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우리의 관계는 적막해진다가령, 어질러진 방의 내부를 보면서당신이 먹다 남긴 음료수 캔 하나에 참을 수 없이 날뛰는 말의 통증을 느낄 때,당신은 화를 내며 반격을 시도한다문제의 단초를 둘러싸고당신의 이력을 조목조목 나열하지만그런 친절에 동의하는 당신은 거의 없다그러니까이미 일은 벌어졌고우리의 내전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이런 대대적인 공격에 무너지는 것은 사실은당신이 아니라 내가 배열한 말들의 목록,그 형식의 진부함에 더 화가 나는 것이다이럴 때 필요한 것은범인을 추적하는 프로파일러의 노련한
깊어가는 가을 겨울에 닿고맑은 바람 부는 10월입니다. 꽃빛 보다 환한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상을 받다니 꿈만 같습니다. 시와 만남이 오래되어 더욱 기뻤습니다. 좀 더 공감받고 감동 주는 시 쓰기를 하라 시듯.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시의 세계와 만나 상상력과 오감을 접목하여 새로운 세계를 보는 건 즐거웠고. 상상으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무딘 감각으로 감동을 주고 공감받을 수 있는 작품 쓰는 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시의 세계는 무한이라
말에 대해 말하자면말에 대해 말하자면 할 말이 많아진다.현대는 말의 홍수 시대다. 말을 듣고 싶은 사람 보다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시끄러운 세상이다. 누구나 제 말을 하고 싶어 한다. 들으려고 하지 않고 속에 있는 것을 내뱉으면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유튜버들이 늘어나는 것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누구의 간섭 없이 실컷 하면서 짭짤한 수입까지 챙기는데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겠는가말은 할수록 는다.어눌하던 말솜씨가 다듬어지면
막사발이 무수한 알을 품었다. 둥글게 살아온 생도 궁핍한 뒷골목의 삶도 따스하게 껴안는다. 뜨거움을 삼켜 향기로 스미면 투명 알이 꿈틀거린다. 껍데기는 말랑해지고 복아는 부푼다. 크고 작은 알, 뭉그러지고 당실하고 길쭉한 알들이 부화해 제자리를 찾는다. 흙빛 양수 속에서 볕내가 난다.막사발 안과 밖에 실금이 가 있다. 빙렬氷裂이다. 흙이 가마 안에서 화마의 시련을 이겨내고 얻은 표식이고 유약이 화신에게 하사받은 문신이다. 모두 불이 잉태하고 낳은 생의 지도다. 사발에 작은 물고기 알 모양으로 금이 갔으니 어자문魚子紋이라 칭한다.반달
몇 해 전 최영욱 작가의 ‘카르마’를 만났습니다. 달 항아리에 새겨진 빙렬氷裂이 신비로운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작가는 빙렬을 가리켜 ‘그것은 인생길이다. 갈라지면서 이어지듯 만났다 헤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로 어우러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오늘도 각각 다른 유형의 어자문魚子紋으로 ‘카르마’를 짓기도 하고 갚기도 하는 삶인 것 같습니다.도자기 작업은 인생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먼저 좋은 흙을 골라야 하고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며 뜨거운 불의 시련을 견뎌내야 비로소 세상 앞
4호선 환승역에서 내린 봄이 두 눈을 번갈아 비볐다. 눈곱이나 티끌이라도 들어간 듯 눈이 따끔거렸다. 속눈썹 몇 개를 뽑아내도 이물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봄은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울지 않았는데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봄이 다시 눈을 깜빡였다. 플랫폼 기둥을 감싼 지하철 노선도가 환해지고 글자들이 또렷이 보였다. 시력이 한결 좋아진 느낌이었다.마포역 3번 출구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봄은 뿌연 하늘에 낮달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맑은 날에도 잘 볼 수 없는 달을 미세먼지 나쁨 수준인 날에 보다니. 언젠가 엄마
이른 아침, 해안은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눈부신 아침 해를 맞으며 산책 겸 운동 겸 모래사장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해안선을 따라 밤새 바닷가에서 밀려 나온 수초와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길 아래로 은행이 떨어져 거뭇거뭇 지저분한 거리를 지나게 됩니다. 악취는 코를 막게 하고 사람들은 그 길을 피해 갑니다.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보도가 깨끗해졌습니다. 누군가 청소를 한 것이지요.보이든 보이지 않든 이 세계는 누군가의 수고로 깨끗해지고 정화되는 것 같습니다.
