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빨랫줄 참 길게 눈부시다태양을 널었다가구름을 널었다가오징어 떼를 널었다가달밤이면 은빛으로 날아다니는 갈치 떼를 널었다가옛날에는 귀신고래도 너끈하게 널었다는그래도 아직 단 한 번 터진 적 없는저 빨랫줄한라산과 백두산이가운데쯤 독도를 바지랑대로 세워놓고이쪽, 저쪽에서 팽팽하게 당겨주는참 길게 눈부신저, 한국의 쪽빛 빨랫줄[감상] 한국천문연구원 누리집에 들어가서 생활천문관을 클릭하면 월력요항, 일출일몰 시각계산, 월별 천문현상 등 재미있는 것이 많다. 시민박명, 항해박명, 천문박명이 나오는데 ‘박명(薄明)’은 일출 전, 혹은 일몰 후
TV를 보는데 뉴스가 나왔다전쟁이 나서 폭탄이 터지고사람들이 도망가고애들이 울고연기가 하늘같이 올라가는데탱크가 달려오고난리 난리가 났다금세 장면이 바뀌고광고가 나왔다맛있는 걸 먹으면서깔깔거리며 웃고춤추며 걸어갔다저래도 되나 싶었다[감상] 이나영 주연의 를 재미있게 봤다. 유쾌한 힐링 드라마였다. 4부는 속초의 어느 버스 대합실에서 상인과 설왕설래하던 노인이 호통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아니 힘들긴 뭐가 힘들다고 그래? 지들이 전쟁을 겪었어? 밥을 굶었어?” 전쟁을 겪은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X세대와 밀레니엄 세대
나의 생일엔 예쁜 창녀를 선물해줬으면 좋겠다커다란 달 모양의 귀고리를 한 여자, 달에서 온 여자캄캄한 것이 유일한 재능인 여자, 나를 죽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여자꽃보다 텔레비전을 볼 때 겨우 웃는 여자생일 축하해요, 나를 혓바닥으로 꺼주는 여자눈 내리는 강릉에 가고 싶다고 깡통에 모아둔 게 이십 만원이라고몸무게가 영에 가까우면 좋겠다고, 어차피 천국에 못 가지만눈 내리는 겨울에 대관령 자작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지뼈다귀만 남은 산맥이 허연 입김처럼 눈발을 날릴 때산새들이 날아가고, 덧없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이유조차 날아가고창
호박 덩굴 아래 길에서달팽이를 만난다둥근 집 등에 지고오늘 이사가는구나?아니요, 학교 가는 길인데요나팔꽃 아래 길에서도달팽이를 만난다학교 가는구나?아니요, 학원 가는 길인데요토란잎 아래 길에서달팽이를 또 만난다학교 갔다 와서 학원 가는구나?아니요, 오늘은 이사 가는 길인데요[감상] 5월에는 반 아이들과 김철순 시인의 를 암송했다. 27명 모두 통과했다. 역시 칭찬과 격려 그리고 작은 선물은 고래(?)도 암송하게 한다. 6월의 암송 시는 송찬호 시인의 다.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게 암송하는 동시다. ‘반전’, ‘엉뚱’,
불꽃 쇼가 시작되고 첫 번째 폭죽 터지는 순간 자궁 빠져나올 때 보았던 불꽃 기억하느냐며 희나리 같은 남자가 물었다 수시로 내 머리 위에서 우윳빛불씨 사정하던 땔나무가 아버지의 것이었다면 아궁이 속에서 완전히 연소해버린 나는 한 덩이 숯이다 밥상 뒤엎을 때마다 튀어 오르던 스파크가 엄마의 머리채로 옮겨붙었던 첫 불꽃 쇼는 불행하게도 관객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화약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번갯불처럼 강렬할 줄 알았던 꽃잠이 불량품 폭죽처럼 피씩 바람 꺼지는 소리 내며 밤바다로 사라지던 무렵,스무 살이었다 불쏘시개로
어릴 적 나는 스님에게도 꿈이 있느냐고 물었다스님은 말없이 미소만 지으셨다잠자코 비질만 하셨다그 뒤로 꿈은 속인에게만 있는 것인 줄 알았다꿈이 많아서 앓아눕던 나는엄마한테, 내 꿈 좀 버려달라고 했다늙어 다시 찾은 절에서비질을 하는 젊은 스님을 본다꿈이 있었을까꿈을 버렸을까마당을 비워내는 비질에서한쪽으로 쌓이는 나뭇잎이 있다딱히 쓸지 않아도 좋을 나뭇잎을스님은 쓸어낸다애쓰지 않아도 될 것을 애쓰는 몸짓에서스님도 무언가 매달려 있구나늙은 손은 염주를 고쳐 잡고비워지지 않는 빈 마당을 보며저 은자의 꿈같은 것은 거두어가시라고어미 마음으
시를 쓰는 건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뜨거움을.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
