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언제나 새롭게 구성된다. 그래서 기억은 불가피하게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기억은 보이지 않는 여과장치를 통해 어떤 것은 존속하고, 어떤 것은 억압되며, 그 외의 것들은 폐기된다. 이런 이유로 기억은 망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망각 또한 기억의 일종인 셈이다.그렇다면 어떤 기억들이 주로 폐기되는가? 기억은 사회적 권력관계에 종속되고 집단의 이익과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의 기억은 사회적 틀 내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어떤 개인적인 기억도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 개인의 기억은 기억행위를 통해 사회적 틀에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는 말이 나오면 보통은 두 개의 생각을 동시에 떠올립니다. ①고리타분한 말이군. ②남자들 이야기고.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윤리관 전체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유친은 시대를 뛰어넘는 원초적인 삶의 기율(紀律)입니다. 인간이 부모 없이 인공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부자유친은 만고불변의 인생 계명(誡命)입니다. 그래서 고리타분한 말이 아닙니다.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라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아들 자(子) 자(字)가 남자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
지난 5월 3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을 제시했다. 국정 비전을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로 정하고,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전망할 수 있는 외교의 핵심어가 ‘가치’로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 일본, 유럽 국가와의 협력외교를 강화하고 공동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한일관계의 개선 의지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는 시장 경제, 자유무역 체제에 대한
2018년은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따뜻한 봄기운으로 가득 찼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은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내비쳤고 문재인 정부의 발 빠른 화답으로 남북 공동 선수단, 남북 공동 응원단 등이 결성되면서 2017년 남북, 북미 간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거친 대결은 대화의 길로 접어들었다.대화 분위기는 2018년 4월 27일 DMZ에 위치한 판문점에서의 회담을 통해 평화, 공동번영, 통일을 위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논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반도 평화 과정에 대해 세계의 관심이 집중
군 생활을 마친지도 40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훈련소에 입소해서 계급장을 보고(사람을 보지 말고) 경례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황당했습니다. 모자에 이상한 표식을 그려놓고 그것에 대해서 ‘반사적으로’ 존경의 표시를 하라니, 평소 인사성 없이 살아온 입장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었습니다(스스로 반골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감정은 외국에서 오래 살다 들어온 유학파들에게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사관학교 교관 후보생들이어서 그런 만학도 친구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밤에 숙소 밖에 나가 몰래 우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애릭슨(Erik H. Erikson)은 청소년기의 가장 중요한 발달과제는 정체성 형성이라고 말한다. 정체성은 오랜 기간 개인에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 자기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청소년 정체성은 청소년 개인이 타인과는 구별되는 자신의 고유한 심리적 본질을 형성시켜 상당 기간 일관되게 유지하는 안정기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은 자신만의 독특한 심리적 안정기제를 형성함으로서 자신이 누구고, 어떤 존재인지
지난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IBM과 인텔에서 슈퍼컴퓨팅 기술 개발을 담당한 로버트 비스니예프스키를 최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하였다. 비스니예프스키 부사장은 IBM에서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약 15년간 근무했으며, 2012년에 인텔로 이직해 엑사플롭스(exaflops)급 슈퍼컴퓨터 개발과 소프트웨어 설계를 담당하다가, 이번에 삼성종합기술원 산하 미국 시스템 아키텍처 연구소를 이끌 예정이라고 한다.얼마 전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NVIDIA)는 초당 1840경번에 달하는 연산이 가능한 18.4 엑사플롭스에 달하는
‘검수완박’을 둘러싼 정치판의 모습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박탈하고 공소권만 갖게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관련법 개정 작업은 일방통행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문자 그대로 입법독재를 시도하고 있다. 개정 법률안 내용과 관련하여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울화가 치밀고 한숨이 나온다. 우리의 정치수준이 어떻게 이것 밖에 안되는가?검수완박을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정의와 민주를 앞세운다. 정의와 민주를 앞세우는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health)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건강은 완전한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웰빙의 상태이며, 이는 단순히 질병 또는 질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 의료 개념은 질병이 없는 상태와 같은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서, 아름다움, 행복, 삶의 질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의미로 그 외연이 확장되어 왔다. 이러한 현상은 의료화(medicalization)라는 개념으로 잘 설명된다. 의료화는 이전에 의료 영역 내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의료 영역 밖에 놓여있던 특정 행위
정빛그림 작가의 는 한 편의 영화를 글로 옮겨놓은 듯한 소설입니다. 제목부터 ‘오래된 사진(흘러간 영화)’입니다. 영화사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로, 영화는 이미지의 자동운동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통한 사유의 운동을 보여주었고, 더 나아가 개념적 사유의 틀에 포착되지 못하는 감각, 정서, 지각의 영역을 확대시켰습니다. 그동안 사유의 바깥에 머물고 있던 인간의 육체와 사물의 시간을 사유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의 (예술적) 힘이 몰각되고 오직 상업적 가치만 추구되면서 매너리즘과 선