“김주영 작가의 소설 ‘천둥소리’를 읽고 나서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27일 열린 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 문학대전 시상식에서 단편소설 부문 공동대상을 수상한 김외숙 작가와 경북 청송 출신 문학계의 거장 김주영 작가의 글로 맺은 인연이 이어져 화제를 모았다.경북 청도 출신으로 1991년 계간 ‘문학과 의식’을 통해 등단한 김 작가는 캐나다에서 태평양을 건너 고향인 경북을 방문해 시상식 자리를 빛냈다.단편소설 ‘그 아침의 농담’으로 공동대상을 수상한 김외숙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문장
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시상식 및 학술포럼과 팸투어가 지난 27·28일 이틀간 청송군 진보면 객주문학관에서 열렸다.이날 오후 2시부터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시상식, 시낭송, 김주영 작가 특강에 이어 오후 5시부터는 다양한 예술공연과 더불어 축하만찬이 이어졌다.이승택 청송부군수, 김태현 청송경찰서장, 권태준 청송군의회 의장, 황진수 부의장, 정미진·심상휴·윤영경·조찬걸·박신영 군의원, 황대규 청송영양축협장 등이 내빈으로 참석했다.김주영 작가는 수상자를 대상으로 문학 창작에 관한 학술적 주제를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냈다.시상
공사장 인부들이 자장면을 시켰다배달 오토바이가 모퉁이를 돌아나가자나무젓가락 같은 하루가오전과 오후로 딱, 쪼개졌다서둘러 자장면이 비벼질 때단무지는 마치 반달에 잇자국이 난 듯하다노랑이 검은 한 끼의 간을 맞춘다미어지게 말아 넣은 볼 속이꿀꺽 삼켜지는 순간,목울대가 곱빼기로 흔들린다이때만큼은 허기진 온몸의 힘줄들도찰진 가닥으로 불거진다식사를 끝낸 인부들은 졸음과 하품에적당히 섞여 스티로폼 위에 놓여진다망치도 사다리도 줄자의 눈금들도 잠에 빠진다코고는 소리가 커다란 도마에면을 찰각찰각 쳐대듯데시벨을 높인다 팔십cc 엔진소리덩달아 수거되
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시 부문에 응모된 작품 1842편, 본심에 오른 응모자만 60명, 300여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범박한 의미에서 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현대성을 빙자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생활을 벗어나 관념에 기울어진 작품, 개인적 삶의 넋두리를 풀어놓은 작품들은 바람직한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합의를 했다.60명의 작품 중 입상권에 드는 작품이 18편인데 이를 뽑기 위해 여러 번 읽어야 했고, 심사위원들의 토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매끄러운 방심(放心)의 한때가 있을까요?아무리 손에 힘을 주어도 빠져나가는 놓치는 한순간,이렇게 향기롭고 무기력한 손아귀는 세상에 또 없을 거예요.시(詩)를 생각하고 또 각오할 때마다비누 같은 것이라 믿고 또 믿을 것이라고 다짐했어요.무작정 쥐려 할수록무기력하게 빠져나가는 일을집착하고 있었지만버블버블 비눗방울 놀이처럼이파리는 햇빛을 칠하고그럴 때마다 파란 하늘엔 비누 거품이 둥둥 떠 있네요.끝을 동그랗게 모아들이는 빗방울 같은 시인이 되겠다던기도가 되지 못한 말은 참 가벼웠지요.내 바람의 질량은 몇 그램일까요.걱정과 책임감으
켜켜로 길게 누운 블라인드 날개 하나부터 젖히는 것은 창가 탁자에 앉을 때마다 하는 나의 습관이다. 길을 사이에 두고 네 가구씩 서로 마주 보도록 지은 첫 집에 사는 나는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고도 이웃들을 볼 수 있다.대부분 퇴직한 노년의 주민들은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 건너 두 번째 집의 이웃은 아침마다 연보랏빛 가운 차림으로 드라이브 웨이에서 신문을 집어 들고는 그가 누구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말을 걸었다. 이웃이 개를 데리고 있으면 그 개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는데 대개 개 주인은 자신이 칭
동백이 기어코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잎이 진다. 눈물방울이 땅을 울린다. 하얀 눈 위에 떨어져 있는 저것은 날갯짓이 내려 둔 빨간 눈물이다. 살아있음의 소명을 다한 생의 흔적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 파문이 타원을 그리며 번져나간다. 절을 감싸고 있던 고요함이 잔잔한 울림을 전해온다. 여린 입김에 공기가 요동친다. 어느새 온기를 되찾은 날숨과 들숨은 찬 겨울이 가고 봄이 도래하고 있음을 일러온다. 투명한 눈(雪) 알갱이를 멍하니 눈에 담고 섰다가 하늘로 시선을 옮긴다.퍼렇고 허옇다. 정수리 위에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서 붉고
