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발하는 빛의 정성은 씨알(實)을 만든다. 태양은 자신을 불태워서 이 세상 모든 열매들을 익힌다. 과일 한 알 한 알 속에 태양은 화학변화로 자신을 각인해 둔다. 색깔과 모양과 맛으로 그 위대한 흔적을 남긴다. 알갱이를 원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알알이 가서 박혀, 그것을 그들의 영혼이 되도록 한다. 작열하는 태양에 달아오르는 만물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사물들은 차츰 온기를 버린다. 그 많던 열은 내리고, 서늘해지며, 차분해진다. 남쪽이 아니라 이제 서쪽이 주인이 되는 시기이다. 이때 곡식과 과실들은 수처작주(隨處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꼴 보기 싫어도, 피하고 싶어도 그냥 모른 척 지내야 할 때가 많다. 남들에게 성인군자연하는 멀쩡한 얼굴인데, 늘상 사람을 음해하거나 해코지해대는 경우는 어떤가. 보이스피싱을 당해 본 사람은 안다. 그냥 걸려오는 전화 벨소리, 평범한 인간의 목소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악마성이나 범죄는 일상성-평범함 속에 늘 발톱을 숨기고 있다. 물론 선행이나 성스러움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것이 누구에게는 축복이나 누구에게는 비극이고 불행일 수 있다. 엇비슷한 얼굴만 스쳐도 ...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이제 이런 노래를 부르기도 안쓰럽다. 젊음은 더 이상 희망의 표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젊은이 '답다'라는 말의 알맹이는 패기, 도전정신이었다. 그러나 이제 젊음은 무기력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젊음에게 미안하다. 머리속엔 '파란 낙엽'이 넘실댄다. 아직 새파란데 낙엽이라니. 채 피지도 않은 것이 시들다니. 얄궂다. 심리적 결혼 한계선이 월급 200만원, 그 이하는 자격 미달이란 말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난 날 맨몸으로 돈 벌어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독립군의 무용담처럼 들...
개가 혼자 자라면 '사회성'이 없을까 해서…. 혼자 두면 밥을 안 먹어서…. 혼자 집에 두면 외로움을 느낄까 해서…. 등등의 이유로 개들을 위한 '전용방송'이 늘고 있단다. 개들을 위한 호텔, 유치원, 장의사, 보험, 전용 매거진이 등장한 지 오래이다. 이런 추세라면 개들을 위한 요리학원, 식당, 까페, 미용실, 학교, 대학원, 헬스장, 뱃살방, 찜질방, 수영장, 영화관 등등 수많은 시설과 사업, 업종이 생겨나리라. 이뿐이랴. 개들의 한옥촌, 공동묘지, 문화유적지, 사진관, 여행 관광 상품, 비행기, 방송국, 교회와 사찰, 출...
서정주의 시 '밀어(密語)'를 읽는다.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하늘 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늘인 차일을 두른 듯/아득한 하늘가에//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그렇다. 굳게 닫힌 문을 열 수 조차 없다면, 꽃봉오리를 볼 수 없다. 얽히고 꼬인 문제를 풀려면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보통 문제 주변에는 발상법, 아이디어나 언어들이 겉돌고 있다. 그것은 첨단 잠금장치의 비밀번호처럼 짜임(맥락·문법)을 맞춰내야 작동한다. "강수(强首)는 문장을 잘 지어 중국(당나라)을 ...
서부영화였던가. 처음 회전초(回轉草)를 보았을 때 참 신기하였다. 뿌리없이 말라비틀어진 둥근 풀 뭉치들이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며, 마른 대지 위를 굴러다닌다. 놀랍게도 그것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거친 땅 바닥 위를 정처 없이 굴러다니나 어떻게든 영양분을 빨아 들이며 살아 있단다. 참 끈질긴 생명력이다. 제로 상태에서 전전하는 물건이지만 전혀 쓸쓸해 보이거나 고독해 보이지 않는다. 아예 그런 마음을 내면에 묻어 두지 않고 야무지게 사방으로 굴러다닌다. 뿌리내리지 않으니 거처가 필요 없다. 스쳐 지나는 바닥이나 허공이 자...
"한국은 메르스와 대중의 공포, 이 두 가지 전투를 치르고 있다" 지난 9일, 미국 CNN 방송은 이렇게 보도했단다. '병' 자체와 사회로 확산되는 '병에 대한 공포심'은 분명 다른 것이나 이 둘이 뒤섞여 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염병에 허물어지는 개개인 신체적 면역 체계도 심각하나, 더 걱정인 것은 멘붕 상태에 빠져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우리 사회의 심리적 면역 체계이다. 얼이 빠지고 넋이 나간다는 '혼비백산(魂飛魄散)'은 인간의 죽음을 뜻한다. 몸(신체)이 허물어지면 곧 마음(정신)도 파탄난다. 개인의 신체도...
