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잠자던 땅이 부스스 깨어나는 기미가 보인다. 한 노인이 길가의 공터에서 흙을 뒤적이고 있다. 아마 흙을 깨우려는가 보다. 농로를 따라 산책하는 나는 옷깃을 여미는데, 일하는 노인은 겉옷을 벗어부쳤다. 아직은 바람 끝이 차가운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구부리고 있는 노인의 등에서도 봄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도시에 몸을 붙이고 살면서도 작물을 가꾸려면 요맘때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도로 건너편에 아파트 단지가 버티고 있고, 노인이 일하고 있는 이곳 주변에는 제법 넓은 과수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틈
그분은 내게 긍정을 팔러 온다. 한참동안 보이지 않을 때면 자꾸만 궁금하고 아쉬워진다. 예쁘고 젊은 분도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이가 칠십이라 하더니 며칠 전에는 팔십이라 하여 놀라고 말았다. 십년이란 세월이 빠르게도 지나갔던 것이다. 그래도 내 눈에는 여전히 칠순의 나이를 지니셨다.리어카에는 손수 농사지으신 채소를 싣고 오신다. 흔한 푸성귀야말로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구입하기 쉽지만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자연스레 사게 된다. 덤으로 마루에 걸터앉게 하신 후 커피까지 대접하면서 얘기장단을 맞춘다. 나도 모르게 보따리를 풀 듯 쏟
하늘로 이르는 길은 직선에만 있지 않고 곡선에도 있음을, 휘어지고 뒤틀리지 않으면 서로에게 기댈 수 없다는 것을 맹종죽림의 나무들은 알고 있다. 올려다본 하늘이 댓잎으로 물들어 있다. 대숲에 한 줄기 바람이 일면 소리가 먼저 번진다. 대숲에는 대나무가 밀어 올린 시간이 있다. 자로 잰 듯 정교한 눈금들, 마디와 마디에는 한 줌 햇빛과 달빛, 한 모금의 이슬을 나누고 저마다의 별을 바라본 기억들이 남아있으리라.무한 직립의 대나무들 사이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온 힘을 다해 대나무를 끌어안고 있다. 댓잎 우는 소리가 소나무의 귀를 간
동네 어귀에 둥그런 바위 하나가 놓였다. 바위는 고임돌조차 사라진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죽은 사람의 무덤이지만 이제와 그리 여기는 이는 드물다. 다만 등에 뚜렷이 새겨진 성혈로 여느 바위와는 다름을 짐작할 뿐이다.사람은 누구나 한 권의 인생 책을 쓴다. 얇거나 두껍거나 두께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마침표가 찍힌다. 마침표가 찍히기까지 책은 수만 가지 이야기를 품는다. 때로는 따옴표로 강조를 하거나 반복을 하여도 넘침이 없다. 울고 웃고 가슴을 파며 살아도 다르지 않다. 한 번에 찍거나 미진하여 망설여도 마찬가지다. 어느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순간, 무언가 핑그르르 날아올랐다. 나방이었다. 기옥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방은 그 사이 거실을 가로질러 빛 속으로 빨려가듯 텔레비전 화면 위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현관 벽장에서 에프킬라를 꺼내왔다. 나방을 향해 버튼을 힘껏 눌렀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분사되는 가스는 얼마 되지 않았다. 되살아난 나방은 천장 높이 날아올라 사라졌다. 그녀는 눈먼 사람처럼 팔을 내둘렀다. 깨금발로 뛰며 휘젓던 손끝에 형광등 갓이 스치면서 나방이 드러났다. 나방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부엌으로 날아가 냉장고에 앉았다. 마치
어제 일 같다. 생각해 보면 까마득한데 기억은 갓 잡은 생선처럼 팔팔하다. 20년 전, 주인은 우유 아줌마에게 단돈 6만 원에 나를 샀다. 우유를 먹는다는 조건이었다. 값이 싸긴 해도 명색이 ‘삼천리자전거’ 라는 족보를 가진, 자전거 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족속이다. 주인은 나에게 ‘청룡靑龍’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싱싱한 푸른 몸을 칭찬해 주면서 승천하는 청룡처럼 멋지게 살라고 했다. 그날은 죽어도 잊지 못한다.나는 늘 문밖에서 대기한다. 주인은 집을 드나들 때마다 내 이름을 불러준다. “청룡아, 안녕! 잘 있었어.”하며 안부
시골장터에서 기다란 나무 밀대를 본적이 있다. 앞치마를 정갈하게 두른 중년 아낙이 뭉쳐진 반죽을 밀대로 넓게 펴고 있었다. 밀대와 반죽 사이가 들러붙지 않게 밀가루를 솔솔 뿌려가며 미는 모습이 참 반가웠다. 아낙의 두 팔에 힘이 실리자 넓게 펼쳐진 반죽은 밀대에 말려 겹겹이 포개졌고, 그 행위는 몇 번 더 되풀이됐다. 밀대에 말렸다 펴길 반복한 반대기는 만두피처럼 엷어져갔다. 뭔가에 홀린 듯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는 임시로 마련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테이블은 이미 손님들로 채워져 북적였다. 호객을 위한 장사치들의 고함소리와
