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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비끼는 가을언덕에 새하얜 앞치마 정갈히 차려입은 꼬맹이 새댁 살포시 웃음 띤듯하지만 꽃빛을 보면 알아 울음을 깨물고 있는 게야 두 귀를 둥글게 열어 들어보니 내 고향 억양이네 정성스레 냄새를 맡아보니 무명적삼서 배어나던 울엄니 땀내 울먹대는 사연을 들어보니 무망중에 떠나온 길이 마지막이었다는 고향집 언저리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쑥부쟁이야 쑥부쟁이야 층층시하 시집살이가 고달픈 거니 오매불망 친정붙이들 그리운 거니 옮겨 앉...
아침시단
200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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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 가는 길에 빛들은 그림자 곁으로 모이고 생의 것들이 속인 잠들만이 자정을 넘는다, 또한 구두 한 켤레로 남은 사내는 마지막 담뱃불로 그의 치열함을 지운다, 이것이 우리를 둘러싼 것이라면 바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리라 목구멍으로부터 혹은 폐로부터 울려 올라오는 잔뿌리들은 의자며 계단이며 간판을 움켜잡은 채 저녁에 웅웅거리고 있다 산 것들만이 죽은 것들이 두려워 불을 켜는 밤 또 누군가는 옥상에 올라 아득한 추락의 깊이에 앙상한 눈을 감는다 ...
아침시단
200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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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를 깨끗이 씻어낸다 오늘의 얼굴에 묻은 어제의 눈곱 어제의 잠 어젯밤 어둠 어제밤 이부자리 속의 어지러웠던 꿈 어제가 혈기를 거둬간 얼굴의 창백함을 힘 있지는 않지만 느리지는 않은 내 손길로 문질러 버린다 늘 같아 보이지만 늘 새것인 물이 얼굴에 흠뻑 !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늘엔 오늘 아침 갓 씻어낸 물방울 숭숭 맺힌 나의 얼굴이 있고 그러나 웬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지 않은가 어제는 잔주름만 남겨 놓았고 오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것 어제의 하루를...
아침시단
200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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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날 때부터 천(千)의 나무로 움텄을까 자고나면 솟아나는 가지들이너무 버거워 그때부터 하나 둘 내 그림자 내가 지우듯 욕망의 높은 파고에 밀려나며 무너졌느니 자르면 자를수록 돋아나는 나 뭇가지무시로 불쑥불쑥 관절마다 튀어나와 가다간 섬뜩섬뜩 주저앉던 내 발걸음 산다는 것은, 자생하 는 나무 내가 나를 다스리는 것 한 그루 나의 나무로 오롯이 남기 위한 것 오늘도 사정없이 내가 나를 끊 어 내린다 잘라도 벋는 그리움 뽑아도 자라는역병의 나무
아침시단
200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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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
아침시단
200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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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나서 기다려 서면 오가는 일들이 다 그리움 뿐 산뿌리를 휘감돌아 나가는 물소리, 차가움만 옷깃에 스밀 뿐, 떨리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르면 높게 떠 흐르던 그 깊은 심중의 메아리, 돌면 돌아갈수록 더욱 꽹하게 들려오는 그리움, 의식의 뒤꼍에 앉아 서운한 그림자를 글고 가리 부석사 산문에서 듣는 쇠북소리 먹물처럼 퍼져 쟁쟁하고. 이 시대에 내 것이라는 그런 정신, 우리의 것이라는 정체성을 찾을 길은 없는가? 살아가면서 더욱 그런것들이 절실해지는 ...
아침시단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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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피도 흘러서 하늘로 가고 가랑잎도 흘러서 하늘로 간다. 어디서부터 흐르는지도 모르게 번쩍이는 길이 되어 떠나감 되어. 끝까지 잠 안든 시간을 조금씩 얼굴에 묻혀가지고 빛으로 포효(咆哮)하며 오르는 사랑아. 그걸 따라 우리도 모두 흘러서 울 이유도 없이 하늘로 하늘로 가고 있나니. 이 시는 하늘을 나는 새떼를 보며 시인이 펼친 단상(斷想)을 담고있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생명의 상징...
