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페리호를 타고 홍콩섬에서 주룽반도(九龍半島)로 갈 때 도시와 바다의 야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1842년 영국과 청국(淸國)간 홍콩섬의 영구 할양(割讓)을 인정한 난징조약(南京條約)이 체결될 때만 하더라도 이 반도와 도서지역은 바다쪽으로 높이 20-30m의 가파른 벼랑이 들쑥날쑥하게 서있는 리아스식 해안선이 돋보일 뿐 황량했다. 한 때 영국의 의회에서조차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곳이니 포기하자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으나, 오늘날 동양의 진주가 되었다. 그동안 중국의 서양세계에 대한 창구로서 뿐 아니라 동양 제 1의 ...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통일전쟁을 주도한 신라의 김춘추(태종무열왕이 된다)와 김유신의 업적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통일 이후에도 신라천년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왕들(물론 소수이지만)의 활약과 치적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춘추의 아들인 문무왕은 명실공히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고 뒤이어 그의 아들인 신문왕과 손자들인 효소왕과 성덕왕 등은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를 국가단위로 통치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외교적 능력과 업적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신라는 찬란한 동방의 역사의 주인공이...
얼마 전, 복장을 지도하는 선생님에게 머리를 한대 쥐어 박힌 학생이 휴대폰으로 폭력교사라며 경찰에 신고를 했고, 연락을 받은 학부모는 한발 더 나아가 진단서를 끊어 폭력교사를 고발하겠다며 펄펄 뛴 적이 있었다. 학부모들의 목소리와 학생들의 항변이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의 의지를 초월하고 있다. 수요자의 바람직한 의견을 존중하는 정도를 넘어서 학교가 눈치를 봐야하거나 교육이 원칙 없는 큰 목소리에 좌지우지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내 자식 잘 가르쳐 달라며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풍경은 아득한 옛일이다. 툭하면...
10·26 재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참패한 이유와 시사점에 대해 나름대로 검토되고 있으나 의외로 축소되거나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구체적 언급없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라고 결론내리고 있으며 여당은 지도부의 책임정도로 끝내려 하고 있다. 야당에서도 선거승리 자축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의 각종 개혁정책에 대한 토의와 비판이 국론분열의 수준까지 갈 정도로 격렬했던 것에 비하면, 10·26 재선거의 참패가 전반적으로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2003...
가을이다. 높푸른 하늘엔 청자 빛이 잠겨있고, 따사로운 햇살은 외할머니의 눈빛처럼 그윽하다. 지난여름 그 혹심한 가뭄과 연일 신기록 행진을 거듭하던 무더위도 어느새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 숨어버린 지 오래다. 뜨락엔 어느 시인이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읊조렸던 낙엽이 널려 있다. 감잎, 은행잎 등 갖가지 낙엽이 서로 몸을 비비며 뿌리로 가는 긴 여행에 나서고 있다.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이 분다. 낙엽은 저항하지 않고 그 바람이 시키는 대로 뒹군다. 때로는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입을 다문 채 구르기도 한다. 바...
껌에 대한 소비자들의 생각은 식사 후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거나 입 냄새를 덜어주는 기호식품 정도였다. 그런데 한 제과회사의 새로운 형태의 껌이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고 껌의 위상을 영양제나 비타민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지난 2000년 5월 출시된 ‘자일리톨’껌이 그것이다. 당시 자일리톨껌은 기능, 디자인, 가격 등 제품의 주요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우선 기능적인 측면에서 자일리톨껌의 마케팅 포인트는 ‘자기 전에 씹어라’는 것으로 이 같은 슬로건은 ‘껌의 당분은 곧 충치’라는 기존 등식을 뒤흔들어놓은 동시에 자일리톨...
