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투명한 창을 열자 사각액자 속 풍경이 와락 달려든다. 통유리틀 저편에서 유유한 산의 몸짓. 사계의 흐름 따라 변화하는 그림이다. 연록에 넋이 빠져 하루가 기울고, 희붉은 제철 꽃에 가슴 저민 게 몇 해던가. 그런데 그 산이 지금 잘려나가고 있다. 자연 액자요, 자연병풍이던 앞산능선이 댕강 잘려 길이 날 모양이다. 야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중장비 몇 대가 느릿느릿 움직인다. 매우 침착한 동작이다. 포크레인이 앞장서서 연방 고갯짓을 하고, 궁둥이를 위쪽으로 바짝 들이민 덤프트럭은 45도 이상의 각도로 대기 중이다. 엉거주춤한 품...
바야흐로 봄이다. 흔히들 봄을 말할 때 산과 들에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논밭에는 농부들이… 운운하며 봄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요즘 농촌 풍경은 예전 같지 않다. 텅 빈 농촌 마을과 사람 냄새가 사라진 들녘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산의 노래처럼 그야말로 봄은 왔건만 찬 연기와 쇠락한 집들만이 빈 들을 지키고 있다. 이런 씁쓸함은 비단 농촌뿐만 아니다. 어촌도 마찬가지이다. 한창 출어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지만 기름 값을 감당하지 못하여 한숨만 배에다 가득히 실어두고 있다. 생명의 경이에 탄성을 발하고, 따뜻해지는 ...
요즈음 우리 사회가 총리를 위시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거짓말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해찬 총리의 경우 부적절한 인사들과의 ‘3.1절 골프회동’과 관련하여 총리실, 교육부 차관 및 부산지역 상공인들 모두 말바꾸기 릴레이를 하면서 거짓말과 은폐 행진을 벌였다. 당초 총리실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단과 상견례를 겸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논의하는 모임이었다고 해명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구릴 데가 없다면 주최자를 거짓으로 둘러대거나 참석자 명단을 숨길 필요가 없을 텐데 무엇 때문에 하나의 진상을 두고 이렇...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30% 정도로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선언으로 등으로 농촌이 어수선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 되었을 때 과연 우리 농업의 설자리는 있는지? 우리의 먹을거리는 앞으로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지난해(2005년) 농수산믈 수입액은 142억8천만달러, 수출액은 34억2천만달러로 농수산물 무역적자가 108억6천만달러로 2004년 대비 5.7% 증가되었고, 반면에 수출은 1.5% 증가하는데 그쳤다(농수산물유통공사 통계). 수입국은 ...
팥꽃나무가 있다. 이른 봄 나뭇가지에 온통 고운 팥죽색의 꽃을 다닥다닥 가득히 피워 올리며 고고한 향기를 품어데는 한국토종 꽃나무다. 이 나무는 유독하여 임산부가 먹으면 낙태를 한다 하여 임란 7년전쟁 당시 불륜이나 왜군이며 원군으로 온 명나라 군사들의 성폭행 등등으로 불의의 수태를 한 여인들이 즐겨 찾았던 나무라 전해지고 있다. 그 독성이 강한지라 오남용으로 인하여 숱한 여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불행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자 이에 선조는 국명으로 이 나무를 멸종시킬 것을 명했다고 전해지는 불행했던 아름다...
“여러분 기뻐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새로운 추기경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와 많은 이들이 원하던 추기경이 드디어 탄생했습니다.”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 앞마당에서 있은 37년만의 정진석 새 추기경 탄생 순간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기쁨이고 축복이었다. 바람이 쌀쌀해진 저녁 시간이었지만 모두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고, 정진석 추기경과 김수환 추기경은 악수하고, 포옹하고,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이날 진실로 돋보였던 분은 새로 탄생한 정진석 추기경도 물론이지만 그 분 못...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사회적 담론처럼 소모적인 것은 없을 듯싶다. 성장론자들은 분배에 치중해온 유럽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성장 일변도인 미국경제가 장기 호황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사회 양극화든 뭐든 고성장만 달성하면 웬만한 사회적 문제는 풀릴 것처럼 주장한다. 분배론자들은 국민 대다수의 생계가 안정되지 못하면 사회 갈등의 증폭으로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못해 성장도 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기실은 양자의 주장이 상충되는 면이 없지 않으나, 다 맞는 말이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자본주의 경제이념을 채택하여...