청송군은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겨울철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에 대비해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시행한다. 군은 해마다 12월에서 이듬해 3월이 고농도 미세먼지가 가장 빈발하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 이 기간 동안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계획을 수립해 집중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주요 관리 내용은 대기배출사업장 18개소 및 비산먼지 발생사업장 70개소 지도점검 강화, 다중이용시설 7개소에 대한 실내공기질 점검 등을 중점 추진한다. 올해부터는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부산, 대구에서만 시행되던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제한 지역이
청송군은 ‘2023 전국 드라이툴링대회(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 선발전)’를 9일 청송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한다. 2024 청송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 선발을 위해 치러지는 이번 대회는 전국의 클라이머들이 참가해 스피드를 제외한 리드(난이도) 종목으로 진검승부를 펼친다. 대회가 개최되는 ‘얼음골’은 얼음 빙벽으로 유명해 전국의 관광객들에게도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들어줘 관광 활성화에도 톡톡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윤경희 청송군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청송을 찾는 선수 및 관계자들에게 산악스포츠의 메카 ‘
청송군은 2023년도 제3회 추가경정 예산안 5553억원으로 편성해 7일 의회에 제출했다. 제 2회 추경 예산보다 43억원(0.78%) 증가했다. 군은 이번 추경안을 통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 집중했다. 일반회계는 2회 추경보다 29억 4100만원(0.58%) 증가한 5115억 8300만원, 기타특별회계는 13억 5900만원(3.21%) 증가한 437억 1700만원으로 편성했다. 분야별 추경예산 규모는 공공질서 및 안전 5억원, 문화 및 관광 7억원, 환경 16억원, 보건 13억원, 농림수산 11억원,
M이 말했다.인류의 미래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갈 거라고. 다중행성 종이 되거나, 한 행성에 국한된 채로 남아 있다가 결국 멸종하거나.그리고 또 말했다.자기가 죽기 전에 인류가 화성에 착륙하지 않는다면 매우 실망할 거라고.어느 하루 잠잠할 날이 없는 M의 행적이 나의 평화를 깬다. 재수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이런 말을 마구 지껄이는 M의 나이는 52세. 내 나이의 딱 두 배다. M에 대한 짜증은 잠시 접어둔 채 핸들에 부착된 휴대폰으로 다음 배달 장소를 검색한다. 점심시간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나는
사계절 철 따라 변해가는 산(山) 하(河) 들(野)의 형형색색, 갖가지 자태는 천지조화에 의해 긴 세월 자연이 만들어 준 아름다운 풍광은 신비롭고 희귀하여 보면 볼수록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나라 유일무이한 자연박물관이 청송이다.청송군 전체(846㎡)가 24개 지역 명소이며 청송국가지질공원(2014년, 환경부)인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2017년, UN)을 비롯하여 주왕산국립공원, 국제슬로시티, 아이스클라이밍성지, 산소카페 브랜드도시로 명품 사과의 고장답게 청송은 생태관광지로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한 농촌 자연관광지로 주목
어릴 때는 춤에 대한 생각이 단순했다. 그저 리듬감 있게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춤이었다. 가만히,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들 것 갗은 작은 동작들, 떨림들, 웅숭깊은 울림들, 반복되는 움직임이나 생각들도 그에 속했다. 가령, 뒤집혀진 매미나 거북의 버둥질이라든가, 바람이 불면 찰랑대며 흔들리는 포플러나무 이파리들의 손짓, 홍수 난 강의 흙탕물이 보여주는 덩실거림 같은.비가 오면 지렁이들이 어둔 흙에서 기어 나와 바깥나들이를 했다. 질퍽한 흙에는 지렁이들이 기어간 자국들이 이리저리 긴 금으로 이어져 있