랍비들이 회의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원탁의 한 좌석을 비워둔다고 한다. 그 좌석은 하나님의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빈 공간이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상징한다고 믿는 태도가 일상 속에 녹아있다는 것이 놀랍고 심오해 보인다. 회의에 참석한 랍비들의 생각의 총합만으로는 선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는 오랜 경험이 믿음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추정해본다.20세기 정치사는 전체주의와 투쟁의 역사이다. 하나의 세력이 스스로를 오류가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자기 정파의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를 절대적 진리의 자리에 놓으면서 시민들에게 강요
피로(疲勞)에서 疲는 지치고 고달픈 상태를, 勞는 힘들여 일하는 모습을 지칭한다. 정신적인 활동이든 육체적인 활동이든 어떤 노동을 통해 자신이 지치고 고달프다고 느끼면 보통 피로하다고 표현한다. 피로는 현대인들이 공유하는 대표적인 감정이자 상태다. 코로나19로 인해 현대인이 느끼는 피로도는 일반적인 역치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수용 불가능할 정도의 피로를 안고 사는 현대인은 역설적으로 피로를 놓지 못한다.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烏瞰圖)”에 등장하는 열세 명의 아이들처럼 현대인은 질주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체 모를
현대 서사물로서의 영화는 날로 그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소설이 하던 역할을 이제는 영화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설이 맡아온 새로운 정보의 전달, 위안과 교훈을 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와 신기한 사물과 사건의 소개는 주로 영화 쪽에서 수행합니다. 소설은 한 개인의 예외적인 삶의 경험이나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핍진성 있는 현실묘사를 주로 담당하고요. 최근에 나온 소설들을 읽어보니 그런 경향이 완연합니다. 예술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니 영상시대를 맞이해 그렇게 서사문학의 영역 정리와 역할 분담이
일주일 전의 이야기다. 필자가 보직을 맡고 있는 단과대학의 어느 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지인 학생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인즉, 그 학생이 수일 전에 구례 운조루(雲鳥樓)를 방문하였는데 마침 개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운조루를 자세히 보지 못하고 왔다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찍은 몇 장의 수리 중인 사진을 보여주었다. 몇 년 전 수업시간에 운조루와 뒤주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기억하고 있던 이 학생이 운조루를 찾아갔었나 보다. 오랜만에 들어본 반가운 소식이었다.운조루가 위치한 구례는 필자가 어린 시절
최근에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한류로 상징되는 한국문화콘텐츠는 K-팝, K-드라마, K-무비 등등 다양한 장르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K-팝을 대표하는 BTS(방탄소년단)은 2년 연속 음반계의 아카데미상에 해당되는 그래미상 후보로 올랐음에도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미(army)’라고 하는 세계적인 팬덤층을 갖고 있다. 지난 4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BTS의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인권(人權)에는 세대론이 있다. 1979년 프랑스 법학자 카렐 바작(Karel Vasak)은 프랑스 인권혁명의 표어인 자유, 평등, 박애를 참조해 인권이 발전되어 온 세 가지 세대 개념을 제안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기초한 자유권적 인권으로서 1세대 인권,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바탕을 둔 사회권적 인권으로서 2세대 인권, 그리고 이전 세대의 권리를 넘어서 평화권, 발전권, 환경권, 인류의 공동유산에 대한 권리 등을 아우르는 3세대 인권에 이르기까지, 근대 이후 인권은 단계적으로 성장하고 확장해 왔다. 이러한 인권
횡설수설(橫說竪說)의 사전적 의미는 ‘조리가 없이 이것저것 되는대로 지껄임’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불가(佛家)에서 그 반대의 뜻으로 사용되던 말이라는 걸 아는 분은 드뭅니다. 원래는 ‘무불통지(無不通知)’, 불교 경전을 가로로 세로로 다 외면서 그 뜻을 능숙하게 설법한다는 뜻이랍니다. 불가의 우스갯소리에 “팔만대장경을 가로세로 앞으로 뒤로 다 읊는다”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 말이 바로 횡설수설의 원래 뜻을 빗댄 말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좋은 뜻이 나쁜 뜻으로, 깊은 뜻이 가벼운 뜻으로, 혹은 전혀 다른 뜻으로 말뜻이 바뀌는 일은 종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전 세계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격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강제합병 이후 우크라이나를 향해 끊임없이 전쟁 도발을 멈추지 않아 유럽 국가들과 전 세계를 긴장 속에 빠뜨렸다. 이를 지켜보던 국제사회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을 시작하였고 침공 하루 만에 150여명의 사상자를 내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애프를 포위하는 등 거친 군사작전을 강행하고 있고 전쟁은 우크라
2022년 글로벌 통상에서 최대의 화두는 미국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가 될 전망이다. IPEF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작년 10월 27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East Asia Summit)에서 제안한 구상으로 경제와 안보의 연대를 강조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비롯된다. 2022년 2월 25일에 발표한 미국 의회 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17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Strategic E
2021년 1월 5일부터 KTX-이음 열차가 ‘청량리역~안동역 구간’에서의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2시간 만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KTX 운행을 위해서 안동시는 운흥동에 위치했던 안동역을 안동버스터미널이 있는 송현동 쪽으로 이전했다. 1931년 건립된 안동역은 이제 기차역의 기능을 상실한 역사(驛舍)가 되었다. 안동시는 구 안동역사부지의 활용에 대한 기본 활용안을 마련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12월에 열린 ‘안동역사부지 기본계획 수립 용역 시민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