노래를 들었다. 사랑하는데 외롭단다.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제목에 끌렸는데, 다 듣고 나니 쓸쓸하고, 슬프고, 공허하다. 노래 속의 '난 너무 잘 살고 있어… 인생은 이토록 화려한데'라는 말이 의심스럽다. '…난 너무 잘살고 있어 한데 왜/너무 외롭다 나 눈물이 난다//내 인생은 이토록 화려한데/고독이 온다 넌 나에게 묻는다/너는 이 순간 진짜 행복 하니…사랑이 뭘까 난 그게 참 궁금해/사랑하면서 난 또 외롭다/사는 게 뭘까 왜 이렇게 외롭니' 빼먹었지만, 노래 제일 앞부분은 이렇다.'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주말엔 영화...
나이 티 내는 사람들이 싫다. 서울 가는 기차 속 두 중년 남자가 언성을 높인다. 서로 형이라 우긴다. 음력이니 양력이니 옥신각신. 심지어 몇월 몇일까지 따져댄다. 꼴불견이다. 참네,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나이든 것을 서로 잘 났다고 폼 잡는 투다.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그딴 나이나 따지고 앉았을까. 그럴 시간에 신문이라도 한 줄 읽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내 나이도 만만찮다. 측은해진다. 그러나 나는 각오하고 또 각오한다. 나이 들어도 노약자석이나 경로우대석에는 절대 앉지 말아야지. 남들에게 양보해야지. 늙은이 대접 ...
박목월의 시 '난(蘭)을 읽는다. '이쯤에서 그만 하직(下直)하고 싶다./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여유 있는 하직은/한포기 난(蘭)을 기르듯/애석하게 버린 것에서/조용히 살아가고,/가지를 뻗고,/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아아/먼 곳에서 그윽이 향기를/머금고 싶다' 여유 있을 때 두 손들고 항복하고 그만 하직하라 한다. 그리하여 멀어지고 버려지나, 그 애석함 섭섭함을 난 한포기 키우는 마음으로 조용히 살아가라 한다. 하직이란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 먼 길...
지난 해 옥산서원(玉山書院)의 독락당(獨樂堂)에 들렀다. 평소 가고 싶었던, 경주 안강 옥산리에 있는 회재 이언적의 고택 사랑채다. 조선 중기의 박인로는 독락당을 찾아 회재를 사모하는 마음을 담고 주변 경관을 읊은 가사 '독락당'을 지었다. 장현광 문하의 이지백은 독락당을 호로 삼고 영천의 용산리 원각에 은거 강학하는 정자 독락당을 지었다. 뿐만아니다. 순천 선암사 등에도 독락당이 있다. 유교 전통에서는 홀로 있을 때, 나 홀로 있다는 생각을 삼가라는 뜻에서 '신독(愼獨)'을 중시하나, 우리 선현들은 유독 '독락'을 목표로 삼...
새벽 녘 창가엔 바람이 흔드는 나무 그림자로 가득하다. '성벽은 말없이/차갑게 서 있고, 바람곁에/풍향기는 덜걱거리네'라고, 시인 휄덜린이 '반평생'에서 읊었듯이, 등불을 끄면서 잠시 생각해 본다. 몇 겹의 문을 닫으며 4중, 5중으로 갇히면서, 뚜벅뚜벅 고요속으로 걸어드는 용기가 없다면 우두커니 바람을 견디며 덜걱대는 저 나뭇가지의 자유를 얻지 못하리라. 어둠이 내리고,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고, 방문을 닫고, 전등을 끄고, 마지막 눈꺼풀을 닫아야 내 잠은 편히 자리 잡는다. 몇 겹의 장미 꽃잎 같은, 세상의 수많은 눈꺼...
1971년 가수 배호가 죽은 뒤, 40여년 만에 발견된 미발표곡 '밤안개 속의 사랑'을 생각한다. 취입은 했으나 발표를 못한 채 세상을 떠나, 줄곧 묻혀 있었던 노래다. 몇 해 전 나는 비 내리는 날 국수집에서 처음 그것을 들었다. 국수자락을 삼키다 말고, 멍 때리며 한참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아마 백번은 더 들었으리라. 왜냐면, 우리 사회가 겪었던 슬픔과 한(恨)의 '밈'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 박자 빨랐던 배호의 삶을 담은 노래는, 한 박자 느린 걸음으로 절뚝대며 안개 속을 부유하던, 우리 역사의 르쌍티망이리라....