아침시단
200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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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들이 풀잎에 떨어질 때마다 딩 딩, 풀잎이 오르간 소리를 낸다 다른 풀잎들도 한꺼번에 몸을 젖혀가며 제 몸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나뭇가지에서 막 떨어져 나온 은행잎 하나가 원래 그곳이 제 집이었던 것처럼 가장 편안한 자세로 풀의 무릎 아래 눕는다 누가 내 정신의 건반을 두드리는 것일까 몸속에서 작은 음계 하나 떠오른다 저 풀잎들처럼 나도 어느덧 내 몸을 연주하고 있다 시인의 감성에 젖어들면 모든 오감이 예민해집니다. 보이지 ...
아침시단
200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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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에 몰린 은어(銀魚)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 래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이프가 감긴다.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旗幅)이 찢어진다. 갈대가 스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이 시는 '강강술래' 하는 무리들의 모습과 춤의 연행과정을 시각적인 회화성과 청각적 음...
아침시단
200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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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 환한 길을 찰랑찰랑 너 걸어간 뒤에 길이란 길은 모두 그곳으로 열며 지나간 뒤에 그 향기 스친 가지마다 주렁주렁 거리는 네 얼굴 이윽고 볼따구니 볼따구니 하도나 빨개지어선 내 발목 삔 오랜 그리움은 청천(靑天)의 시간까지를 밝히리 길이란 길은 모두 바람이 붐비며 설렌다네 왜 모든 길은 사랑이 떠나간 길로 몰려갔다가 고개 숙인 채 돌아와야 하는 것인지, 사과 꽃 진 ㅂ자리는 사과 꽃이 피었던 자리다. 사랑도 향기로 남는 사랑이...
아침시단
200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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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들이 풀잎에 떨어질 때마다 딩 딩, 풀잎이 오르간 소리를 낸다 다른 풀잎들도 한꺼번에 몸을 젖혀가며 제 몸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나뭇가지에서 막 떨어져 나온 은행잎 하나가 원래 그곳이 제 집이었던 것처럼 가장 편안한 자세로 풀의 무릎 아래 눕는다 누가 내 정신의 건반을 두드리는 것일까 몸속에서 작은 음계 하나 떠오른다 저 풀잎들처럼 나도 어느덧 내 몸을 연주하고 있다 〔감상〕시인의 감성에 젖어들면 모든 오감이 예민해집니다. 보이...
아침시단
200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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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가슴에 그렇게 흘리며 뼛 속 낮달까지 떠내려 보내면서 살점에 묻은 산 그늘도 씻으면서 그리운 사람 찾아가는 발걸음 소리 진실로 그리운 사람아 내 발바닥 소등처럼 굽어 바로 걸어도 바르지 않구나 멈추어도 멈추어지지 않는구나 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눈을 감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왜 그렇게 뼛속 깊이 사무친 그리움의 낮달까지 가슴팍 가득 떠나 보내야 하는지, 산과 들을 헤매며 오는 도중에 묻은 산 그늘까지 씻어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강물소리는 그리운 사람...
아침시단
200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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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정에 섰다 차고 예리한 바람이 가슴을 찔렀다 늘 끝이고 늘 시작이었던 여기서부터 산 아래까지는 겨울이다 드센 바람에 부딪쳐 향기로운 소리가 울려날 눈물은 다시 가슴으로 스몄다 울지 마라, 앞으로 울 일이 많으니 소리 없이 우는 여자를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곤 했다 봄이 눈물겨운 것은 오래도록 뿌리가 봄 쪽으로 젖혀 있기 때문이라고 눈물겹게 말씀하셨다 눈물 무성했던 나뭇잎이 다시 나무속으로 들고 눈물겹게 울었던 꽃향기가 다시...
