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 21일 저녁 청와대 상춘재. 출입기자 만찬 간담회가 마련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막걸리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돌렸다. 그도 서너 사발을 들이켰다. 자리가 파하고 박 대통령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때 대변인이 대통령 곁에 서 있던 기자를 소개했다. “○○일보 강 기자입니다.” “뭐 강 기자라고?”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자신의 머리로 강 기자 이마를 세게 들이받았다. 대통령이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를 직접 물리력으로 응징한 이른바 ‘박치기 사건’이다.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때는 보수 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세
경주에는 ‘황남동 고분군’ ‘노서동 고분군’ 등 무더기별로 무덤의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동시에 1에서 155호까지 고유의 무덤 번호를 붙여 부르기도 한다. 일제시대 때 확인된 경주 시내의 평지에 있는 무덤 번호는 155호분이 마지막이었다. 155호분, ‘천마총’으로 불리고 있는 무덤이다. 천마총은 왕릉급 무덤으로 5세기 후반 혹은 6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의 천마총 발굴 조사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를 그린 장니(말다래)와 금관 등 1만15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아이는 어미젖을 빤다.빨아도 빨아도 빈 젖. 어미가 먹은 게 없으니 젖이 나올 리 없다. 보채던 울음이 희미해진다. 젖먹이 얼굴에 한 방울 떨어지는 어미 눈물. 지친 아이는 더 이상 울지 못한다. 끝내 고개가 슬며시 뒤로 꺾인다. 눈도 감지 못한다. 감을 힘도 없다.보릿고개 넘는 해는 그래도 길다.아비는 긴 한숨으로 지게를 진다. 무명적삼에 돌돌 말린 아이. 가볍다. 진 듯 만 듯. 빈 젖만 빨다 저세상 간 아이. 꺼이꺼이 눈물을 앞세워 사립을 나선다. 그림자가 불쌍하다며 앞산까지 따라온다. 차마 뒤따르지 못한 어미는 댓돌에 맥없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 문경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의 연인이자 동지. 가네코는 시대를 앞서 국가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고 스스로 올곧은 삶의 의지대로 살다가 짧은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다.가네코는 부모의 이혼으로 9세였던 1912년 조선에 있는 고모 집으로 온다. 이후 충북 청원군의 부강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을 목격한다. 가네코는 권력에 대한 저항정신, 약자에 대한 연대의지를 직관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가네코는 자연스레 아나키스트가 되고 운명처럼 독립운동
프랑스 샤토성을 모델로 1800년에 지은 미국 ‘대통령의 집’은 불과 14년 뒤 영국군의 워싱턴DC 침공 때 불타고 말았다. 미 정부는 검게 그을린 벽을 감추기 위해 석고를 바르고 흰색 페인트를 칠한다. 1900년 취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흰 집을 ‘백악관’(White House)이라 명명했다. 프랑스와 영국 콤플렉스를 딛고 세계 정치와 외교 경제를 지휘하는 상징이 됐다.백악관이 이제는 ‘백악관주식회사’(찰스 가르시아 저)로 불린다. 존슨 대통령이 1965년 도입한 ‘백악관 수련제도’ WHF(White House Fel
“한국정치의 실종은 정치 독점에서 비롯한다. 현재의 국회가 그 독점의 대표 세력이다. 국회가 국민을 걱정해도 부족할 판에 국민이 국회를 걱정하고 있다.”‘검수완박’ 법안 강행처리를 위해 탈당했다가 최근 복당한 민주당 민형배 의원. 그는 지난 20대 국회를 준엄하게 질책했다.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민주당 계열 4명이 공동집필한 ‘정치의 반전을 꿈꾸다’란 저서에서다. 그는 광주 광산구청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국회는 합의 기구’라 전제한 그는 정치독점을 ‘정치실종’으로 규정했다.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야당
뉴욕 맨허튼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엘리 사카이는 손재주 좋은 중국 이민자를 고용해 유명 미술품을 베끼게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위작(僞作)은 아시아의 눈먼 애호가들에게 팔아넘기고 진품은 미국이나 유럽에 팔았다. 르누아르의 명작 ‘목욕하는 여인’을 35만 달러에 사들여 베낀 뒤 가품은 일본 딜러에게 5만 달러에 넘기고, 진품은 소더비 경매에 내놔 65만 달러에 되팔아 35만 달러를 챙기는 수법이었다.중국의 류보넨(劉伯年)은 자신이 그린 쏘가리 그림 ‘이화궐어도’를 송대 화가 이연지가 그린 것으로 속여 상하이박물관에 팔았다. 류보넨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바이든 미국 대통령 자서전 제목이다. 그중 한 부분이다.2001년 6월 미국 백악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이 마주앉았다. 