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녘 갈무리 끝낸 빈 밭에서아버지 마른 들깻단 모아 태우신다여문 알맹이들 툭툭 털어낸 빈 대궁들허공속으로 사라진다나이들면 아프고 죽는게 자연의 이치라며팔십 너머 구십 다 된 나이에없는 병 찾아 치료 하는건의미 없는 일 이라시며건강검진도 마다한 채마른 대궁처럼 비어가는 아버지어둠이 내리는 빈 밭에서마른 대궁 하나가푸르렀던 시간들 훨훨 털어내고빈 쭉정이가 된 생들을 긁어모아 태운다허공 속으로 사라지던 것 들차가운 땅위에 재가 되어 돌아와 눕는다그리하여 다시흙이 되고 거름이 된다
낙숫물이 소리를 지른다쫘아쿵 쫘악 아악잔물결이는모자이크는 나의 속성이다피라미 비늘로반짝이는 윤슬오르가슴 정수리로 끓어오르면어깨춤 절로인다채워지기도 하고비워지기도 하는욕망이 가시를 뾰족이 내밀어도인연은 불가분의 관계이다머나먼 낯선 땅으로어머니 자궁 같은생명을 잉태하려돌부리를 돌아서 쉼 없이 흐른다
“아가 늙지 마라…늙지 말거라…”어느새 담담해진 분선 어르신은 체념의 무게 때문인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한의 가락을 뽑아내시듯 긴 한 숨을 섞어 중얼거리신다.집근처 요양원에 근무하면서 신규어르신들의 입소에 관한 일은 인영의 담당업무중 하나다. 오전 이른 시간 분선 어르신의 자료를 검토하면서 시설 관계자 한분과 어르신의 집으로 출발했다. 꼬불꼬불 들길을 지나고 골목 끝 언덕 위작은 집이 맞다고 내비는 빠르게 깜박 거린다.“계세요?”…계십니까?” 동행한 남자 직원의 힘찬 목소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집안 분위기는 조용하고 침울하
바람이 뱃전을 흔들고 닻줄에 묶인 배가 출렁거린다. 물길 따라 떠나려는 배와 그것을 잡아두려는 닻의 끊임없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뇌 과학자와 여행 작가가 함께 서해랑 길을 걷는 기사를 읽다가 “녹슨 닻들이 켜켜이 쌓여 길을 만들었다. 마치 닻 무덤 같은 길.”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끌려 결국 여기까지 달려왔다.서천의 홍원항이다. 항구 한쪽에는 닻이 줄지어 누워서 길을 만들고 있었다. 이 많은 닻을 수명이 다했다면 버리지 않고 왜 여기 쌓아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일고 있을 때 선원 한 사람을 만났다. 안강망에 쓰일 닻이라는 그의
해가 꿈틀거리는 시간이다. 약간 추운 듯 찹찹한 새벽공기가 오히려 살갑다. 산으로 가기에는 어두운 것 같아 들길로 접어든다. 멀리 고속도로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라도 없으면 적막강산일 들판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걸어간다.한참 걸어왔다. 덩그러니 농로 옆에 있던 벽돌 두 장이 우리를 쳐다본다. 들판의 초청이 반가워 주머니 속 비닐을 깔고 벽돌 위에 앉았다. 먼동 트는 동녘을 보고 있노라니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진다. 천촌 가는 첫 버스가 라이트를 비추며 올라간다. 동네 가운데 있는 십자가는 오라고, 철탑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연신 붉
강을 건너야 할 나룻배는 보이지 않는다. 나룻배로 양쪽을 이어주던 뱃길은 끊어진 지 오래다. 커다란 돛에 팽팽한 바람을 담고 낙동강을 오르내리던 황포돛배도 흔적이 없다. 제방 위에 박제처럼 전시된 돛배의 모형만이 메마른 뭍에 닻을 내리고 젖은 그림자를 말리고 있을 뿐이다. 강의 내밀한 이력이 켜켜이 쌓인 강바닥을 콘크리트 다리로 우악스럽게 딛고 서있는 무심한 삼강교가 세월의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세 강이 만난 곳이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모데미풀을 적시고 온 낙동강이 안동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다가 이곳에서 남쪽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삼강주막, 그 인연의 빗금은 생각만으로도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저를 알게 된 많은 인연들, 잊힌 이름도 있고 아픈 이름도 있습니다.놓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있고, 가까이 하지 말았어야 하는 관계도 있습니다.하지만 어찌 됐든 제가 부족한 탓이었고, 그것들은 제가 아직도 안고 가야 할 부끄러운 몫입니다.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소중한 인연임을 알면서도 관계 유지에 소홀했다는 인연의 빗금은 아직도 저에겐 생생한 현실입니다.심사위원 선생님과 청송군과 경북일보에 감사드립니다.더 힘쓰고 노력하겠습니다.