청송군은 ‘산소카페 청송군의 매력 찾기!’라는 주제로 개최된 ‘2023 청송군 SNS 콘텐츠 공모전’ 심사결과 26개 작품을 당선작으로 최종 선정했다. 산소카페 청송의 매력을 발견하는 온라인 홍보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이번 공모전은 네이버 블로그 부문 및 인스타그램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됐으며, 매력적인 청송의 모습이 담긴 콘텐츠들이 출품됐다. 작품성, 홍보효과, 주제 활용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최종 블로그 부문 최우수작은 김건호 씨의 ‘청송의 관광명소들로 이루어진 최고의 여행코스’, 인스타그램 부문 최우수작
청송군은 시민단체가 선정한 ‘2023년 예산효율화 사례평가’에서 전국 최우수 지방자치단체로 선정돼 대상을 수상했다. (사)세금바로쓰기 납세자운동 시만단체에서는 세금의 쓰임에 대한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납세자 감시운동을 통해 지난 2014년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집행에 대한 우수사례 등을 평가해 시상하고 있다. 청송군은 올해 ‘전국 최초 무료버스 운행, 경제효과 20억’의 성과를 인정받아 대상으로 이어졌다. 올해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농어촌버스 전면 무료 정책은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친서민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으로
내 자리에서 의자를 돌려 앉으면히말라야시다 침엽 사이로빗금처럼 쏟아지는 햇살그 햇살에 묻어온상념의 꼭대기에 걸터앉은 여린 기억들저녁연기처럼 피어 오른다밥 짓는 내음 곁에서장독대 닦던 어머니가 반들반들 보고 싶다풋 냄새 아련한 그 머슴애첫사랑의 기억에 달라붙은 달콤함이여태 객지를 떠돈다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엉키는덤불 같은 세월에다 호미질 하다나는 어느덧 여기쯤에 있다잊고 지냈던 배롱나무 간지럼 같은추억을 데리고세월의 이랑 사이를 걷고 있다자꾸 뒤돌아 본다
옷장을 열면햇살을 입고 싶은 깃들손 끝에 달려드는 외출들살갗 찢어진 불안한 하반신은공간의 틈을 멋으로 메우고젖고 구겨진 낡은 어깨도툭툭 털어 햇빛에 깃을 세우며저 만의 풍경을 갖는다동그란 하루를 내려놓는 저녁이면하나씩 버려지는 깃털들오늘을 벗어 넣은검정 비닐봉지를 툭, 던졌다터져버린 피로수거함에 들지 못한 깃털 하나가축 늘어진 하반신을 뚫고 나와날개를 잃고 허공을 부유한다수거함을 열면웅크린 깃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은절룩거리는 밤,어두운 벽에 창을 낸다
닳아버린 굽과 구두 밑창을 뚫고 들어오는빗물, 흙먼지 그리고 가끔의 바람길을 걷다 돌아오면 발바닥이 시큰거렸다매일 돋아나는 상처를 외톨이처럼 키우며일 년에 한두 번씩 구두창을 갈았다 그때마다한 움큼의 세월이 고린내를 풍기며 혀를 날름거렸다타인의 사무실에서 인파속의 거리에서 후미진 골목길에서구두 속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던무언가 썩어가는 냄새나를 데리고 다닌 날들의 흔적너무 가까우면 잘 보이지 않는 법이지사랑도 우정도 그리고 미움마저도흐려질 대로 흐려져 버린 세월은이제 구별을 하지 못하네누구도 상관없이 가깝거나 혹은대수롭지 않은 사이
어머니는 멀리 가셨다고 말했다가먼 데 가셨다고 고쳐 말한다돌아가신 아버지를 찾는 전화다멀다, 라는 말은 참 유용하다멀면 갈 생각을 않거나체념하기 좋은 거리이니까알고 보면 사람들은 그 먼 곳에자신을 영영 숨기거나 체념을 맡기곤 한다아버지 친구분은 돌아오는 날짜가 있는 먼 곳을 묻고어머니는 돌아오는 길이 없는 먼 곳을 설명하느라통화가 길어진다그 사이, 멈칫거리던 곳은소실점 하나를 뚝 끊고 사라진다어머니는 먼 곳으로 가고 있고아버지 친구분은 자꾸만 이곳으로 오고 있고너무 멀어서 안 돼, 라는 말처럼너무 아득해서 언제까지 따라갈 수 없는
“운명하신 게 아닙니까?”적문의 목소리는 떨렸다. 명주수의를 입고 떡갈나무 관 속에 누워있는 노인의 눈이 가늘게 움직였다. 노인 아내가 손등으로 콧물을 닦으며 적문에게 다가왔다.“스님, 우리 집 양반이 어찌나 조르던지 스님을 모셨심더. 결례라는 것도 알지만 우야닌 교. 꼭 그만한 사례는 각오하고 있심더.”그러자 숯 검댕 묻은 아들도 다가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적문은 한걸음 물러서서 난감해하는데 노인이 번쩍 눈을 떴다.“스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살아있는 매일이 심심 함니더. 한번 죽어보자고 결심했고 죽고 나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