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단편소설 은 전형적인 전쟁소설입니다.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압축된 서사(敍事)가 시종일관 긴장을 유지합니다. 독자의 안일한 스토리 중심 읽기를 질타하는 결말의 반전도 선명합니다. 전쟁소설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 소설도 이른바 ‘환멸의 플롯’을 가진 소설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이면(중의 하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논 가운데 서 있는 작은 탑 하나를 둘러싼 서로 다른 기대의 충돌을 전경화시켜 전쟁의 비윤리성을 고발합니다. 소설에서는 한 개의 탑을 두고 전개되는 두 개의 ‘문화와 이념’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월남에 파병된
융합(convergence),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해지는 일을 일컫는다. 종종 융복합이나 통섭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융복합은 둘 정도의 결합으로 그리고 통섭은 셋 이상의 결합으로 이해된다. 결합의 개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합의 방식과 결과가 더없이 중요하다. 1+1이 ‘둘’이 아니라 ‘하나’인 방식이어야 한다. 기계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반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다.정치와 문화, 기술, 금융, 생태 그리고 국가안보의 전통적인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정치를 논하면서 국가 안보를 논하지
최근에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덴마크의 제약기업 노보노디스크는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시장에 내놓았는데 뛰어난 효능으로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의 성공으로 덴마크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6%에서 1.2%로 상향되었다고 한다. 기술개발이 국가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인도는 자체 개발한 우주기술로 세계 최초로 달의 남극에 우주선을 착륙시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번 성공이 보여주듯이 인도는 인구대국을 넘어 첨단기술 강국으로 자리잡
오늘날 여전히 문학소녀나 문학소년의 감성을 지닌 소수의 독자층과 문학 비평을 업으로 삼고 있는 평론가나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문학작품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문학은 그렇게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미 2000년에 ‘문학의 종언’을 선언하기도 했다.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00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문학의 종언’을 주제로 한국의 언론과 인터뷰를 한 고진은 2004년 ‘문학동네’ 겨울호에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글을 게재한다. 이 글에서 고진은 문학이 그동안 시대
영화 (최호, 2006)을 봤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영화 시청 중간쯤에 가서야 예전에 본 영화라는 걸 알았습니다. 원로배우 김희라가 등장할 때 기시감이 든다 싶었는데 추자현이 등장하고 김희라와 추자현이 한집에서 거주하게 되는 부분에 가서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류승범의 삼촌 김희라가 마약제조 기술자 ‘교수’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류승범과 황정민이 출연한 (류승완, 2010)도 생각이 났습니다. 류승범, 황정민 콤비 영화 과 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진 영화이지만 스토리와는
입시정책의 변화 하나로 대한민국 사회가 온통 뒤숭숭한 모습이다. 올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이른바 초고난도 문항을 일컫는 ‘킬러문항’을 두고 대통령까지 나서 문제점을 제시하고 이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교육계 전체에 대한 바로잡기에 나선 모습이다. 정부는 킬러문항을 풀 수 있어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그러려면 학원부터 다녀야 하는 상황이 상당히 비정상적인 것임을 밝히고 있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킬러문항 하나가 1조 원’이라는 말이 돌만큼 이런 문제풀이 노하우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학원들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
며칠 전 대구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대구와 서울, 광주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 갈등 극복과 국민 통합을 고민하는 동서미래포럼의 정책세미나 자리였다. 이날 포럼에는 예상 밖으로 500명이 넘는 회원·비회원이 모여서 포럼 주제인 ‘정치·사회 혁신과 지방시대’에 관한 강연을 듣고 의견을 냈다. 강승규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박주선 전 대통령취임준비위회 위원장,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같은 내빈들도 함께했다. 포럼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가 건설과 개혁을 응원하기 위한 방안도 활발하게 논
기존의 체계를 새로이 전복적으로 재편성하는 이른바 ‘와해적 기술’로서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탈근대시대의 철학 및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신뢰 가능한 매개자 없이 P2P 네트워크 방식에 기초하는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바로 탈중앙화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신뢰의 새로운 아키텍처’로서 기능함으로써 기존의 중앙화된 체계에 대한 혁신적 균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능정보사회에서 더 심화되는 데이터의 중앙화에 대한 시민사회에서의 우려는 탈중심적이고 분배적인 네트워크로의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의사
요즘 문해력이라는 말이 많이 떠돕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문식력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부쩍 문해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 와중에 학습력의 하위분야로 문해력을 끼워 넣으려는 지식장사꾼들의 활약이 눈부시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조식, 중식, 석식의 중식(점심)을 중국요리로 읽고, 사흘(3일)을 4일로 이해하고, 직접 경기장이나 공연장에 가서 관람하는 것을 직관한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 등이 눈에 띄는 악성 문식력 하향의 예로(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자주 거론됩니다.그런 문식력 부족(시대가 바뀌었으므로 자연스런 현상으로
재즈(Jazz),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미국의 흑인 음악에 클래식, 행진곡 따위의 요소가 섞여서 발달한 대중음악 장르다.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운율의 독특한 리듬감이 강조되는가 하면, 즉흥적 연주를 중시한다. 다양한 요소들이 섞이고 혼재되면서도 서로 이질적인 음악적 요소들이 절묘한 리듬과 화음으로 어우러진다. 저마다의 음악 장르가 가진 정통성과 역사성에 새로운 트랜드가 가미된 혼종성을 추구하며, 정형화된 패턴보다는 변형과 변화 가능성을 추동하므로 재즈는 가히 열린 음악이다.열림은 곧 수용이다. 수용은 다름에 대한