부시는 첫 순방에 나설 유럽 정책에 대해 바이든의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예상 밖의 질문을 던졌다. “김대중은 왜 그렇게 화가 났나요?”부시는 석 달 전 백악관에서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거론했다. “내가 한 말은 그 작은 공산주의자(김정일)를 믿을 수 없다는 것뿐이었어요.” 바이든이 당시 상황을 상기시켰다. “당신은 분명히 인정사정없이 그에게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 차이콥스키를 잇는 러시아 낭만주의 음악의 마지막 거장이다. 그는 한 가지도 갖기 어려운 음악의 탁월한 천재성을 세 분야에서 발휘했다. 복합화성을 바탕으로 매혹적인 선율을 작곡했고, 거대한 손으로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놀라운 테크닉을 보여줬다. 그는 또 오케스트라가 지닌 최상의 소리를 끌어내는 악기 조율 능력의 소유자였다.하지만 고통 없는 영광은 없다고 했던가. 라흐마니노프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내면의 상처가 만만치 않았다. 이 또한 우울증과 혹평, 향수병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386 정치 세력은 오만하게도 1987년 체제를 부여잡고 그 이후의 세월을 덤으로 살려고 한 몽상가들이다.” 386 정치인들을 지켜본 정치 평론가들의 평은 그리 후하지 못했다.2000년 16대 총선 때 김영춘 오영식 임종석 등 9명이 386 명찰을 달고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송영길 강기정 우상호 윤호중 이광재 이인영 최재성 등 무려 17명이 줄을 서서 들어갔다.이들은 ‘개혁’이라는 시대적 의제를 들고 여의도로 향했지만 기성 정치세력과 차별화에 실패한다. 오히려 포섭됐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들이
“돈은 정치의 생명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념보다 돈’이라는 잔인한 결론을 내렸다.지난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돈으로 얼룩진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송영길 후보가 홍영표 후보에게 0.59% P 차 신승을 거두고 당 대표가 됐다. 송 후보가 국민 여론조사에서 졌지만, 대의원 투표와 당원 여론조사에서 이겨 초박빙 뒤집기에 성공했다. 민심에서 지고 당심에서 이긴 것이다.이 당심 뒤집기에 돈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대의원과 당원 포섭을 위해 송 후보 쪽이 돈 봉투를 살포한 혐의를
도시의 파워는 면적이나 인구는 물론 지역내총생산(GRDP), 부동산 자산, 금융 자산, 지식 자산 등의 총량으로 규정된다. 도시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들 요소의 규모화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세계의 도시들이 ‘시티노믹스(Citinomics)’를 추구한다.시티노믹스는 시티(city)와 이코노믹(economic)의 합성어로 풍부한 상상력, 문화, 친환경 등으로 평가된 도시경쟁력을 강조하는 도시 경제학 용어다. 이 개념은 도시가 경제성·문화성·예술성·친환경성을 고루 갖춰야 살아남고 각광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도시경쟁력이 곧 국가
“이라크 파병은 역사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사담 후세인 제거를 위한 이라크 파병 결단을 내린다. 미국 주도의 ‘침략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대한민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 한다’는 헌법 제5조를 잘 알고 있었다. 위헌 소지가 다분했다.그런데 왜 파병 결정을 했을까?지난 2007년 한 언론에 “한미 동맹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반미면 어떠냐’ 했던 그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내려놓고 국익을 위해 좁은 선택지 ‘동맹’을 쥐어들었다. 국가를 책임
최근 국제외교에서 미국이 고립되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4월 5~7일)에서 대미-대중 균형노선과 자주 외교를 표방하는 발언을 했다.프랑스-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 ‘다극(multi-polar)세계’라는 표현을 넣었다. 다극세계는 미국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하는 국제질서인 ‘일극세계’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외교적으로 해석하면 미국 헤게모니에 프랑스와 중국이 한뜻으로 반대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마크롱은 귀국길 인터뷰에서 “우리가 미국 졸개냐, 대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싸우는데 우리가 왜 엮여