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에 응모한 소설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한 것은 ‘공감’이었다. 소설은 어차피 모두가 아는 이야기가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공감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신이 작품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전달해야 공감을 획득할 수 있는데 본심에 올라온 작품 가운데 그런 공감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반면에 이야기의 주관성이 강하고 이야기의 범위가 극도로 자신에게 한정되어 더불어 공감하며 사는 세상의 보편성을 이끌어내기에는 아쉬운 작품도 없지 않았다.대상 수상작 「그
‘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의 수필 분야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719편이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 60편을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은 면밀한 심의를 거듭한 결과, 가 최종적인 논의 대상이 되었다.우리 수필의 전반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많은 수필이 지나치게 ‘일상성’과 ‘개인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필 문학의 특성상 자유로운 문학적 상상력이 다소 축소되고 개인이 겪는 소소하거나 혹은 무잡하고 답답한 현실의 작품이 양산되는
오랜 시간 씹고 또 씹어야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칡뿌리가 입안에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것을 입에 넣게 되었는지 왜 그게 제 입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입에서 알싸한 향과 단맛이 번지고 있는 것을 알아채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씹어야만 알 수 있는 그 맛을 사람들은 ‘맛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길게 입에 감도는 고유의 은은함이 있음에도 설탕으로 쉬이 단맛을 낼 수 있는 시대에 그것은 없는 맛과 같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줄로만 알고 그것을 뱉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것을
생은 바람이다.삶을 가로지르는 약하거나 강한, 지나치게 차갑거나 더운, 총체적인 바람의 흐름이다.바람이 그 속성을 드러내는 것은 대상이 바람을 거부하며 저항하기 때문이다.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면서도 이겨내겠다고 몸부림하면서 결국 그 결을 타고 누릴 줄 알게 된다. 흐름의 방향이나 흔들 대상에 경계를 두지 않는 것이 바람의 속성임을 깨달은 후부터 일 것이다.그러나 바람은, 휘몰아친 후 사라졌어도 삶 속에다 무수한 흔적들을 남긴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억의 광맥, 작가에겐 창작의 보고가 된다.소설은, 바로 그 바람이 빚은 이야기다.소
책 표지의 질감이 남다르다. 아래 쪽 곤돌라를 탄 연인 쪽은 매끈매끈하고 위쪽 분수 위의 비행기가 나는 공간은 거칠거칠하다. 한참동안 표지를 쓰다듬어 본다.“그래, 이 일을 배운 지는 얼마나 됐나?”로 시작하는 이 소설 는 대화가 많아서인지 타 소설에 비해서 훨씬 실제적이고 쉽게 읽힌다.우리 집 길 건너편에는 중장비 회사가 있다. 회사라기보다는 작은 사무실이랄까? 중장비 차량들이 서너 대는 항상 서 있다. 버스를 기다릴 때 그 중장비 차를 바로 옆에 서 본다. 옆에 서 보면 이 차량은 얼마나 거대하고 묵직한지
사과는 점점 해를 닮아간다소슬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소리는 낙엽이 되어 흩어진다고추잠자리는 살랑대는 갈대숲에서 붉어진 얼굴로 삼보일배를 그치지 않는다짧은 생에 대한 원망인가 극락왕생 원함인가개구리는 여름 내내 공양하며 염불외우다 일제히 동안거를 떠난다살생을 잠시 멈추라는 섭리인지도뒤 곁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은 풍경風磬이 되어 밤새 흔들리고추수가 끝난 들판은 하얀 서리가 내려 늙은 중의 머리처럼 반짝인다먼 산사에서 가늘고 나지막이 들여오는 목탁소리는 처마 끝에서 낙수물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