사랑은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사랑은 갈라섬,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사랑은 노동, 지루하고 괴로운 노동자의 길사랑은 자기를 해체하는 것,우리가 되어 역사 속에 녹아들어 소생하는 것사랑은 잔인한 것, 냉혹한 결단사랑은 투쟁, 무자비한 투쟁사랑은 회오리,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 일어서폭풍치고 번개치며 포효하여 핏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고요의 빛나는 바다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이슬 머금은 푸른 대지
할아버지는 어릴 적에깊은 숲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대사방이 어둑어둑한데시퍼런 도채비불이 어른거려서한참을 두려움에 떨었대그때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와서춤을 추며 길을 열어주었대밤하늘에 별꽃이 피듯이초록숲에 눈송이가 내리듯이온통 마음을 홀려놓았대신발 한 짝은 잃어버렸어도그 풍경은 평생 잊으신 적이 없대[감상] 오지연 시인은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제주도에서 바다와 오름과 놀며 살고 있다. 16년 전에 제주도를 소재로 첫 동시집을 냈는데 이번에 두 번째 제주 동시집 (RYTH)를 냈다. 시인은 동시집 첫머리에 “제주도가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라는학원 광고를 붙이고 달려가는 시내버스죽도록 굶으면 죽고 죽도록 사랑해도 죽는데,죽도록 공부하면 정말 죽지 않을까죽도록 공부해본 인간이나죽도록 해야 할 공부 같은 건 세상에 없다저 광고는 결국,죽음만을 광고하고 있는 거다죽도록 공부하라는 건죽으라는 뜻이다죽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옥상과 욕조와 지하철이 큰 입을 벌리고 있질 않나공부란 활활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도자정이 훨씬 넘도록죽어가는 아이들을 실은 캄캄한 학원버스들이어둠 속을 질주한다, 죽기 살기로[감상] 이나모리 가즈오의 (다산
박수소리를 듣는다 그 수도가 박힌 마당은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물의 박수를 쳐준다꾸지람을 듣고 온 날에도 그늘이 없는 박수 소리에손을 담그고 저녁별을 바라는 일은 늡늡했다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면살비듬이 뜬 그 물에 할머니가 발을 닦으셨다발등의 저승꽃에도 물을 줘야지그런 발 닦은 물조차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한 번 박수를 부은 물의 기운을채송화 봉선화 사루비아 눈치 보는 바랭이풀 잡초까지 물너울을 씌워주고도박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쯤을 남긴세숫대야 물을 내게 들려 손님을 맞듯 대문을 여신다뿌리거라
기린의 목엔 광채 나는 목소리가 없지만,세상 모든 것을 감아올릴 수가 있지그러나 강한 것은 너무 쉽게 부러지므로 따뜻한 피와 살이 필요하지기린의 목은 뿔 달린 머리통을 높은 데로만 길어 올리는 사다리야그리하여 공중에 떠 있는 것들을 쉽게 잡아챌 수도 있지만사실 기린의 목은 공중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중이야쓸데없는 곡선의 힘으로 뭉쳐진 기린의 목은일찍이 빛났던 뿔로 새벽을 긁는 거야그때 태연한 나무들의 잎눈은 새벽의 신성한 상처와 피를 응시하지아주 깊게 눈을 감으면 아프리카 고원이,실눈을 뜨면 멀리서 덫과 올가미의 하루가 속삭이고 있지
내가 눌러 주기 전에는그 얇은 은박지 하나도 뚫지를 못한다.너의 빈자리에는 내 지문이 그늘지고볼록하던 너의 통통한 볼은 쏙 하니 움푹 패인다.오랫동안 정든 집을 훌쩍 떠나는 것은볼록 렌즈로 가까이의 것들만 바라보다가오목 렌즈가 되어 먼 곳을 내다보기 위한 것.아픈 이의 고통을 훔치기 위해그렇게 몰래 빠져나가한 번쯤은 남을 사랑도 해보는 것이다.뚫린 구멍은 뚫린 것이 아니고텅 빈 마음은 텅 빈 것이 아니다.그 구멍으로 맑은 피 흘려 보내고그 마음에 아프지 않은 내 맘 넣는다.한낱 플라스틱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너도남을 사랑하기 위해
