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 식당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적당한 양의 고기를 불판에 올리고 한점씩, 천천히 많은 채소를 곁들여 먹고 또 욕심내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불판에 고기를 잔득 올리고 한꺼번에 다 구워, 먹기에 다급해했던 지난날 모습들은 어느새 사라진 것 같았다. 멀지 않았던 과거 그때 그 모습은 먹거리가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6,70년대에 유행하던 우량아 선발대회나 당시 잘생긴 사람의 모습은 대부분 충분한 영양섭취를 바탕으로 하얀피부에 살집이 적당히 많은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먹던...
병술년 새해가 밝았다. 세밑이 되면 대다수 사람들은 반성한다. 그들은 거짓을 되풀이하지 않으며 진솔한 마음으로 타인과 화목하게 살고자 다짐하기도 한다. 거짓은 인간 본성인 이기심의 발로인데. 지혜가 사람간 관계의 파탄을 막기 위해 개입되는 과정이 바로 반성인 것이다. 한해가 저무는 12월에는 별거중인 부부가 화해하여 재결합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하고, 정치·사회 쟁점으로 심하게 다투는 정치권도 타협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왔다. 지난해 연말에 국회에서 사학법이 날치기 통과돼 예외적으로 여야간 극한대립이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막 잠에서 깨어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손자가 느닷없이 한마디 해온다. “할아버지, 이름에 ‘ㄴ’자 든 사람이 큰 인물 되는 것 같아요. 이순신, 김유신, 박태준, 유관순, 안중근, 왕건…” “됐다. 그만 줏어섬겨라.” 듣고 보니 그를듯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포스텍이라는 이름이 목에 걸린 고등어 가시같이 느껴지기에 시론을 쓴 적이 있다. 제발 포스텍이라는 이름은 국외용으로 하고 국내에서는, 특히 포항시민들의 긍지를 위해서는 포항 지역 언론에서만이라도 구숨하게 포항공대라고 계속 불러주기를 간청하는 ...
목덜미를 파고드는 찬바람이 세밑의 스산함을 더해준다. 연일 경쟁이나 하듯 기온이 내려가니, 가뜩이나 한 해의 마무리에 바쁜 마음을 더욱 재촉한다. 병원 모퉁이에 자리 잡은 붕어빵 포장마차는 그런대로 바람을 막을만하다. 이렇게 손끝이 시리게 추운 날엔 따뜻한 어묵 국물이며 붕어빵이 제격인데, 조금 전 분분히 흩날리던 눈발 때문인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통 없다. 오늘의 목표량을 채우려면 아무래도 붕어빵을 들고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적어도 하루 치 반죽은 다 구워야만 내년까지 특장차의 바퀴 하나 정도는 보탤 것...
한 해가 또 간다. 그리고 새해는 어김 없이 올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이 오십 고개를 넘긴 후부터는 해가 바뀌는 세모의 문턱에서 왜 이토록 숙연해지는지 모르겠다. 마치 인간은 죽음 앞에 진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따지고 보면, 해가 바뀐다는 것은 태초이래로 끊임 없이 흘러 온 시간을 우리의 편리대로 구분해 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다. 세모의 계절에 대한 의미...
