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쉼을 하다가 묵뫼인 걸 알았다숲에 갇혀있는 소복한 슬픔자손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인 듯 팽개쳐진무덤을 나무들이 그늘로 다독이고 있다발아래 갈참나무 한 그루를 키우며군데군데 녹태가 끼어있는 무덤은천천히 숲으로 돌아가는 중이다벼슬은커녕 가난의 업적밖에 남긴 것이 없는아버지처럼, 무덤도 범부였을까그 흔한 비석 하나 갖지 못하고제수를 차려 올릴 상석도 없다한도 슬픔도 표식 없이 다 묻어버린 무덤은격식이 없어 차라리 편안하다죽어서도 지킬 것이 많은 탓인지문지기를 세워놓고 맹수를 기르는 무덤에서는사람도 고라니도 쉬어가지 못한다낮아지고 낮아
-양수리 느티나무 앞 벤치서 만남에 대한 단상우리들 만남엔남과 북이 따로 없다금강산서그리고 설악산서,태백산서흘러,흘러온 물은 여기서 만난다두물머리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원대한 물 마당 화합의 장을 이루는 곳강물이 앞서거니뒤서거니 다투지 않음은지혜로이 배워야 할 평화의 교범(敎範)상선약수(上善若水)도덕경 그 고금의 진리를 따라서울의 젖줄 한강에 이르러 바다로 간다해불양수(海不讓水)내가 되어 바다로 가는 이곳에서떠나가는 물결을 하염없는 시선으로400년 느티나무기다림 나룻배와 천년 고인돌진정한 통일의 물길 기다리고 있을거이!고목(古木)의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삭감했던 원전 생태계 복원 예산 1813억7300만 원 전액이 우여곡절 끝에 정부 예산에 반영됐다. 민주당이 당초 정부가 국정과제로 정한 원전 사업 예산을 ‘삭감’이 아니라 아예 ‘0원’으로 빗금을 쳐버렸던 예산이다. 이 때문에 경북도가 추진하려던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등 차세대원자력 산업생태계 조성의 계획도 불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었다.다행히 국민의힘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원자력 관련 내년 정부 예산이 반영돼 경북의 차세대 원자력 산업
‘청룡의 해’를 맞아 갑진년 일출과 함께 경북 곳곳에서 다양한 해넘이와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경북도에 따르면 도내 21개 시·군의 24곳에서 해넘이·해맞이 행사가 진행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4년 만에 정상 개최되는 만큼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해맞이 프로그램이 준비 중이다.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맞이 축제 ‘제26회 호미곶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오는 12월 31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 열린다.‘용의 승천, 함께 비상하는 환동해 중심도시 포항’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예정돼있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23일 화재가 발생해 고로(용광로) 가동이 한때 중단됐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 침수 피해로 54년 만에 처음으로 고로 가동이 중단됐다. 복구 후 1년여 만에 화재로 잠시나마 고로 가동이 다시 멈춰 섰다. 50년 넘게 한 번도 고로 가동이 중단되지 않았던 제철소의 고로 가동이 최근 2년 새 두 번이나 멈춰 선 것은 심각한 문제다.포스코 포항제철소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국가 기간산업이자 세계 최고의 철강 회사 아닌가. 지난해 수해 때 온 국민이 가슴을 졸여야 했다. 국내 조선·자동차·기계·건설업에 기초 소
발신지를 잃어버린 편지처럼 쉽게 버릴 수도, 그렇다고 간직할 수도 없는 난감한 일이 있을까. 너에게서 온 메시지는 여전히 메신저창에서 떠돌고, 나는 네게 아무런 답장도 하지 못한다. 이미 납부되었지만, 테이블 위에 오래도록 방치된 영수증처럼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멀어져 완전히 쓸모없어질 날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강줄기처럼 침잠해 있던 생각들이 계속 흘러들어 끝이 나지 않을 테니까.*너에게서 메시지가 온 건 입사 이래로 처음 지각하던 날의 일이었다. 회사 가는 길은 축구장만 한 양
포항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포항체인지업그라운드에서 2023 비즈니스도시 포럼이 20일 열렸다. ‘포항의 미래-기업도시·항만도시·대학도시’를 대주제로 국제적 사례분석과 정책 아이디어 제시, 대안 도출을 위한 토론 등 뜻깊은 논의의 장이었다.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기조 강연에서 포항시와 포스코, 포스텍을 ‘포씨 삼형제’라는 친밀감 있는 상징어로 비유하며 지자체와 기업, 대학이 힘을 합쳐 포항을 과학기술도시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급속한 인구감소와 국가소멸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한국전 당시 최후의 보루였던 포항이 지방 붕괴의