어김없이 돌아온 계절은 먼 산 춘설 지붕 아래 머물고 있는 봄을 살금살금 끌어당기고 있다. 눈 녹은 물은 아래로 흘러 우리 집 거실에서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에 닿아 새움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 아침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을 끝으로 올해의 꽃샘추위도 마감될 것이다. 씩씩하게 돋아나고 있는 새잎을 바라보니 봄은 이미 쾌속으로 내 곁을 지나고 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겨우내 입었던 외투를 벗어던지고 바깥으로 나가 봐야겠다. 언덕 아래 보리밭이 파릇파릇 기지개를 켜고 있다. 꽃집마다 한껏 핀 꽃이 봄이 왔음을 노래하...
한때 우리사회를 풍미했던 좌파세력의 지침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대한 우파적 비판을 실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란 책이 출간되면서 학술논쟁이 일고 있다. 아직도 사상논쟁은 우리사회의 중추신경을 흔들만한 괴력을 지닌다. 지금 한국은 ‘역사 내전(內戰)중’인 셈이다. 칼 포퍼는 그의 명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개념정립을 하고 있다. 좌파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으로 이상향을 설정해놓고 급격한 변화를 강조한다. 우파는 ‘점진적’ 사회공학으로 구체적인 사회악을 제거해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따라서 두 ...
지난해 아파트 원가연동제 도입이후 금년 2월 21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고시한 아파트 건축비가 실제 건축비의 2배 이상이어서 업체의 분양가 인상을 막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아파트 값을 더 올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강남 이외의 서울 강북지역이나 수도권 택지지구 아파트의 건축비는 대부분 평당 250만원 안팎이며, 최근 국내 최고급 아파트로 건축비가 가장 높다는 서울 강남 도곡동 렉슬의 건축비조차 평당 366만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렉슬의 43평형은 분양가가 7억8천만원에 달했다...
이동통신사들의 자료에 따르면 휴대전화 음성 통화 시간은 소폭 증가한 반면 문자 메시지(SMS) 착·발신 건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날은 1억 건이 넘는다고도 한다. 거리를 가다가도 휴대전화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지하철에서도 휴대전화 통화는 다반사가 되어 버렸고, 심지어 연극 영화 강연회 등 공공장소에서 조차 계속 울려대는 휴대전화 벨 소리 때문에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학생들은 수업 중에도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서울시 중고생의 경우 수업 중에 문자 메시지를...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 ‘마이 웨이(My way)’는 우리가 노래방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팝송 중의 하나이다. 이 노래는 원래 프랑스에서 클로드 프랑수아가 부른 ‘꼼 다비뛰드(Comme d’habitude)’라는 샹송의 영어 번안곡이다. ‘마이 웨이’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며 자기 방식대로 충만한 삶을 산 것에 대해 만족해하는 사람의 노래이다. 반면에 원곡인 ‘꼼 다비뛰드’는 ‘언제나처럼’, ‘항상 그래왔듯이’라는 뜻의 노래 제목이 가리키듯이 한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서 ...
태극기가 전국의 가정과 거리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임을 느낀다.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 태극기를 흔들며 이를 극복하였고, 나라에 기쁨이 있을 때 우리 모두는 태극기를 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식민 지배자에게 항거할 때도, 조국 해방의 기쁨을 맞았을 때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선전하는 우리의 대표팀을 응원하며 전 국민이 열광할 때도, 민주화 운동으로 젊은이가 희생되었을 때도 우리는 태극기와 함께 웃고 울며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부하며 살아왔다. 삼일운동 87주년. 3월 1일은 손병희 선생님을...