누군가 노무현 정권을 청개구리에 비유한 적이 있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고 국가정책방향이 국민여론과 딴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사학법 문제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전문변호사 4명 가운데 3명이 위헌소지가 있다고 밝혔고 사학법인들이 사학법이 통과되면 내년에 신입생배정을 거부하고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극단적인 방안을 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의장단상을 점거하고 육탄으로 막으면서까지 통과시켜 버렸다. 그 결과 한나라당에서는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사학재단에서도 극단적으로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
헐벗은 발이 시리고, 상처 난 몸뚱이가 쓰리다. 주는 일 밖에 모르는 그는 스스로 몸을 챙기지 못한다. 산을 오르내릴 때 무심히 따라온 흙부스러기, 낙엽 몇 잎이 제 자리를 잃고 흐느낀다. 그는 우리가 어릴 때는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자라서는 삶터로, 휴식이 필요한 시간엔 쉼터로 아낌없이 주기만 했다. 푸르른 공기와 갖가지 꽃과 열매, 선한 물과 바람을 품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돕는다. 산들은 저마다 너른 품으로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서있다. 우리는 어렵던 시절 산에서 먹을 것과 땔감을 무차별로 취했다. 자연훼손이라는 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국토의 균형된 발전을 위해 농촌을 도시민과 농촌 주민 등이 다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복합생활공간으로 적극 조성될 필요가 있다. 최근 전국 도시민 3천명을 대상으로 농촌 이주에 대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농촌에 대한 도시민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놀랍게도 농촌으로 이주 의향을 가지고 있는 도시민이 56.1%에 이르렀고 대부분 10년내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중에서 구체적으로 이주를 준비 중인 도시민들도 2.5% 정도가 있어 이제 농촌은 도시민들의 마음의 고향 차원을 벗어나 ...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지성인들은 생명에 대해 감성적이다. 톨스토이는 ‘말은 철회할 수 있으나 생명은 도로 찾을 수 없다’ 했다. 성서에도 온 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하냐고 묻고 있다. 그러나 바람소리보다 덧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시인의 메타포는 허무주의적 시각이다. 장자는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천지의 위순(委順)이고, 자손 또한 내 것이 아니라 천지의 허물 벗음이라 했다. 생사는 한데 묶어놓은 노끈과 같다는 카오스적 비유도 있다. 같은 주제로 과학자들은 유사(有史)이래 끊임없는 연구를 지속해왔다...
몇 해 전 한 신용카드 CF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가 씨를 뿌리면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만발했다. 출판계에서도 ‘부자’ 관련 서적이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며 ‘부자 되기 열풍’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구는 대형 서점 재테크 코너로 고객들의 발길을 옮기게 했고, 각종 재테크 강좌에도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최근에는 금융회사뿐 아니라 백화점 문화센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동호회까지도 부동산을 비롯한 재테크 전문가를 초청하여 ‘부자되기’ 강좌를 열고 있는 추세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무엇일까? 좀더 자동화되고 인간을 편리하게 해주는 IT기술 또는 사용자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지난1998년 유비쿼터스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미국 제록스 연구소의 와이저 소장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메인프레임, 퍼스널컴퓨터에 이은 ‘제3의 정보혁명’의 물결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유비쿼터스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최대 화두로 다뤄지고 있으며, 유비쿼터스의 실현으로 실세계의 각종 사물들과 물리적 환경 전반 즉, 물리공간에 걸쳐 ...
생존경쟁에서의 패자는 퇴영되거나 끝내는 멸망하고 만다. 동물의 세계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인간사회도 그렇다. 역사는 승자들의 무용담이요 서사시인 것이다. 개인이든 도시든 국가든 대결과 경쟁에서 패한 자들은 쇠잔되거나 끝내는 소멸하고 만다. 자연과의 대결에서 폼페이는 화산폭발의 잔해에 묻혔고, 스파르타군의 목마 술책에 속아 패망한 트로이는 전설의 도시가 됐으며, 중세 북유럽의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시대 맹주였던 뤼벡은 이웃 도시와의 경쟁에서 밀려 중소도시로 전락했다. 종교개혁시대 루터 성도(聖都...
의과학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과학적인 재현성일 것이다. 그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연구방법론상 윤리적이냐 하는 것이다. 연구의 윤리성은 그동안 점점 강화되어 실험동물에게도 엄격히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며, 연구자들은 실험 전 실험방법의 윤리성에 대하여 규정을 준수하고 공인된 기관에서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란은 처음에는 난자 획득에 대한 윤리성 논쟁에서 시작되었다. 윤리는 말 그대로 인간이 인간이기위해서 지켜야 만 하는 자연의 도리를 말 함이다. 그러나 윤...