일본정부의 최근 개각에는 파탄지경에 이른 아시아외교도 개의치 않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오만(傲慢)이 짙게 깔려있다. 창씨개명을 미화하고 일제 식민지를 정당화하는 망언으로 자주 물의를 일으켰던 아소 총무상을 일본외교의 수장인 외상에 기용했다. 대표적인 강경우파로 야스쿠니 총리 참배를 지지해온 아베 간사장 대리도 관방장관에 임명했다. 유력한 차기 총리후보로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신중론을 제기했던 온건파 후쿠다 전 관방장관은 입각조차 하지 못했다. 주변국과의 계속되는 외교마찰과 관계악화에도 아랑곳...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며 국가 경쟁력을 배양하는 기반이다. 특히 인적자원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재를 육성해야한다. 올바른 인재육성을 위해서는 획일적인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명실상부한 지방교육자치가 실시되어야 한다. 진정한 교육자치는 교육부의 획일적인 지시에서 벗어나 지역실정에 맞는 지방교육과 일반 행정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전제로 교육의 전문성과 특수성도 동시에 구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 및 집권여당에서는 교육위원회를 시ㆍ도 의회 상임위원회에 통합...
수일 전 대구 소재 모 대학의 대학박물관에서 있었던 고가구 전시회에 다녀왔다. 전시물 중 두어 개는 어릴 적 시골집에 있었던 것들과 매우 흡사해서 더욱 정겨웠다.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나무결의 아름다움, 장인들이 공력, 그리고 거기에 내려앉은 세월의 두께로 인해 아득한 행복감을 느꼈다. 진열된 장과 농을 설명하던 전시장 책임자가 지나치듯 던진 말, “이제는 이런 작품을 만들만한 장인도 재료도 없어진 것 같다”는 그 한 마디 말이 내내 마음 한 켠에 오래도록 남았다. 가까이 있었을 때는 무심했다가, 없어진 뒤에야 그 가치...
산업화로 인하여 농촌이 급속히 황폐화 되어지는 추세는 동서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특히 최근의 세계 무역의 글로벌화로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국의 값싼 농산물이 농촌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이농현상을 더욱 촉진시켜 오고 있다. 농촌의 미래 주역이 될 청장년의 젊은 사람들이 떠난 농촌은 노령화 추세가 뚜렷해져 노인들이 농촌을 지키고 있는 입장이 되었고 학교의 폐교도 이어지고 있다. 옛말에 인간이 떠나 간 자리는 야생동물들이 다시 되돌아 온다고 한다. 그 예로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 앞서 심한 이농현상을 겪은 국가들의 농촌은 ...
지역축제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가지고 새로운 비전을 향한 의욕을 북돋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지역에서 기획한 가장 성공적인 국제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초청작 수 73개국 307편, 관객 수 19만 명, 117편 451회 상영이 완전 매진되었으며, 55개국에서 총 7천647명의 게스트와 프레스가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해외 영화인들이 공공연하게 부러움을 표시할 정도로 규모면에서 급성장한 반면 아쉬움도 많았다. 상영관과 스타들의 무대인사가 집중되었던 남포...
농민신문의 창을 여니 농촌사랑운동이 범국민운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행사들이 줄을 잇는 모습들이다.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에 대통령도 외교부장관도 참석하여 격려를 하는 등 각계 거물급 인사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숨가쁘게 발표된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농촌을 사랑해 주어야 한다.” 이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농촌에 반평생을 살아온 이 촌부의 가슴에는 야릇한 감정이 싹트기도하고 때로는 심통이 일기도하는 등 만감이 교차한다. 사랑하는 것과 불쌍하니까 그저 잘 봐주자는 동정과는 그 결과가 확연히 다르다. 사랑...
취업 시기가 시작되면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발걸음이 무겁게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간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이 자꾸 떨어지고 있더니 급기야 청년실업률이 전체 실업의 두 배를 넘어서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국정감사 때 국회 재정경제위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까지 전체실업률이 3.6%인데 반해 청년(15-29세)실업률은 7.8%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실업자는 87만8천명, 청년실업자는 37만6천명으로 집계됐다. 또 OECD기준에 의한 주요 국가의 청년(15-24...