만물이 소생하는 이른바 약동의 계절이다. 각 대학들은 새로운 학기를 맞이하느라 분주하다. 각 기업들은 새로운 진용을 짜고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각 조직구성원들의 새로운 출발들이 야심차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이에게 희망찬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먼저 티핑포인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떤 백인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 거주자는 100% 백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이 마을에 지속적으로 흑인들이 하나 둘씩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완전히 흑인으로만 이루어진 마을이 되었다...
새~봄~! 새 학년, 새 친구…. 그야말로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희망의 계절 봄이다. 이렇게 우리의 아이들이 졸업과 입학과 새 학년 새 학기를 준비하고, 맞이하는 동안 엄마들은 무엇을 졸업하고, 무엇을 새로 시작해야 할까 걱정하고 계획하고 또 망설이며 그렇게 한 달 한 달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란 없다고들 하지만 집에만 있던 30~40대 주부들로서는 ‘시작’이란 단어가 그저 두렵기만 할 뿐이다. 며칠 전 어떤 회사의 간단한 면접 절차를 받고 왔다. 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해오던 ...
한동안 소원했던 반미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영화스크린 쿼터 축소, 한미 FTA 협상 선언, 미군기지 중금속 오염사건 발표, 외환은행 등의 마카오 델타은행과 거래중단 등 일연의 사건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우리나라에 압력을 행사하여 주권국으로서 자존심을 짓밟고 있다는 것이다. 맥아더동상 철거운동이후 잠잠했던 반미운동이 새로운 확산의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강국 중 통일에 유일하게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이 어느새 분단고착화를 지지하는 강대국으로, 대신 한반도의 통일을 가장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
직장 없이 놀아본 사람은 안다, 그저 세월만 보내고 놀기가 얼마나 고역(苦役)이란 것을. 그것도 나이가 들어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사회를 위해 할 일이 없다면 그것은 고역을 넘어 고통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노인이 그러하다. 현재 고령자들의 성향은 사회적 소득증가와 의학발전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었으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활동적이며 의욕과 과거경험이 풍부하다. 또한 이들은 다양한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경제활동에 동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가계는 어려워져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근래 들어...
석유 가격이 너무 비싸다.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다는 것이 현실로 느껴진다. 한 달 승용차의 휘발유 값이 2년 전 15만 원 선에서 지금 30만 원 대로 2배 이상 뛰었다는 것을 우리는 실감한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세계에서 석유 소비량 7위 그리고 수입량 4위를 기록한다. 그러나 석유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은 주위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겨울철 도시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리고 상가가 밀집한 거리의 골목길에서 엔진 공회전 차량 때문에 숨을 멈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름철에도 휴가 차량의 연료 소비가 폭증하고 가...
지난 15년 간 우리 대학교 국제농업 훈련센터 주관으로 국제농업 훈련을 매년 6-7월에 약 4주간 KOICA에서 후원하는 경비로 10여 개도국에서 온 훈련생을 매년 20여 명의 훈련시켜왔다. 훈련 프로그램에는 환영과 송별 파티가 있고 각 가정을 방문하는 시간도 있고 중간에 산업시찰도 포함되어 있어서 효과적으로 한국을 알려 왔다. 송별파티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서 머물면서 느낀 소감을 말하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럴 때마다 훈련생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칭찬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가운데서 지난해 이집트에서 온 나이가 5...
졸업시즌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는 교육기관에서는 그 동안 배움에 몰두한 학생들이 또 다른 배움의 길로 혹은 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활발히 이동하는 시즌이다. 한 장면이 마감되고 또 다른 하나의 장면이 펼쳐지는 시즌이다. 돌이켜 보면, 한 때는 졸업이란 것이 참으로 많은 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했고,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학교생활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떠나는 마음과 다시 새로운 배움에의 길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이 뒤엉켜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진저리나게 쓰고 다닌 교모가 싫어 졸업식장을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