무심한 세월 속에서 사람들은 무심히 살다가 어느 날 죽게 된다. 육순에 접어들어 그동안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무언가 회고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정작 그 회고에서 의미있는 걸 찾아보고자 하면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것이 범상인들의 인생이다. 회고록을 쓸 수 있는 자는 파란만장한 삶을 치열하게 산 사람이거나, 아주 비범한 사람이다. 비범한 사람은 주위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상은 매우 운이 좋아 많은 돈을 모았다든지, 출세하여 세간의 부러움을 사는 친지나 지인들이다. 그밖의 사람들의 삶이란 그렇고...
12월이 심상치 않다. 국가정체성과 사회정의가 흔들리면서 극심한 ‘아노미’적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사립학교법에 칼을 들이대다 난장판이 된 국회, 엄동설한에 거리를 헤매며 장외투쟁에 나선 야당, 학교폐쇄도 불사하겠다는 사학연합, 교육을 살려야 할 교육부장관은 ‘법대로 처리 하겠다’는 엄포다. 교육이 법으로 되는 일인지 묻고 싶어진다. 맥아더 동상 철거까지 간 색깔논쟁,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교수가 거리를 활보하고, 부정부패의 몸통(?)이면서도 시효만료로 풀려나는 고관대작, 도청사건에서 보인 정치인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악덕...
유례 없이 초겨울 동장군이 삼한사온의 전통도 무시한 채 기승을 부리는 癸酉歲暮(계유세모)다. 인간사에서는 멀리 내다 볼수록 지금 당장에는 욕을 더 많이 얻어먹게 되어 있다. 성인군자며 위대한 통치자는 거의다 그랬다. 그들 대다수가 귀양이나 옥살이를 해야 했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도 했다. 그리스도는 물론 베드로며 그의 열두 제자들도 오늘날에 기독교가 이렇게 지구 정 반대의 땅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까지 이토록 성왕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대한 업에는 거대한 핍박이며 반대가 가로막는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
싱가포르는 독립한지 반세기가 채 안돼 작은 것이 강하고 아름답다는 통설을 입증한 아시아의 도시국가가 됐다. 사람이나 국가나 상징하는 이름이 중요한가, 말레이 반도 최남단 교통의 요지 싱가포르는 말레이어로 “사자”라는 의미인데, 아시아의 한 마리 작은 사자로서의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간 싱가포르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수는 우리의 인천공항보다 무려 600여만명이 더 많은 3천만명을 넘어섰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을 비롯한 남아시아의 물류공급기지로서의 한 축을 형성했다. 남아시아의 물류 및 금융의 중심축...
얼마 전 주말에 영주 ‘선비촌’으로의 가족 여행에서 우리나라로 시집온 광주·전남지역 동남아 주부들의 ‘한국문화체험단’을 만나 함께 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다. 잠시지만 옆에서 본 이들은 맑은 눈을 가졌으며 착하고 순박하여 우리나라 여느 젊은 새댁과 다름이 없는 우리 오누이의 모습이었다.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문제였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나오고 해서 농촌 총각들의 결혼문제 심각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는 듯하다. ...
지난 주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우리나라 정책결정 과정에 귀감이 될 대비되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지난 11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받아들여 파업을 중지하고 자진 해산한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9일 사학법 개정안 표결과정에서 국회가 보여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후자는 우리나라가 과연 민주주의인지를 의심케 하는 눈살 찌푸리는 모습이었고, 전자는 민주주의 발전사에 획을 그을 결정이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추진하는 행위가 보편화된 듯한...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가 제 실수예요. 마음 푸세요.” 평소답지 않은 공손한 저자세, 진심으로 노여운 마음을 풀어 주십사 빌고 또 빈다. 긴 통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누가 알아준다고 그렇게 열심이야. 다음에 입장이 바뀌었을 때 누가 그렇게 해주겠어.” “절대 아니지. 그때 역시 내가 사과해야지.” “그래, 그럼 됐네.” 교정을 열심히 보았건만 놓친 부분이 있다. 그것도 한 둘이 본 것도 아닌데. 중요하다고 생각한 면이 다른데서 오는 사건이다. 가끔씩 생기는 이런 일에서 해결법은 하나밖에 없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