여 1921년 창간된 기관지이다. 1941년 종간될 때까지 20년간 간행된 『청년』은 기독교주의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全 분야를 걸친 사회운동과 그 사상적 배경을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수난기를 오롯이 견뎌내고 있는 청년들이 시대적 요청에 따라 민족의 계몽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와 당위성을 발견할 수 있다.70~80년대 군사독재라는 엄혹한 시대에서도 청년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다. 필자의 부친은 1975년 5월 선포된 긴급조치 9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반에서 1등을 하던 친구가 여름 방학 교회 수양회에서 익사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그 친구 없는 학기말 고사에서 제가 1등을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제게 ‘나는 이렇게 공부했다’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다른 친구가 1등을 했었다면 선생님이 그런 발표를 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삼시 세끼 챙겨 먹기도 어려운 형편이라 학기 초에 선생님을 찾아가 보충수업비를 면제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네가 학급 회계를 맡아서 보충수업비를 거두거라.”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공부가 제일 쉬웠
출산율 0.78! OECD 회원국 전체 중 가장 낮은 수치다. 관련 통계집계 이래 가장 적은 수치란다. “집단적 자살사회 같다.”2017년 저출산 한국 사회에 대한 라가르드 IMF 총재의 경고다. 공공연한 비출산 선택이 소멸위기에 처한 시한부 국가라는 불명예를 대한민국에 깊이 드리우고 있다.대학에서 입학 사무를 보고 있어 고교 방문 기회가 부쩍 잦다. ‘올해도 많이 줄었지요?’교교 방문마다 늘 나누는 안부가 되었다. 학급수도 줄지만, 교실당 학생 수도 줄었다. 현재 완료진행형인 이 감소는 2040년에 가서야 멈춘다. 40만 명 내외
봄이 짧아졌다. 꼭 집어서 언제부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씩 줄어드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금방 왔다가 사라지는 계절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산으로 들로 나들이 간다. 생기 돋는 봄날의 초록빛 산천을 보면서는 힘을 얻는다.그런데 이렇게 수십 년에 걸쳐 계절이 한 발 한 발 변화를 거듭하고 강산이 몇 차례나 바뀌는 동안에도 옛날 사고와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며 불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대립과 혼란을 견뎌내고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룩했지만 그 성취에 애써 눈 감은 채 살아
지난 3월 14일 “MBC 100분 토론”(977회)에서 주진형 (전)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는 우리가 어릴 때는 입시경쟁, 대학에서는 스펙경쟁, 사회에서는 생존경쟁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노동시장 자체가 이른바 메이저와 마이너로 이분화되어 있어서, 계속되는 경쟁에서 승리하여 메이저 집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떠한 삶의 가망도 없다는 전망이 전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에만 진학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서 치열한 입시경쟁만이 부각되었지만, 이제는 대학에 진학한 이후가 더 힘들어진 형국이다. 과열된
영화나 드라마의 재미는 ①드라마적 요소(극적 전개) ②인물적 요소(독특한 캐릭터) ③미장센 요소(화면의 미적 구성) ④정보적 요소(지적 호기심 만족) ⑤대사적 요소(풍자적 묘미) 등에서 나옵니다. 오늘은 등장인물들의 대사 중에서 인상 깊었던 ‘한 말씀’들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체 스토리 전개나 장면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그 한 마디의 대사가 크게 심금을 울려서 그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런 ‘한 말씀’들은 영화를 보는 재미와 함께 여기저기 사회의 어둡고 막힌 곳들을 밝히고 뚫어주는 긍정적
마약청정국을 자랑하던 한국에서 마약문제가 심상치 않다. 학원가 학생들에게 공부하는데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약으로 가장하여 마약성분이 섞인 음료수를 제공한 일당이 검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로 연예인이나 특정 집단에서의 문제로 관심을 끌던 마약문제가 이제는 10대 청소년을 비롯한 70대 일반 주부나 자영업자, 회사원 등 생활 속까지 파고드는 모습이다. 특히 공급망을 보면 온라인거래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SNS 등을 활용함으로써 비대면성과 익명성이 잘 보장되는 루트를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
더불어민주당의 오영환 의원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 22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다시 소방관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소방관 출신의 오 의원은 2020년 총선에서 젊은 인재로 민주당에 영입되어 의정부 갑 지역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다. 이번 불출마 선언의 배경에 대해서 뒷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 의원 지역구의 유력한 인사 자제가 다음 총선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출마를 양보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오 의원이 끝내 내년 총선에 나오지 않고 소방관으로 복귀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불출마 선언을
오픈 AI 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인 챗GPT가 새로운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이른바 세 번째 ‘인공지능의 봄’은 한동안 지속될 듯하다. 최근 챗GPT가 일으키는 열풍을 바라보면,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 간에 바둑 대국이 진행되던 당시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인간과 컴퓨터 간의 대결이 시작되었던 체스 게임에서, 1996년 IBM의 딥 블루는 인간 체스 챔피언을 상대로 1승을 거두었고, 이를 개선한 디퍼블루는 1997년 최종 전적에서도 승리하였다. 체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
