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드물게 작은 기쁨들을 툭툭 던지는 이상한 장난을 친다. 지극히 평범하게 저물어가던 하루였는데 저녁 무렵에 날아든 당선 문자 하나. 그 파문이 예사롭지 않다. 한참이 지나도록 파문이 가라앉지 않아 낮에 걸었던 아라뱃길을 다시 걸으러 밤길을 나선다. 오늘은 내가 이 세상에 온 지 19,993일째. 딱 일주일 뒤에는 자그마치 20,000번째의 오늘을 살고 있을 테지만 내게 세상은 여전히 난해하고 까다롭다.오늘 하루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도록 설정되었는지 궁금해 오늘의 운세를 검색해본다. ‘설상가상’이라는 총운. 운세도 일기예보만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지배로 긴 악몽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언제쯤이면 우리의 입에서 마스크가 사라질까를 생각하다 광합성을 위해 나무들도 마스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몄다.마스크를 쓴 채 또다시 가을이 왔다.가을이면 스스로 벗는 저 나뭇잎 마스크처럼 우리의 입에서도 마스크가 내려지기를 바라는 중에 청송과 글의 인연으로 맺어진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비록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글 속에서의 자유를 누리는 기회와 또 기쁨까지 주신 문예 대전 관계자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드린다.
브래드포트의 폐저택에 도착했을 때 현관은 반쯤 열려 있는 채였다. 정원이 앞뒤로 뻗은 이 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꽤나 부유한 가족이 살았을 것처럼 번듯한 건물이었지만, 오래간 방치된 세월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갈라진 벽 틈에선 이끼가 돋아났고 마당의 잡초는 사람의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아귀를 벌린 어둠 속은 그저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지였음에도 릴리는 회심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우리를 인도한 건 앱스토어에서 구매한 네비게이션 어플이었다. 그 이름이… 그러니까“란더노티카?”“그래.
오만함이 드러날까 걱정돼 한참을 펜만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제바닥엔 교만이란 녀석이 깔려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고 싶었고, 유명해지고 싶었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놈은 공상 같은 희망을 먹어치우기 바빴습니다. 무서울 만큼이나 단호한 태도로 저의 앞을 가로막았고, 교묘하거나 절묘하거나 약삭빨라 보이는 모든 선택을 한 순간에 어그러뜨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에 남은 건 가장 실현되지 않을 것만 같은 진실함이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흐릿한 태양을 올려다보며 저는 고결한 체념을 따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얼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자리 잡은 ‘제8회 경북일보 청송객주 문학대전’에서 단편소설 부문 방성식(경기 용인)씨의 ‘란더노티카’가 대상을 차지했다.경북일보문학대전운영위원회는 최근 국내외에서 응모된 총 3211편의 작품을 심사한 결과, 대상과 금·은·동·장려상에 단편소설 부문 12명, 수필 부문 19명, 시 부문 18명과 청송군 문인들을 위해 제정된 특별상 7명 등 모두 56명의 당선작을 선정했다고 17일 밝혔다.문학대전은 경북일보가 국내외에 활동하는 문인 및 문학 지망생 등을 대상으로 문학상 공모전 및 학술포럼을 개최해 창작의욕
떨켜가 드디어 잎자루의 물구멍을 닫아버렸다. 체념한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별리의 가을이 못내 아쉬워 흘리는 나무의 눈물이다. 열정의 구멍이 스르르 닫혀버린 내 몸에서 떨어진 잎들이 생의 겨울이 올까 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의지, 도전, 끈기, 인내, 용기, 목표 그리고 믿음의 잎들.결기의 겨울을 건너기 위해 잎자루를 야멸치게 내치는 수문장, 떨켜. 떨켜가 수문의 기척을 낼 때까지 봄은 준산빙벽을 오르내리며 오기와 극기로 심신을 단련시킨다. 눈속의 노란복수초와 매화의 안위를 살피는 눈, 동장군보다 매서운 봄이다. 내 열정의 구멍