냉이 같은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들판이 좋아 옆집 언니들을 따라 냉이를 캐러 다녔고, 결혼하니 반찬이 없어 쑥이며 달래 냉이를 뜯었습니다. 느지막한 나이에 귀촌하고 보니 우리 밭에서 냉이가 지천으로 자랍니다. 어느 날 문득, ‘이제 나를 써 봐’하며 냉이가 내 가슴을 두드렸습니다.동리목월문학관과 지도해 주신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런 장을 마련해 주신 경북일보와 부족한 글을 뽑아 올려주신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주위에서 늘 관심과 기대로 응원해 주신 분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뭉툭해진 손마디로 굵은 글을 쓰며 냉이가
수상 소식이 참으로 기뻤습니다.수준 높은 경북일보 청송 객주 문학 대전에 출전할 용기가 없었지만 내 고향 진보에 있는 객주 문학관의 행사에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거기에서 김주영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지닌 채 작품을 보냈습니다.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니 기쁨이 배가 됩니다. 단발머리 중학교 시절 짧은 기간이지만 선생님의 수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 선생님께서는 문학청년이셨을 듯합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까지도 멋졌습니다. 객주 문학관 전신은 진보 여중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의
발자국 화석처럼 고요하게 왔으면 좋겠다그 화석에 고이는봄비처럼 왔으면 좋겠다여섯시 반의 시계바늘처럼 생이 쳐져 있을 때내 손을 잡고 한 걸음 먼저 움직이는발걸음처럼 왔으면 좋겠다바람 불 때 천 개의 귀로 사운거리는 보리밭이거나새들이 찻잎 같은 소식을 물어 나르는 숲처럼자신의 색을 내어주면서 기꺼이 함께그림이 되어주는 파스텔 같은 것이었으면때로 누룽지처럼 말라붙은 그리움을 씹어보는 혀와 같이혹은 적막한 오후의 부뚜막에 있는 불씨이거나그 불씨를 깨워줄 손결 같은 것이면 좋겠다어디에 놓여 있어도뼈 속까지 명징한 유리잔 같은 것이었으면 좋
미농지 같은 반투명 손톱 위에꽃과 함께 어우러진 분홍 나비는머지않아 나아갈 꿈을 꾼다거듭된 진화에도 남아있는야성의 흔적에 매니큐어가 칠해지고그 다양한 색깔만큼 절망의 손톱 위에반짝이는 보석을 붙이면체인 두른 일상을 탈출할 수 있을까서너 평 되는 작은 방에 갇혀손톱과 발톱을 다듬고 색을 입히는예술과 시술 사이를 오가는그녀 손길은 빠르고 분주하다꿈에 부푼 욕망의 손톱 세운 후부터제 살 깎아 먹는 줄 모르고몰려드는 예약 손님 때문에끼니도 제때 못 찾아 먹게 되었지그녀에게 손톱이란 무엇일까잘려 나가도 다시 자라는몸 밖의 뼈는 그녀가 펼칠
당선작 발표 날짜가 가까워져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낙심하고 있던 차에 기다리던 당선 소식을 받고 무척이나 기뻤습니다.어떤 상이든 상을 받는다는 것은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작품성이겠지만 시력과 문운도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을 매번 공모전을 보낼 때마다 실감하곤 했습니다.이번 경북일보 문학 대전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생활 속에서 씨앗을 얻은 진정성이 묻어나는 시가 좋은 시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시인이라는 끝없이 멀고 먼 외로운 길에서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고 이끌어 주신 박윤배
제 시가 청송객주문학대전에 동상으로 선정된 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청송은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주왕산이 있는 곳이어서 평소에도 애정이 많이 가는 고장이었는데, 이렇게 제 시를 통해, 인연이 맺어지게 되어 앞으로 더 많은 애착이 생길 듯합니다.이 수상이 시를 쓰는 제게 하나의 따뜻한 격려이자 응원이라 생각하고, 시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더 좋은 시를 쓰도록 더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핏 손을 보았다.여자의 손인지 남자의 손인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들것에 실린 그 손을 덮어버렸다. 내가 본 그 손이 남자의 손일까. 여자의 손일까. 산 사람의 손일까. 죽은 사람의 손일까.가스폭발로 인한 사상자는 쉰 명이 넘는다고 텔레비전 화면 속의 한 젊은 여자 아나운서가 침통한 표정을 들어내 보이며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통이라 인명 피해가 더욱 심했던 것 같다고 하는 말도 덧붙였다. 속보가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텔레비전이 켜졌기 때문에 정확한 사고 지점이 어디인지 어떤 사