「유년의 뜰」(오정희, 1980)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전쟁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의 유년의 기록입니다. 어느 국가, 민족에게나 전쟁소설이라는 장르는 있기 마련입니다. 전쟁은 문학의 소재가 되는 가장 보편적인 사건입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그 전쟁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부른 사건이라는 점에서 다른 전쟁들과는 많이 다르다 할 것입니다. 그만큼 비극적인 일들이 더 많았고 그 후유증 또한 깊게 남아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립니다. 모든 문화와 윤리를 파괴하고 삶의 현장을 폐허로 만듭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다루는 전후의 제
‘다른(heteros)’과 ‘장소(topia)’의 합성어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프랑스의 지성 미셀 푸코가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공간으로 명명한 개념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와 달리, 현실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 기능을 수행하는 현실화된 유토피아라는 의미다.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도 정상성의 궤도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헤테로토피아는 일상 탈출이며, 그래서 반(저항적) 공간으로 이해된다. 일종의 설렘을 동반한다.집과 회사를 무한 반복하다 가지는 휴가철 여행지는 곧 헤테로토피아가 된다.
한국 영화 중에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작품이 있다. 스무 해도 훨씬 전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인터넷에서 영화 소개 자료를 검색하면 나오듯이 각기 다른 성격의 두 남녀가 한정된 공간을 공유하며 티격태격 다투는 사이에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을 다뤘다.영화 줄거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설렘과 풋풋함으로 가득하다. 휴가 나온 병사인 남자 주인공이 사전예고하지 않고 여자 친구의 집을 깜짝 방문한다. 그런데 친구는 이미 이사 가버렸고 결혼식 비디오기사를 하면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여자 주인공이 산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는 어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대학생들에게 아침밥 문화를 확산시키고 쌀 중심의 올바른 식습관 형성을 도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청년들의 아침 식사 결식률이 2021년에 53%에 다다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고, 쌀 소비량 또한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문제적인 상황 속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정책사업으로 ‘천원의 아침밥’이 등장한 것이다.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쌀 소비를 늘리는 동시에 고물가 시대에 학생들의 식비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업의 구조는 아침밥 식대로 학생이 1천원, 정부가 1천원을 부담
요즘 노는 일이 주 일과입니다. 퇴직 선배들이 “노는 일도 만만치 않다”라고 말했던 것이 헛말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하루하루 계획을 잡아서 놀아야 하니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닙니다. 무작정 놀려니 하루하루가 여삼추(如三秋)입니다. 아주 옛날 어릴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도 노는 일이 큰 인생사였습니다. 그때처럼 노는 인생이 다시 찾아왔습니다만 몸에 배인 출퇴근 관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노는 방법도 다 까먹은 상태이고요. 노는 일로 이렇게 노심초사해야 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호모 루덴스(Homo Ludens, 노는 인간)
평생학습도시 청도군에 혁신의 바람이 세게 불고 있다. 청도군은 최근 대구한의대학교와 손을 맞잡고 청도군민만이 진학할 수 있는 지역전문학과를 학위과정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군민을 위한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쌓인 성과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시도로 보인다. 지자체가 대학과 연계하여 지역의 주민을 지역의 전문인재로 양성하여 지역 혁신의 주체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전국 최초의 시도이다. 대구한의대도 청도군의 이 같은 계획에 함께 적극 부응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협력의 결과이다.지난해 지
다가오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조셉 바이든(Joseph R. Biden) 대통령의 초대로 미국을 국빈방문한다고 한미 양국은 공식 발표했다. 우리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방문하는 것은 2011년 이후 12년 만의 일이며, 올해가 한미동맹 7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에 정치적으로도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번 국민방문은 한미 양국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 5월과 11월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결과를 바탕으로 △연합방위태세 및 확장억제, △미래 첨단기술 및 경제안보, △
바야흐로 대립과 분열의 시대가 절정에 달한 듯하다.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대립과 분열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좌우 진영 사이에 날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강성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대화와 협상은 무시한 채 극한 대립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화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을 강행한 야당이나 그에 맞서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의 행태는 두 쪽 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부 여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양 진영의 대립과 갈등이 언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