삶은 어차피 '맨발'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삶은 원래 정처가 없다.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자리. '행행도처(行行到處), 지지발처(至至發處)'다. 처음 이 땅에 '맨발'로 왔듯, 우리는 다시 맨발로 떠나야 하리. 사람은 위대하거나 허접하거나 결국 흙에 묻힌다. 종일 쉴 틈 없이 먹이를 찾아 뛰어다니다가 덥석 덫에 걸려드는 짐승처럼, 잘 났거나 못났거나 우리는 하나같이 흙(고향)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고 아낄 것은, 명예도 돈도 애인도 아니다. 꽃 피고 눈 내리는 곳, 저 대자연이다. 모든 것을...
방의 머리맡에 어지러이 흩어진 책들. 서재 이곳저곳 삐뚤삐뚤 쌓여 높아만 가는 책들을 쿨 하게 태워버릴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여태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 책에 미련이 많다는 것. 더 이상 쌓아둘 곳은 없는데, 태워버리기는 아깝고, 계륵 같다. 태워버려야 할 책 '분서(焚書)', 묻어버려야 할 책 '장서(藏書)', 이런 아주 폼 나는 책을 쓴 사람이 있다. 명대 말기 진보적인 양명학자 이지(李贄)다. 양명학을 갈 데까지 밀고나가, 그 벼랑 끝에서 책-지식으로 덮을 수 없는 인간의 밑바닥에, 시퍼렇게 빛나는 진짜 마음 ...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다. 서울 대학가에 '1인 식당'이 등장했다고 호들갑이다. 이런 게 뉴스거리가 되는 게 뉴스거리다. 90년대 중반 "이제 한국 사람도 혼자 밥 먹을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일본의 한 한국학자가 쓴 책에서 였다. 이 글을 읽고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하며 나는 사생활이 들킨 듯 불편했다. 예전부터 우리에겐 혼자 밥 먹는 습관이 부족했다. 최소한 두세 명씩 떼 지어 몰려 다녔다. 때가 되면 으레 옆방을 노크하거나 전화를 해서 반강제로 사람들을 모았다. 도시락...
"내일 모레 오십이다…환갑이다…." 대놓고 나이 타령을 시작하면 약해졌다는 말이다. 체력이 딸리거나 말빨이 안 서니, 자식이나 젊은 애들 앞에서 슬슬 '나이' 카드를 꺼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나이 따짐'은 자연을 질서와 권위로 인정하자는 것. 나이가 많고 적고에 따라 '위 아래'를 정하는, '찬물에도 순서가 있다'는 전통 관례 '장유유서'(長幼有序)에 슬쩍 무임승차 하고 싶어진 것이다. '연장자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전통사회의 불문율이니, 아래가 위를 존중하는 룰을 침해해선 안 된다. 이것을 '범상'(犯...
어릴 적 고향 읍내를 지나노라면, 늘 귓전을 때려댔다. 저음 가수 배호가 부르던 '생일없는 소년'. 1966에 나온 영화의 주제가다.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버렸나요/한도 많은 세상길에 눈물만 흘립니다/동서남북 방방곡곡 구름은 흘러가도/생일 없는 어린 넋은 어디메가 고향이오.//어머니 아버지 왜 말이 없습니까/모진 것이 목숨이라 그러나 살겠어요/그리워라 우리 부모 어드메 계시온지/꿈에라도 다시 한 번 그 얼굴을 비춰주오.' 눈물이 핑 도는 이 노래는 '버리고 떠남' '헤어짐'의 슬픔을 토로한 것이다. 씻김굿처럼, 아니 빗자루...
나이 들어 홀로 된 남자를 '홀아비'나 과부(寡夫)라고 한다. 홀아비 하면 '홀어미'가 떠오른다. 나이 들어 남편이 죽고 홀로 된 여자이다. 있어야 할 짝이 없어서 일까. '적다' '모자라다'는 뜻의 '과' 한 글자만으로도 과부를 뜻한다. 남편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무언가 모자란다니 가혹하다. 과부는 '과녀(寡女)', 과모(寡母), 과수(寡守), 상부(孀婦), 원부(怨婦), 이부(怨婦) 등으로도 불린다. 이 뿐인가. 딴딴하거나 단독으로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과(怨)' 자도 과부의 뜻이다. 호칭이 많다는 것은 말도, 탈도, ...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최근 자주 접하는 기사다. '노인들, 홀로 쓸쓸히 잠들다' 단칸방서 홀로 5~6년 앓다가 쓸쓸히 떠나는 '한국식 죽음'. 노인들의 '고독사'가 매년 증가하고 있단다. 9988234. 한때 우리 사회에 유행했던 숫자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딱 앓다가 '4'(死)했으면 좋겠다는 뜻. 욕심도 많다 하겠지만 모두 바라는 바 아닌가. 예전부터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고 했다. 전통시대에는 소외받는 사람들을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