첫걸음마를 떼듯 법원 계단을 내려오는 말남의 호흡이 거칠었다. 주름진 오른손에 꼭 쥐고 있는 종이가 걸음에 맞추어 팔랑거렸다. 법원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초조하게 만드는 묘한 중압감이 있어서, 말남은 내가 몰라서 지은 죄가 있으면 어떡하지 고민하며 몇십 년에 걸친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았다. 발목에 추를 단 듯,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종이를 쥐지 않은 손으로는 무릎을 누르며, 남의 다리인 양 건조하게 제 발끝을 응시했다. 마치 짐짝이나 되는 듯 다리를 번갈아 끌어 내리듯 걸었다. 세월은 건조해서 무
참, 얼척 없네!사내가 문을 열자마자 탄식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여자와 내가 저녁을 먹고 있는 광경이 사내에게 가관인 모양이었다. 여자는 거실 바닥에 앉아서 밥을 퍼먹고 있고 나는 목에 손수건까지 두르고 떡하니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내는 기가막히는지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여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자는 입가에 온통 밥풀이며 양념을 묻힌 채 사내를 향해 헤벌쭉이 웃고 있었다. 사내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꽝 닫았다. 그때부터 사내는 나를 얼척이라 불렀다.나는 태어난 지 석 달 정도 되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여자의 시선을 피했다. 눈을 감고 자는 체 하는 것보다는 더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여자는 뒷좌석으로 가지 않고 나를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버스가 속력을 높이자 뭐라고 구시렁거리며 뒷좌석으로 갔다. 나는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젠장! 빈자리가 많았다. 어림잡아 좌석의 절반은 비어있었다. 여자는 중간쯤의 자리에 앉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살짝 화가 났다.서른다섯인 내가 운전석 바로 뒤의 노약자석에 앉은 것은 물론 잘못이다. 그러나 여자도 이제 겨우 50대 중반
검은 맨홀 구멍 속에는 또 하나의 검은 입이 있다. 겨우 내 몸 하나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입구를 통과하고 나면 마주치는 검은 그림자가 있다. 등줄기로는 땀이 뚝뚝 물줄기를 만들며 흘러내리고 있다. 내 몸의 땀방울이 물속으로 떨어져 동심원을 일으키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발 한발 사다리를 타고 바닥을 향해서 내려간다. 화공 약품이 처리된 콘크리트의 바닥에 장화의 끝이 닿자마자 습한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겹겹으로 얼굴에 씌운 검은 공업용 마스크도 이제는 소용이 없다. 오랫동안 햇빛을 차단당한 물탱크 속은 오래된 시신을
하늘이 너무 예쁘다. 구름 꽃이 피어있다. 드라이브라도 가야겠다. 코로나19 종식 때까진 사회와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이다. 인적이 드문 곳을 생각하다보니 사찰이 떠올랐다. 산속에 있으니 공기도 좋겠다, 초록의 푸새도 실컷 볼 수 있겠다, 9살 딸아이와 나섰다. 의성에 있는 고운사로 목적지를 정했다. 지난해, 가을 문학기행으로 다녀온 곳이다. 문학기행 복습도 할 겸 자연 속을 아이와 걷고 싶다.고운사 입구까지 무성한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아이는 초록 터널을 지나며‘와아’감탄의 소리를 지른다. 주차장엔 차가 없다. 아주 조용
기억을 짓는다 오래된 숨소리를 허물고어머니가 살던, 집터를들여다보는 마흔의 어머니아직 사그라지지 않은분화구처럼 솟구치는 홧병이무너진 벽틈에 숨어 있다변하거나 바뀌지 않은무수히 숨겼을 슬픔이 주춧돌로 앉아 있다매만지고 문질러도 따스한 통증이 살아있는 집불편한 어제와 불안한 경계는새로운 관절로 일어선다나무의 결이 살아나가지마다 잎을 틔우던 당신의 기억으로뿌리를 마주하겠지새집으로 잔 뿌리가 살아간다뿌리 없는 뿌리 깊은 빈 집
무게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누구나 같은 추를 가지고 갖가지 요리를 한다삐뚤삐뚤 살아도 똑 같은 시계 밥을 먹으니불평은 꿀꺽 삼킬 일이다낙엽 하나가 내 앞까지 오기위해일 년을 굴러 왔다지입가에는 슬며시 가을 햇살 비추고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목에서 나는 팬을 꺼낸다각본 속 분주한 수많은 사람들시계처럼 또렷한 이정표 하나 받으며한편의 시를 쓸 것이다 티브이 앞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연기를 보느니내 인생의 획이 될 만한 글을 적으리라시계는 같은 조건이라고시간은 같은 조건이기에