가을철이 되면 독감 예방 주사를 맞는다. 감기가 변형되고 독해져서 예방주사를 맞지 않으면 큰 고생을 하거나 심하면 죽기까지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태풍의 위력이 점점 강해져 뭍으로 접근해 오면서 세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바닷물이 더워져서 태풍의 세력을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가장 산소를 많이 뿜어내며 보기만 해도 기상을 느끼게 하는 소나무가 재선충에 의해 고사하고 있다. 재선충을 옮기는 벌레는 솔수염하늘소라고 한다. 우...
아파트 베란다 앞에는 감나무, 산수유나무, 단풍나무가 서로 푸르름을 자랑한다. 그런데 왠지 한곳이 허전하다. 감나무와 단풍나무 사이, 처음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 심어져 있던 배롱나무가 몇 해 전에 죽고 그곳은 이빨이 빠진 것처럼 뻥 뚫려 있다. 1층이다 보니 속옷차림으로 창 밖을 내다 볼 때나 베란다에 나와 신문을 볼 때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배롱나무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빨간 백일홍으로 눈을 즐겁게 해줄뿐만 아니라 훌륭한 가리개가 되어 주었을 것을. 처음 나무를 심어 놓았을 땐 그 나무가 배롱나무인지를 몰랐다. 단지 ...
1998년에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아시아학과 학과장인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교수는 한 논문에서, 한국의 거리곳곳에서 언제나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시위, 소위 데모는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뿌리 깊은 한(恨)의 발산에 연유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연 이와 같은 주장대로 한국인은 한 많은 강가에서 늘어진 버들가지를 잡고 가신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한에서부터 선죽교 바닥에 피를 토하고 죽으면서도 님 향한 일편단심을 노래한 정치인의 한에 이르기까지 한의 업보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가슴에 스며든다. 시민의 자치...
작년에 아는 미국인을 만났을 때 “우리가 볼 때 별것도 아닌 것 같은 북한정보를 한국에 알려줬다고 로버트 김을 7년간 감옥에 보내는 것은 너무하다. 우리를 우방이라고 하면서 얕보는 처사가 아닌가” 항의한적이 있다. 그는 “국가에 중요한 정보사항을 누설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정보는 그 나라를 존립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보가 누설되는 나라가 무슨 독립과 자주가 있느냐, 7년이란 형량이 과할지는 몰라도 국가안보를 위해 당연한 일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군사...
1970년대 초 독일에 유학, 그곳 대학에서 한 노르웨이 여성을 만나 결혼한 후 노르웨이에 정착해 살다가 최근 일시 귀국하는 한 동향 친구를 영접하기 위해 공항에 나간 적이 있었다. 수년 전 북해산 대구의 가공품을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노르웨이의 최북단 노르드캅(Nordcapp)을 방문했었을 때, 그는 그곳의 한 해양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여름철 북극에 닿은 노르드캅의 백야는 장관이었다. 슬하의 두 아들은 수도 오슬로에 내려가 있어서 60대 초로의 부부는 외롭게 살고 있었다. 내 눈에 비친 옛 친구의 모습은 쓸쓸한 이방...
‘6·25는 북한지도부에 의한 통일전쟁’ ‘미국과 맥아더는 은인이 아니라 원수’ ‘해방 후 공산주의사회가 됐어야’ 등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강모 교수의 언행으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형국이다. 강교수의 이런 발언들을 생각하면 과연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이 아직 유효한지 의문스럽다. 분명히 이와 같은 발언은 현행법인 국가보안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구속 수사하겠다는 검찰총장의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법무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이를 막았고 ...
우리나라의 방송이나 신문을 듣고 볼 때마다 느끼는 점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들만 너무 부각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이렇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명예도 실리도 특별히 바라지 않고 자신이 맡은 임무를 묵묵히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산소를 공급하는 숲과 같은 사람들이라 할 것이다. 먼저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다른 사람들에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빈민들, 장애우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다 바쳐 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