“이 재앙은 내 잘못 때문이 아닌가 하오. 백성의 사정을 살피지 않았거나 불공정하게 나랏일을 집행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없는지, 간사한 자를 관리로 뽑은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오”성종 9년(1478년) 4월 1일.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봄 농사를 걱정하던 백성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흙비였다. 흰 무명옷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민심이 흔들렸다.성종은 자신의 지도력을 자탄하면서 흙비 원인을 대신들이 토론토록 했다. 대신들은 금주령을 내리고 기생놀이를 중단시킬 것을 건의했다. 또 성종의 딸이자 도승지 임사홍의 며느리인
“외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술적이다” 동물적 외교 감각을 자랑한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외교를 예술로 평가했다. 변수가 많고 복잡하지만 성공하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예술의 정점이 정상회담이다.한미 정상회담이 우리 현대사에 변곡점을 만든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방미 회담에서 많은 전기가 마련됐다.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은 1954년 7월 27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아이젠하워 대통령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세계 최빈국과 최강국의 군사동맹이라는 기이한 조약이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걸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에는 숨은 사연들이 많다. 진경산수니, 겸재준이니 하는 필치(筆致)도 그렇지만 그림 자체가 담고 있는 얘기들이 흥미롭다.인왕제색도는 겸재가 1751년 윤오월 장마 그친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렸다. 우람한 암봉 아래 산허리를 포근히 감싼 안개가 채 가시지 않았다. 가로세로 138.2×79.2㎝로 겸재의 유작 400여 점 가운데 최고 큰 작품이다. 조선 초기 ‘관념산수’의 걸작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1447)가 있다면 ‘인왕제색도’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최고 작품이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겠소?” 1945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진 딕슨’이라는 소녀 점쟁이에게 물었다.“6개월 이내에 죽습니다” 그는 3개월 뒤 뇌출혈로 급서했다.1957년에는 ‘3년 뒤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암살될 것’이라고 그녀가 예언했다. 존 F 케네디가 예언의 희생 제물이 됐다.레이건 미국 대통령도 점성술에 기댔다. 1981년 피격 후 점성술사 퀴글리가 대통령 일정에 개입했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점성술사가 그렇게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고 국정개입을 자랑했다.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고
사모펀드(Private Placement Fund)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이나 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다. 투자신탁업법에서는 100인 이하의 투자자, 자본시장법은 49인 이하(50인 미만)의 특정한 소수로부터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로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는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와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거나 경영·재무 자문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로 나뉜다.하지만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사모펀드는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사냥꾼’의 모습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봄 진해 내항.우리나라 첫 핵실험이 이승만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이뤄졌다. 바다에 설치된 부표가 ‘퍽’하며 폭파됐다. 소리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이 실험을 주도한 일본인 오카다(崗田)는 “이 폭발은 10볼트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100만 볼트에서 만들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과는 비교될 수 없는 폭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압 발전만 하면 원자탄 수소탄을 다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우물쭈물하다 대만에 뺏긴다’는 독려에 극비리에 ‘모셔온’ 노인은 자신 있게 설명했다.일본이 태평양 전쟁 막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