사월과 이음새 없이 몸 바꾼 바람이혼자 사랑니 앓이 하느라 미열에 저려오므렸던 손을 펴자꽃 진 산수유 가지에서 메아리로 머물렀던손발 찬 별자리들이눈부신 인연들로 깨어난다서로 볼 비비며 푸른 지문을 새겨가는 청보리 이삭에서몇 날, 그윽해진 인연들을물푸레나무 물관 속 윤기 나는 기포로아카시아 달아오른 향으로다정한 이름들에게 퍼 나르는 오월청춘의 마지막 빛 같은 하얀 찔레순,적막을 쪼는 산 뻐꾸기 기다림,윤사월 풀어져 맺힌 이팝나무 시나위 가락을푸른 역사의 탄성으로 안은 오월은싱싱한 그늘에술 익는 달의 문장으로 인연을 드리우며아름다운 수
늦은 봄이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할 즈음산골짜기 앞마당에 감꽃이 흐드러지게 떨어졌어.떨떠름 아린 맛이 마당가득 스며들 때살기 싫다고 집을 떠난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호미처럼 등이 굽은 할머니는고샅길 고추밭을 오르다가할미도 없는 사람 있느니라.아래를 내려 보며 살아야 속이 편안하느니라.집나간 며느리의 부끄러움을호미자루마다 토해내면열두 살 어린 내 마음은 고추처럼 매워졌어.할머니의 억센 손바닥에서호미를 놓아 버리고 누워 계실 때온 몸은 생기를 잃은 시들은 감꽃이었어가슴팍을 옴팡 썩힌 앞마당 감나무처럼집 나간 며느리, 가슴에서 하나, 둘
지난 겨울은 우울한 안개여서푸른 하늘은 다시는 오지 않을 편지인 줄 알았다.그래도 봄은 한참을 머뭇하다모두가 떠나던 길을 거스르며 낯선 각도로 다가왔다.잊고 있었던 볕이 지던 그 길이었다.난 한참을 고요했다.마른 가지에 붙어 있던 세찬 겨울을 보내기까지그늘진 철길은 끝없이 길었고어깨가 부딪치는 길에서도 산다는 건 외로웠다.가슴에서 얼굴로 울컥하고 솟구치는 습한 뜨거움그때서야 새벽의 모습으로 입춘이 왔다.하늘이 내어준 햇살 고운 아침머리를 씻고 붓을 꺼내 든다.내 아이에게 우리의 끝은 끝내 비참하지 않으리라는 약속보이리라.굵은 붓 뜨
베란다 구석에는 하마가 살고 있다작은 눈을 자주 껌벅거리는 것은 복종이다검지-손가락 지문에 순응하며 살아 온 그는식습관이 까다롭지 않다깔깔거리던 아이의 바짓단에 묻은 진흙 맛을 보고온종일 벽돌모서리 밟고 다니던 작업화속의 매콤함과햇볕에 그을려 말라붙은 셔츠속의 소금을 넣는 일이한결같은 맛을 보장하는 여주인의 단골 조리법이다맛을 결정하는 것이 소금의 농도라지만노후한 혀가 무감해져 입맛을 잃어갈 때면아랫배에서는 소화하지 못한 빈 월급봉투가발견되기도 했다쿨렁 쿨렁, 덜덜덜 수 만 번도 더 돌았을 노동엔바람개비에서 빠져나간 녹슨 핀의 흔적
벗어놓은 허물들이 전혀 허물이 되지 않는 장마당 한켠, 갈매 하늘 같은 다듬돌이 묵언 수행하듯 앉아있다. 늙은 할배의 좌판에는 시간의 저쪽에서 모여든 잡다한 물건들이 환생이라도 하려는 듯 눈을 반짝인다. 벼룩시장의 가판대에서 청석의 다듬돌을 만나면서 우물 같은 상념이 두런거리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나는 열 두어 살의 계집애 신이 내렸는지 갑자기 혀가 짧아진다. “옴마야 할배야 이 다듬돌 얼마야?” 어느새 유년의 기와집에 선다.‘고뿔도 안 걸릴 년 서방 잡아 처먹고도 입맛도 안 다신 년. 방망이질 소리가 접점을 찍는다. 할매는
소리를 들으면 색깔이 보인다. 내 기억 속에는 많은 소리들이 저장되어 있다. 소리들은 그들을 탄생시킨 배경을 가지고 있고 배경은 색깔로 내 기억 속에 이미지화 되어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들여다보면 소리는 그가 가진 빛깔의 색채로 펼쳐진다.빗소리는 황토색깔이다. 봄비치고는 제법 굵은 비가 흙냄새를 날리며 황토 마당을 적신다. 꼬마는 큰형의 커다란 군용 우의를 머리 위로 덮어쓰고 비 오는 마당 가운데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꼬마만의 독특한 빗소리 즐기기다. 우의 자락이 사방으로 비에 젖은 땅바닥에 쫙 깔려 바깥 세계와 완전히 밀폐되면
뱃사람들의 술추렴은 닻을 내리자마자 이어진다. 오촌 아제도 고등어 한 손 들고 돼지국밥집에 앉았다. 주인 아지매 인심 한번 후하다. 해삼 두 토막 덤으로 내주며 긴 의자를 닦아준다. 아제는 오늘도 순정(純情) 맡기고 막걸리 두 병 외상 긋는다. 선창에 앉아 그물코를 꿰매던 아버지도 술을 마셨다. 아버지의 노래는 한이 서린 듯했고, 뜻도 모르는 가사는 눈물이 나게 했다.항구는 청춘을 저당 잡힌 어부들의 전당포였다. 어류 작황이 예전만 못하다며 곳곳이 생인손 앓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 속에서 사라진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선원마저 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