며칠 전 돌아가신 은사님의 사모님이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면회하러 갔다. 병실 면회는 감염병을 우려하여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용역업체 직원이 방문자를 일일이 확인하였다. 등록된 간병사나 가족보호자가 아니면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면회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그 대학의 명예교수임을 내세워 면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끝내 면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특권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조금은 부끄러웠다.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낸 데’ 하면서 특별한 대접을
지난 28일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안동대학교 게시판에 “개강하면 흉기로 사람을 찌르겠다. 다들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글이 업로드되었다. 개강을 앞두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글을 올린 학생이 하루 만에 자수를 함으로써 다행히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1학년으로 알려진 이 학생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관심받고 싶어서 글을 썼다.”고 진술했다. 서울 신림동에서 일어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온라인상에 살인예고 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안동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스물세 살, 마침내(?)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하숙집 건물이 팔려 폐업을 하게 되어 새 하숙집을 구했습니다. 도청 근처라 공무원 하숙생들이 많은 깨끗한 2층 양옥 하숙집이었습니다. 사람도 집도 다 좋았는데 한 가지가 불편했습니다. 퇴직 공무원이었던 주인집 아저씨가 자식 같은 저를 보고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밤마다 찾아와서는 마작(麻雀) 배우기를 권했습니다. 룰도 모르고 취미도 돈도 없다고 하니까, 자기가 금방 가르쳐 줄 거니까 염려 말라는 거였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은 두어 판만 해 보면 금방
대구한의대 평생교육융합학부는 학생이 성인과 재직자로 이루어진 학부이다. 2015년 학부과정에 최초로 성인학습자 전용 학과인 평생교육융합학과를 시작으로 2018년 한 해 모집 단절 후 2019년부터 재개하여 2020년엔 학부로 확대 개편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성인학습자의 학위과정 교육 수요가 증대되면서 2020년부터 평생교육융학학부를 기반으로 하는 성인친화형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융합대학’으로 발전하였다. 현재 1개 학부와 3개 학과가 개설되어 있으며 내년부터는 전국 최초로 지자체와 연계한 지역전문학과인 청도인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다. 1999년 처음 논의가 시작된 후 24년 만에 역대 최다 의원이 제도적 뒷받침을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국회의원 261명이 여야를 넘어 초당적으로 법안 발의에 동참한 것이다.달빛고속철도는 지역 화합과 국토 균형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교통망이라는 점에서 사업의 의미가 아주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광주, 전남, 전북, 경남, 경북, 대구 등 6개 시·도를 통과하는 동서횡단 고속 인프라다. 이번에 특별법 발의를 성사시키는 과정에는 영호남 정치권과 경제계, 학계,
2022년 개봉한 ‘성덕(fanatic)’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나도 누군가의 팬이었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한때 내 전부를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아했던 연예인이 한순간 범죄자로 전락해버린 후, 한때는 ‘성덕(성공한 덕후)’이었던 팬들이 여러 가지 감정과 소회를 나누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자신의 우상(idol)이었던 존재가 그를 응원했던 이들을 철저히 기만하고 있었다는 분노와 배반감, 그리고 왠지 모를 죄책감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영화 곳곳에서 그들의 팬심에 담긴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1세대 아이돌의 전
예수는 “나는 여자의 아들이다”라는 말을 종종 했습니다. 모성에 대한 존중과 함께 그 말은, ‘세상 낮은 사람으로서의 여자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고대 히브리에서는 사람을 셀 때 여자는 세지 않았습니다. 그런 낮은 존재에게서 난 이가 자기라고 예수는 말했습니다.얼마 전에 신약성서에 나오는 인물인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가 주인공인 영화를 봤습니다. 이라는 넷플릭스 영화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중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신앙적 비중이 높은 여성인물입니다. 기록
트로트 열풍이다. 너무 거센 나머지 방송에서 타 장르 음악을 접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창궐하는 COVID-19로 꺾여버린 심신을 달래기에는 트로트의 꺾기만 한 것도 없었으리라. 전 국민 대상 신인가수 발굴 서바이벌 ‘슈퍼스타 K’와 기성 국민가수 대상 경연 백미 ‘나는 가수다’에 이은 히트상품, ‘미스트트롯’ 덕분이다. 클라스가 다른 원조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트롯’은 임영웅의 발굴로 대한민국을 트로트 열광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미스트트롯’에 감춰진 키워드가 있다. 패스티시(pastiche)다.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박근혜 정부 탓을 많이 하더니 윤석열 정부도 직전 정부를 탓하는 모습이 그에 못지않은 것 같다. 방금 끝난 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진흙탕 위의 야영장과 엉망진창인 화장실 등은 준비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참가한 외국인들과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 때문인지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 전라북도의 부실한 준비를 탓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전라북도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계속해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2년 차를 맞이한 신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교권(敎權)의 몰락이라는 사회적 담론과 함께 현직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어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하나의 일상으로서 ‘견뎌내 왔던 삶’이 적나라하게 조명되고 있다. 그 가운데 교사들을 향한 여러 종류의 갑질 사례가 보도되었고, 카이스트 박사 출신의 부모라든가 왕의 DNA를 운운한 공무원이라든가 하는 인물들이 사회적 질타를 받기도 했다.그 계기는 너무 극단적이고 마음 아픈 누군가의 ‘죽음’이었지만, 그동안 사회의 이면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