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빛그림 작가의 는 한 편의 영화를 글로 옮겨놓은 듯한 소설입니다. 제목부터 ‘오래된 사진(흘러간 영화)’입니다. 영화사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로, 영화는 이미지의 자동운동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통한 사유의 운동을 보여주었고, 더 나아가 개념적 사유의 틀에 포착되지 못하는 감각, 정서, 지각의 영역을 확대시켰습니다. 그동안 사유의 바깥에 머물고 있던 인간의 육체와 사물의 시간을 사유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의 (예술적) 힘이 몰각되고 오직 상업적 가치만 추구되면서 매너리즘과 선
랍비들이 회의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원탁의 한 좌석을 비워둔다고 한다. 그 좌석은 하나님의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빈 공간이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상징한다고 믿는 태도가 일상 속에 녹아있다는 것이 놀랍고 심오해 보인다. 회의에 참석한 랍비들의 생각의 총합만으로는 선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는 오랜 경험이 믿음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추정해본다.20세기 정치사는 전체주의와 투쟁의 역사이다. 하나의 세력이 스스로를 오류가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자기 정파의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를 절대적 진리의 자리에 놓으면서 시민들에게 강요
피로(疲勞)에서 疲는 지치고 고달픈 상태를, 勞는 힘들여 일하는 모습을 지칭한다. 정신적인 활동이든 육체적인 활동이든 어떤 노동을 통해 자신이 지치고 고달프다고 느끼면 보통 피로하다고 표현한다. 피로는 현대인들이 공유하는 대표적인 감정이자 상태다. 코로나19로 인해 현대인이 느끼는 피로도는 일반적인 역치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수용 불가능할 정도의 피로를 안고 사는 현대인은 역설적으로 피로를 놓지 못한다.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烏瞰圖)”에 등장하는 열세 명의 아이들처럼 현대인은 질주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체 모를
현대 서사물로서의 영화는 날로 그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소설이 하던 역할을 이제는 영화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설이 맡아온 새로운 정보의 전달, 위안과 교훈을 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와 신기한 사물과 사건의 소개는 주로 영화 쪽에서 수행합니다. 소설은 한 개인의 예외적인 삶의 경험이나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핍진성 있는 현실묘사를 주로 담당하고요. 최근에 나온 소설들을 읽어보니 그런 경향이 완연합니다. 예술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니 영상시대를 맞이해 그렇게 서사문학의 영역 정리와 역할 분담이
일주일 전의 이야기다. 필자가 보직을 맡고 있는 단과대학의 어느 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지인 학생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인즉, 그 학생이 수일 전에 구례 운조루(雲鳥樓)를 방문하였는데 마침 개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운조루를 자세히 보지 못하고 왔다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찍은 몇 장의 수리 중인 사진을 보여주었다. 몇 년 전 수업시간에 운조루와 뒤주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기억하고 있던 이 학생이 운조루를 찾아갔었나 보다. 오랜만에 들어본 반가운 소식이었다.운조루가 위치한 구례는 필자가 어린 시절
최근에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한류로 상징되는 한국문화콘텐츠는 K-팝, K-드라마, K-무비 등등 다양한 장르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K-팝을 대표하는 BTS(방탄소년단)은 2년 연속 음반계의 아카데미상에 해당되는 그래미상 후보로 올랐음에도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미(army)’라고 하는 세계적인 팬덤층을 갖고 있다. 지난 4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BTS의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인권(人權)에는 세대론이 있다. 1979년 프랑스 법학자 카렐 바작(Karel Vasak)은 프랑스 인권혁명의 표어인 자유, 평등, 박애를 참조해 인권이 발전되어 온 세 가지 세대 개념을 제안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기초한 자유권적 인권으로서 1세대 인권,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바탕을 둔 사회권적 인권으로서 2세대 인권, 그리고 이전 세대의 권리를 넘어서 평화권, 발전권, 환경권, 인류의 공동유산에 대한 권리 등을 아우르는 3세대 인권에 이르기까지, 근대 이후 인권은 단계적으로 성장하고 확장해 왔다. 이러한 인권
횡설수설(橫說竪說)의 사전적 의미는 ‘조리가 없이 이것저것 되는대로 지껄임’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불가(佛家)에서 그 반대의 뜻으로 사용되던 말이라는 걸 아는 분은 드뭅니다. 원래는 ‘무불통지(無不通知)’, 불교 경전을 가로로 세로로 다 외면서 그 뜻을 능숙하게 설법한다는 뜻이랍니다. 불가의 우스갯소리에 “팔만대장경을 가로세로 앞으로 뒤로 다 읊는다”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 말이 바로 횡설수설의 원래 뜻을 빗댄 말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좋은 뜻이 나쁜 뜻으로, 깊은 뜻이 가벼운 뜻으로, 혹은 전혀 다른 뜻으로 말뜻이 바뀌는 일은 종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전 세계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격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강제합병 이후 우크라이나를 향해 끊임없이 전쟁 도발을 멈추지 않아 유럽 국가들과 전 세계를 긴장 속에 빠뜨렸다. 이를 지켜보던 국제사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을 시작하였고 침공 하루 만에 150여명의 사상자를 내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애프를 포위하는 등 거친 군사작전을 강행하고 있고 전쟁은 우크라
2022년 글로벌 통상에서 최대의 화두는 미국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가 될 전망이다. IPEF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작년 10월 27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East Asia Summit)에서 제안한 구상으로 경제와 안보의 연대를 강조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비롯된다. 2022년 2월 25일에 발표한 미국 의회 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17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Strategic E
2021년 1월 5일부터 KTX-이음 열차가 ‘청량리역~안동역 구간’에서의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2시간 만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KTX 운행을 위해서 안동시는 운흥동에 위치했던 안동역을 안동버스터미널이 있는 송현동 쪽으로 이전했다. 1931년 건립된 안동역은 이제 기차역의 기능을 상실한 역사(驛舍)가 되었다. 안동시는 구 안동역사부지의 활용에 대한 기본 활용안을 마련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12월에 열린 ‘안동역사부지 기본계획 수립 용역 시민 공