아침시단
강미정
200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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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고 어둠 내려서 길 잃었네 나무야, 너는 굳센 뿌리로 대지를 움켜쥐고 팔 들어 별을 헤아리겠지만, 나는 네 뿌리 밑으로 노래의 씨를 묻는다네 길 잃은 슬픔 너무도 오래 사랑하여 슬픔이 한 꽃송이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나는 외로운 시간 너무도 오래 사랑하여 슬픔이 한 꽃송이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나는 나무야, 네 뿌리 밑으로 별의 푸른 밝음을 묻는다네 영영 결별 없는 사랑이 되기 위해 언 땅 위에서 아직도 집 짓지 못한 벌레의 집이 되고 동행 없어 외마디 비명으로...
아침시단
200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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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 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아침시단
200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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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등불을 켜고 보면 저만큼 지나가 버린 사람의 뒷모습도 아름답다 젊음의 서투른 젓가락질 사이로 빠져나간 생각들이 접시에 다시 담기고 사랑니 뺀 빰처럼 부풀어 오른 한낮의 취기도 딱딱한 거리를 훈훈하게 한다 나무들도 나처럼 한 잔의 술로 등불을 켜는 것일까 겨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윈 저들의 어깨가 지나친 사람의 뒷모습처럼 아름답다(중략) 가슴속에 등불을 켜고 보면 스쳐 지나간 사람의 옛모습도 종이학처럼 작게 접힌다 비록 삭막한 겨울 한 복...
아침시단
200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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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고 어둠 내려서 길 잃었네 나무야, 너는 굳센 뿌리로 대지를 움켜쥐고 팔 들어 별을 헤아리겠지만, 나는 네 뿌리 밑으로 노래의 씨를 묻는다네 길 잃은 슬픔 너무도 오래 사랑하여 슬픔이 한 꽃송이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나는 외로운 시간 너무도 오래 사랑하여 슬픔이 한 꽃송이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나는 나무야, 네 뿌리 밑으로 별의 푸른 밝음을 묻는다네 영영 결별 없는 사랑이 되기 위해 언 땅 위에서 아직도 집 짓지 못한 벌레의 집이 되고 동행 없어 외마디 비명으로...
아침시단
200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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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냇물이 흙에 스미며 스스로 제 몸을 조금씩 줄이는 일 가끔은 저렇게 작고 아름다운 것이 내 가슴을 칠 때가 있네 시인이 시를 쓰려고 만년필 뚜껑을 여는 일 저녁이 되어 세상의 아낙들이 쌀을 씻으려고 쌀독의 뚜껑을 여는 일 착한 소와 말들이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마구간에서 고단한 눈을 감는 일 저 작고 아름다운 것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거룩하게 보일 때가 있네 이 시는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는 통찰과 혜안이 있는 좋은 시다. '...
아침시단
200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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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 죽으면 사망했다 하고 넉넉하고 잘 배운 사람들 죽으면 타계했다 별세했다 유명을 달리했다 하고 높은 사람 죽으면 서거했다 붕어했다 승하했다 한다 죽었으면 죽은 거지 죽었다는 말도 이렇게 달리 쓴다, 우리는 나이 어린 사람이면 죽었다 나이든 사람이면 돌아가셨다 이러면 될걸 발상이 단순한 것 같지만 굉장히 근본적인 생각이 함축되어 있는 시다. 이 시인도 우리말에 높임말 낮춤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침시단
200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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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나는 가난을 석쇠에 구워 눈치만 젓가락질하던 시절 아버지 생신 날은 온 동네가 비린내도 나누었다 가난해서 행복했던 그 때 그 아침에는 동네 사람들의 살진 웃음도 배불렀다 해마다 봄이 오듯 아버지 생신이 오면 알이 통통한 오사리 굴비 식탁에 올려 놓고 아버지 그 이름 불러도 그 때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허무만 젓가락질 하는 빈 손에 바다만 출렁인다 가난한 시절에 겪었던 아버지 생신날, 온동네에 비린내 풍기며 사람들의 살진 ...
아침시단
2009-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