행정안전부가 지난 18일 16개 부처 합동으로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제1차 인구감소지역 대응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89개 인구감소지역과 이를 관할하는 11개 시·도가 상향식으로 수립했다. 윤석열 정부의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최초의 범정부 종합계획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이 계획을 통해 비전과 목표 달성을 위해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과 산업 진흥, 정주 여건 조성 지원, 생활인구 유입과 활성화 등 3대 전략, 16대 추진과제, 43개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구 감
겨우내 잠자던 땅이 부스스 깨어나는 기미가 보인다. 한 노인이 길가의 공터에서 흙을 뒤적이고 있다. 아마 흙을 깨우려는가 보다. 농로를 따라 산책하는 나는 옷깃을 여미는데, 일하는 노인은 겉옷을 벗어부쳤다. 아직은 바람 끝이 차가운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구부리고 있는 노인의 등에서도 봄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도시에 몸을 붙이고 살면서도 작물을 가꾸려면 요맘때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도로 건너편에 아파트 단지가 버티고 있고, 노인이 일하고 있는 이곳 주변에는 제법 넓은 과수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틈
그분은 내게 긍정을 팔러 온다. 한참동안 보이지 않을 때면 자꾸만 궁금하고 아쉬워진다. 예쁘고 젊은 분도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이가 칠십이라 하더니 며칠 전에는 팔십이라 하여 놀라고 말았다. 십년이란 세월이 빠르게도 지나갔던 것이다. 그래도 내 눈에는 여전히 칠순의 나이를 지니셨다.리어카에는 손수 농사지으신 채소를 싣고 오신다. 흔한 푸성귀야말로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구입하기 쉽지만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자연스레 사게 된다. 덤으로 마루에 걸터앉게 하신 후 커피까지 대접하면서 얘기장단을 맞춘다. 나도 모르게 보따리를 풀 듯 쏟
지방시대위원회가 18일 수도권 기업 지방 이전 보조금 지급 한도를 최대 200억 원까지 높이는 내용의 ‘인구감소지역 대응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첫 종합계획이다. 이번 종합 계획의 핵심은 지방 이전 기업에 종전 최대 100억 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을 2배 확대한 것이다. 정부가 지역의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기업의 이전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역대 정부가 지역의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온갖 정책을 펴 왔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수도권 집중과 급속한 고령화가 원인이라
경북도가 조성하는 하회과학자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회과학자마을은 급증하는 은퇴 과학자들이 살 수 있는 시니어타운을 만들어 안동의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 조성된다. 입주하는 과학자들은 경북연구원의 연구원이나 지역대학 석좌교수로 위촉해 국책과제의 기획, 기업과 협업한 응용 연구, 청년과 함께하는 기술 창업 등 각 전문 분야별로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하회과학자마을의 1, 2호 입주자로 박원석 전 원자력연구원장과 김무환 포스텍 특훈교수가 선정됐다.최근 경기도 화성에 정부 주도의 첫 시니어타운 조성 계획이 발표됐다. 정부가 고령
하늘로 이르는 길은 직선에만 있지 않고 곡선에도 있음을, 휘어지고 뒤틀리지 않으면 서로에게 기댈 수 없다는 것을 맹종죽림의 나무들은 알고 있다. 올려다본 하늘이 댓잎으로 물들어 있다. 대숲에 한 줄기 바람이 일면 소리가 먼저 번진다. 대숲에는 대나무가 밀어 올린 시간이 있다. 자로 잰 듯 정교한 눈금들, 마디와 마디에는 한 줌 햇빛과 달빛, 한 모금의 이슬을 나누고 저마다의 별을 바라본 기억들이 남아있으리라.무한 직립의 대나무들 사이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온 힘을 다해 대나무를 끌어안고 있다. 댓잎 우는 소리가 소나무의 귀를 간