지난주, 여행은 새로운 나를 찾아서 떠나는 ‘자기 부정의 행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다녀오는 휴가철 여행이나 운명공동체의 단란한 유대를 확인하는 가족여행은 여행이 아니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넓게 보면 다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한 모험과 탐색의 여정입니다. 하와이 와이키키로 떠나는 주말여행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답사하는 고행의 걷기나 모두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할 것입니다. ‘새로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야기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이 네키야(Nekyia, 밤
한국은 지난해 9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부터 ‘개발도상국’ 지위로부터 ‘선진국그룹’으로 공식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1964년 운크타드 설립 당시 가입한 이후 57년 만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국가의 지위가 변경된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수년 전부터 한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은 6445억불로 세계 무역순위 8위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지난해 기준 10위권이다. 1인당 국민소득(GNI)은 3만5168달러로 인구 50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배하자 송영길 당대표가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뒤이어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박지현 전 이재명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이 윤호중 원내총무와 함께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 소식을 접하고 조만간 박 위원장에게 험악한 뒷담화가 쏟아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가 춘천 소재 한림대 출신의 20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소위 SKY대학 출신의 50대 이상 남성 집단이 지배하는 중앙정치무대에서 그의 정체성은 쉽게 수용되기 어렵다. 그런데 그가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2001년 1월, 개통한 지 6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경기 시흥시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에 탑승한 노부부가 7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자가 발생했다. 오이도역 장애인 수직형 리프트 추락 사고를 계기로 2001년 4월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가 출범하였고, “장애인과 함께 지하철을 탑시다” 및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와 같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이어졌다. 이후 2002년 5월, 발산역에서 중증장애인이 고정형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사하는 사건이 있었고, 연달아 발생한 이와 같은 불행한 사고는 장애인 이동권이 공론의 장에서 본
집 떠나기, 여행이란 무엇인가? 글쓰기의 소재로서 여행이란 또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 간다는 것은 나를 붙들고 있는 ‘낯익은 것들’로부터의 물리적 이탈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나를 보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여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문물이나 낯선 배경과의 만남은 그것을 위한 과정이나 방법이겠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설가가 여행 이야기를 즐겨 다룬다는 것은 평소의 삶(일상)이 간과하는 어떤 삶의 본질에 대해서, 혹은 그것 속에서의 ‘나’에 대해서 무언가 할
남북관계는 국내 정부와 시민들의 평화통일운동에 대한 헌신도 필요하지만 그 외에도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주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특히 한반도 현실에 대한 설명과 지지를 일본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시민과 정부를 통해 얻어 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남북 당국자 간의 갈등이 지속될 때는 민간교류의 영역도 곧바로 얼어붙어 버리는 점을 감안할 때 다양한 국제적 교류와 협력의 채널을 확보하는 것도 지속적인 남북의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2019년 G20 정상회담을 마치고 6월 30일 트럼프는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과의 회담
2022년을 맞이하면서 많은 대학들이 다시 대면(對面)강의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종의 높은 전염성 때문에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지만,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비대면(非對面) 강의만으로는 대학 교육의 목표를 온전히 성취할 수 없다는 일종의 한계를 실감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학 재정의 악화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도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다시 대학 캠퍼스로 소환한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비대면 강의를 통해 상아탑의 지식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를 발견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대표적인 사례를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인생의 ‘끝’에 가까워지니 환경과의 일체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끝이 좋다’는 것은 결국 온갖 불화를 극복하고 환경과의 동일성을 회복했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환경으로부터 괴리되고, 세계로부터의 소외를 겪는 것이 모든 불행감의 출발점입니다. 저의 인생도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소외를 넘어서고 세계와의 화해를 이루려는 발버둥이었습니다. 그나마 저는 이렇게 신문에 칼럼도 연재하기도 하며 대체로 무난하게, ‘끝 소감’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소년고생은 좀 있었으나 가족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쟁을 일으킨 지 한 달이 지났다. 전쟁은 그 이유가 뭐가 되었던 반인륜적이고 문명파괴적인 행위이다. 무고한 양민과 힘없는 여성과 어린이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잔악함에 치를 떨게 된다. 전쟁은 또한 직접 참가하는 군인들에게는 죽음의 공포와 상흔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과 트라우마 속에서 지내게 만들기도 한다. 많이 알려진 사실은 아니나 역사 속의 수많은 전쟁은 약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약물과 관련하여 많이 알려진 전쟁은 아편전쟁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청나라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