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외롭다. 기쁨과 즐거움의 시끌벅적함이 사라진 고요의 터에는 '외로움'이 잡초처럼 자라난다.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사랑은 한갓 외로울 뿐'(박두진, '도봉') 뜬금없이 날아 와 자라는, 번뇌와 망상의 거친 풀밭, '홀연염기(忽然念起)'다. 문득 생겨나서, 자라고, 시드는 무명초(無明草)들. 왜 그런가. '무다이(=무단히)' 그렇다. 인간이기 때문에. 정호승 시인이 말해버렸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안개 속에 '홀로' 서 있다. '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살아...
최근 대전의 한 식당엘 간 적 있다. 준비해 간 차를 좀 마시고 싶어 "아주머니, 뜨신 물 좀 주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정수기가 고장 나서 물을 끓여야 한단다. "그럼, 끓여서 주세요"라고 하니, 주인 아주머니는 아주 조금만 끓여 왔다. "너무 적은데요"라고 하자, 곧바로 "손님, 차 많이 드시지 마세요. 몸에 안 좋아요"라며 나를 타일렀다. 물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없고, 이런 저런 말로 나를 가르친다. 말하자면, 갑질에 안달이다. 갑질에 시달리는 을들의 삶을 보여주는 드라마 '미생'이 생각났다. 제기럴, 누가 갑이...
식당에 가서 누군가 "뭘 드실래요"라고 하면 "아무 꺼나(=아무 것이나)요"라고 답한 경험이 한두 번 쯤 있으리라. 이때의 '아무 꺼나'란 고픈 배를 잠시 채우면 되니 '대충 알아서 시켜라'는 뜻이다. 그에 맞춰 나는 '무엇이든 먹겠다'는 약속을 전제한다. 이때 음식은 목적이 아니라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다. 어떤 틀을 정해두기 보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일을 적당히 처리하는 것을 '아무 꺼나' 방편주의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아무 꺼나' 방편주의는 '와도 그만 가도 그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항주의 서호(西湖)에 가면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버드나무 가지 끝에서 찰랑거리는 호수도 아름답지만, 그렇게 하늘대던 중국인들의 생각 끝을 좇아가게 된다. 하나는 '호심정(湖心亭)'에서 만나는 글자 둘. 충이( 二)이다. 풍(風)과 월(月)의 각각 껍질을 벗겨버린 것. 그 참, 재미있다. 건륭 황제가 서호의 아름다움에 취해, '풍월(風月)이 무변(無邊)이로다'하며 진짜로 '변(邊)'을 없앴단다. 글자의 껍질을 까버리고 글씨를 썼다. 이런 식이라면 아예 두 글자의 속을 다 파버려도 되리라. 또 하나는 '화항관어(...
잘 아는 분이 인도네시아를 처음 다녀왔다기에 물었다. "뭐 좋은 게 있었나요." 그는 거기 가서 꼭 두 가지를 보고 싶었는데 "실패했다."며 섭섭해 했다. '십자성'('남십자성'이라고도 부름)과 '열대우림'이었다. 둘 다 남쪽으로 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십자성을 현지인들이 거의 모르고 있어 의아했단다. 나는 "왜 그렇게 십자성을 보고 싶었어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혹여 상처를 건드릴까 해서이다. 십자성, 남쪽 하늘에 십자 모양으로 보이는 별이다. 이 별을 국기로 한 남쪽 국가들이 있다. 돌이켜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