무조건 문학이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지도 벌써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새롭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 어디선 본 듯 익숙해 보이면 구식이다. 라고 강조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소설을 쓰려고 애를 썼습니다. 솔직히 소설을 쓰면서 무엇을 이루어보려는 욕심은 없었습니다. 그냥 소설을 읽는 것이 좋아 이런저런 소설들을 두루 읽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솔직히 소설을 읽는 것이나 소설을 쓰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소설이 지닌 묘한 매력에 푹 빠지곤
눈을 떴다. 껌벅껌벅. 오른 손으로 배꼽 부위를 시계방향으로 쓰다듬었다. 꾸르륵꾸르륵 위장이 텅 빈 소리를 냈다. 몸을 일으켜 전기포트 전선을 전기코드에 꽂았다. 폭발할 듯 수증기를 뿜어내던 전기포트가 비등점에 다다르자 저절로 딸깍 꺼졌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된 물은 보약 못지않다. 여름에는 정수기물을 그대로 마시고 겨울에는 뜨거운 물에 찬 물을 섞어 미지근하게 만든 음양탕을 마셨다. 음양탕을 만드는 데는 순서가 있다. 반드시 끓인 물을 먼저 컵에 따른 다음에 찬 물을 섞어야 한다. 그래야 뜨거운 기운이 위로 올라가 찬 기운을 감싸
이방인의 경계를 벗어나다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여러 모습의 나를 만난다. 그 속에 사랑받지 못한 내가 있고 상처받은 내가 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등단하고 꽤 오랜 시간을 사회자폐아처럼 지내도 외로움을 느낄 수 없었던 이유가. 사회적 격리로 세상이 단절되었을 때 오히려 나는 마음이 편했다. 늘 그래왔으니까. 나는 이미 오래전에 지리적으로 고립되었다. 습자지처럼 얇은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모국어를 더듬는 일, 문학은 내게 낯선 타국 땅에서 꿋꿋하게 버티게 해주는 위로였다. 수상 소식으로 실존하고 있음이 새삼스레 감격스럽다.
청송에 주왕산이라고 있는디 들어는 봤나 모르겄소. 그짝에 신묘한 바위가 하나 있다니께 나가 오늘은 그 바위 야그부터 쪼까 해야 쓰겄소. 고것의 높이가 뭣이냐, 아, 물경 세 길이라 척 보기만 혀도 범상치 않다는디, 이 바위는 신선이 마련하고 비바람이 도와 깎은 영물 중의 영물이라, 꼭대기에 우물마냥 고인 일곱 촌(寸) 깊이 맑은 물은 동해 구름이 정기 모아 젖소 우유 짜듯 짜놓은 것이라 안 하요.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고 노닐어서 우물 이름이 금샘이라나 뭐라나. 뭣이여? 말도 안 된다고라? 어쨌거나 믿거나 말거나지라. 아무튼 동해용왕
가을이 깊어갈수록 청송 주왕산이 그리워집니다.언젠가 주왕산에서 만추를 즐기던 때가 꿈결같이 느껴집니다.그 아름다운 청송을 배경으로 과분한 상을 받게 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드립니다.문학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청송객주문학대전만큼 문학의 본질에 충실한 대회도 드물 듯합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송을 배경으로 한 공모전이기에 그렇습니다.더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별이불이 총총하게 깔렸다. 오늘따라 늑장을 부리는가, 달은 아직 보이지 않고 서늘한 어둠만 가득하다. 늦더위가 유난하던 며칠 전과는 달리 어느새 가을이 덥석 안기는 것만 같다.오랜만에 근처 사는 오빠 내외와 낚시를 갔다. 반짝이는 물비늘이 눈부시다. 낚싯대를 펼치고 평평한 곳을 찾아 앉았다. 치장하지 않은 주위 풍경은 흑백사진마냥 정겹고, 새우 미끼의 비린내와 깻묵 냄새가 순식간에 수십 년을 거슬러 간다. 어릴 적 기억과 몇 년 전 일들이 뒤섞여 일상인 듯 익숙하다.어릴 때처럼 오빠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뭔가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