동네 어귀에 둥그런 바위 하나가 놓였다. 바위는 고임돌조차 사라진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죽은 사람의 무덤이지만 이제와 그리 여기는 이는 드물다. 다만 등에 뚜렷이 새겨진 성혈로 여느 바위와는 다름을 짐작할 뿐이다.사람은 누구나 한 권의 인생 책을 쓴다. 얇거나 두껍거나 두께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마침표가 찍힌다. 마침표가 찍히기까지 책은 수만 가지 이야기를 품는다. 때로는 따옴표로 강조를 하거나 반복을 하여도 넘침이 없다. 울고 웃고 가슴을 파며 살아도 다르지 않다. 한 번에 찍거나 미진하여 망설여도 마찬가지다. 어느
입만 열면 ‘민생’을 얘기하는 국회가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사 기업의 임직원이었다면 업무 태만으로 벌써 내쳐졌을 일이다. 월성원전과 한울원전 등 국내 가동 원자력발전소마다 사용후핵연료가 턱밑까지 쌓여 있다. 임시 저장시설의 포화 시점이 가까워졌는데도 여야는 정쟁으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저장시설을 마련할 근거법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 처리를 미루고 있다.지난 14일 경주시와 경주시원전범대책위원회가 국회에 계류 중인 ‘고준위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또다시 촉구했다. 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순간, 무언가 핑그르르 날아올랐다. 나방이었다. 기옥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방은 그 사이 거실을 가로질러 빛 속으로 빨려가듯 텔레비전 화면 위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현관 벽장에서 에프킬라를 꺼내왔다. 나방을 향해 버튼을 힘껏 눌렀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분사되는 가스는 얼마 되지 않았다. 되살아난 나방은 천장 높이 날아올라 사라졌다. 그녀는 눈먼 사람처럼 팔을 내둘렀다. 깨금발로 뛰며 휘젓던 손끝에 형광등 갓이 스치면서 나방이 드러났다. 나방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부엌으로 날아가 냉장고에 앉았다. 마치
대구·경북에서 잇따라 마약사범이 검거되고 있다.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 클럽에서 마약 유통 및 투약 혐의(마약류 관리법 위반)로 20대 12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지난 8일에는 5700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10㎏ 이상이나 되는 필로폰을 유아용품으로 위장, 태국에서 국내로 몰래 들여온 일당이 검찰과 태국마약청의 공조 수사로 전원 검거돼 구속됐다. 지난 6월에도 대구 동성로 한복판에서 마약을 사거나 경찰 감시망을 피해 텔레그램에서 마약을 판 13명이 잇따라 검거됐다. 대구경찰청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단 사흘 동
어제 일 같다. 생각해 보면 까마득한데 기억은 갓 잡은 생선처럼 팔팔하다. 20년 전, 주인은 우유 아줌마에게 단돈 6만 원에 나를 샀다. 우유를 먹는다는 조건이었다. 값이 싸긴 해도 명색이 ‘삼천리자전거’ 라는 족보를 가진, 자전거 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족속이다. 주인은 나에게 ‘청룡靑龍’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싱싱한 푸른 몸을 칭찬해 주면서 승천하는 청룡처럼 멋지게 살라고 했다. 그날은 죽어도 잊지 못한다.나는 늘 문밖에서 대기한다. 주인은 집을 드나들 때마다 내 이름을 불러준다. “청룡아, 안녕! 잘 있었어.”하며 안부
시골장터에서 기다란 나무 밀대를 본적이 있다. 앞치마를 정갈하게 두른 중년 아낙이 뭉쳐진 반죽을 밀대로 넓게 펴고 있었다. 밀대와 반죽 사이가 들러붙지 않게 밀가루를 솔솔 뿌려가며 미는 모습이 참 반가웠다. 아낙의 두 팔에 힘이 실리자 넓게 펼쳐진 반죽은 밀대에 말려 겹겹이 포개졌고, 그 행위는 몇 번 더 되풀이됐다. 밀대에 말렸다 펴길 반복한 반대기는 만두피처럼 엷어져갔다. 뭔가에 홀린 듯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는 임시로 마련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테이블은 이미 손님들로 채워져 북적였다. 호객을 위한 장사치들의 고함소리와
국립 경북대와 금오공대의 통합이 무산됐다. 양 대학이 물밑에서 원론적 통합논의를 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북대 재학생들이 크게 반발했다. 학생들은 통합 논의 과정에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된 점과 통합이 학교 평판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다. 경북대 학생들은 본관 건물 앞에 학과 점퍼를 벗어 쌓고, 근조 화환을 세우기도 했다.대학 측으로서는 지방대학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 정부가 지원하기 위해 선정하는 ‘글로컬 대학 30’에 경북대가 포함되지 못해 조급한 마음이 컸을 것이다. 지난 6월에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