오늘은 운동장에서받아쓰기하는 날바람이 들려주는 말하늘이 들려주는 말새싹이 들려주는 말참새가 들려주는 말햇살이 들려주는 말목련이 들려주는 말벚꽃이 들려주는 말봄날이 들려주는 말을받아쓰는우리 반 시 쓰기 시간[감상] 시인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 ‘듣는 사람’이다. 잘 보기, 잘 듣기가 좋은 시의 필수요건이다. 나태주 시인의 은 시 쓰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중심’이라는 시도 분리 수거장에 버려진 의자가 들려준 말에 귀를 기울였기 때
아름다운하늘 밑너도야 왔다 가는구나쓸쓸한 세상세월너도야 왔다 가는구나.다시는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그날, 우리 왜인사도 없이지나쳤던가, 하고.[감상] 아이들과 동물의 한살이를 배우고 있다. 교실에는 배추흰나비가 자라고 있다. 배추흰나비는 4번의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된다. 사마귀는 7번의 ‘허물’을 벗고 어른벌레가 된다. 곤충은 알을 깨고 나오면 1령, 다음 껍질을 벗고 나오면 2령 애벌레가 된다. 곤충의 나이를 ‘령(齡)’이라고 한다. 누에의 나이를 세는 단위다. 누에는 5령 끝에 가
사람이 온다는 건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감상] 오늘은 제42회 스승의 날이다. 5월 15일은 세종대왕의 탄신일로,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지난 3월 2일,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과 아이들은 새 학년 첫 만남을 가졌다. 올해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어
내가행복했던 곳으로 가주세요[감상] 지난주에 직장 회식이 있었다. 상사가, “어이, 김 시인! 건배사 한번 해라.”고 했다. 건배사보다는 ‘건배시’ 한 편 읊겠습니다, 했더니, 다들 귀를 쫑긋했다. 목청을 가다듬고, “택시(3초 쉬고), 내가(3초 쉬고), 행복했던 곳으로 가주세요(3초 쉬고), 끝.”이라고 낭송했다. 좌중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신영복 교수의 에는 초등학생들과 시 암송을 하는 선생님이 나온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시를 암송했다고 한다. 그중 한 아이가 학교에서 소풍을 갔는데 장기자랑 시간이었다고 한
놀라지 마세요내 부엌에는 물과 불이 있어요얼음과 숯불과 영하 20도와 영상 20도가 살아요58도의 독한 술과 13도의 순한 술이 있어요냉동고에는 치미는 분노와 살인적 치욕이 멈춘 채 정지되고세상에 새면 안 되는 일급비밀이 급냉동되어 무표정하게 굳어 있고하나의 서랍엔 비상약이 수북하게 약 주인을 향해 위협적으로 수군거리고한 주먹 털어 넣으면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약이 밤마다 눈인사를 하고다섯 개의 칼이 번뜩거리며 용도를 기다리고한 방이면 돌도 깨어지는 쇠뭉치 방망이가 있고잘게잘게 찢을 수 있는 날선 가위가 세 개쇠구멍도 뚫을 수 있는
여기숨어있는것이무얼까요어린이여러분잘찾아보세요빨리빨리눈이핑핑돌기전에한번본거또보고얼른찾아요다찾으면오징어구워줄게요오징어먹다남기면마빡한대*숨은 글씨: 기린, 이빨, 아기, 이리, 똥, 고구마[감상] 교실에 동시집 백여 권을 가져다 놓았다. 독서교육의 첫걸음은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교실에 동시집이 많이 있으니 아이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동시집을 꺼내 읽는다. 읽다가 재미있는 동시가 있으면 자랑삼아 가지고 나오는데, 권오삼, 김개미 그리고 신민규 시인의 동시집이 단연 선두다. 신민규 시인의 동시집
너로부터 도망쳤는데 도망치고 보니다시 또 너였어다시 그 자리였어막다가 받아주다가 위안이다가 통곡인너는 늘 난해했고 나는 자주 오해했어너는 자주 고요했고 나는 늘 흔들렸어울지 마내 앞에서 산 같이내 안에서 사막 같이[감상] 벽(壁)은 ‘土(흙 토)와 &?(피할 피)’로 이루어진 한자다. 벽, 담, 낭떠러지, 성의 외곽이라는 뜻을 가졌다. ?(피)는 죄수나 하인을 그린 것으로 피하다, 벗어나다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흙을 쌓아 죄수나 하인의 내부를 차단하다, 외부의 시선을 피한다는 의미다. 벽은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나 장애, 관계나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