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의 황룡사지는 쓸쓸하여 좋다. 마음의 빈자리처럼 공터가 주는 적막감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한없는 적요가 가을 햇살 아래 탑처럼 쌓이고 있다. 여백이 있는 그림처럼 절이 사라지고 없는 절터는 스스로를 비움으로서 바깥의 것들을 안으로 불러들인다. 무한천공 아래 우뚝 솟아 있었을 구층 목탑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멀리 송화산 너머로 넘어가는 가을햇살이 하늘을 물들이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도 이 곳이다. 들녘을 지나오는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어 좋고, 사방이 열려 있어 숨통이 트이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
‘50갑의 성냥을 만들 정도의 인, 못 한개에 해당하는 철분,딱총의 화약종이에 칠할 만큼의 칼륨, 닭장 하나쯤은 새햐얗게 칠할 정도의 석회’. 미다스 데커스의 ‘시간의 이빨’에 나오는 얘기다. 사람이 살다 간 흔적을 어찌 화학적 질량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마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주어진 시간 속에 살다 가지만 어떤 이는 누구나 흠모하는 일생을 살다 가고 또 어떤 이는 잊고 싶은 존재로 살다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살아서 악역을 많이 했다면, 나쁜 기억을 지닌 채 오래 기억되기보다 차라리 빨리 잊혀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청도 가는 길은 온통 초록 물결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운문댐이 나오고, 칡넝쿨 우거진 길을 돌아들면 우뚝 솟은 산과 산 사이에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경주에서 청도까지 불과 한 시간 반 남짓한 거리다. 그런데 머릿속 지도는 줄곧 먼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길 가에 즐비한 감나무 밭과 대추나무 밭이 청도에 온 것을 실감케 한다. 시골학교가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칠 때면 절로 고개가 돌아가곤 한다. 한 번 쯤 다녀가고 싶고, 근무하고 싶은 곳이다. 청도는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답고 입 안에 싱싱함이 괴어오르...
서천 강변에 억새밭이 만들어졌다. 올 가을이면 경주 형산강변은 억새꽃 물결을 이루리라. 이른 봄 꽃샘추위 속에 모내기를 하듯 풀뿌리를 옮겨 심어놓았는데, 아직 철이 일러 이제 겨우 해묵은 풀대 사이로 파란 새순이 나오고 있다. 푸르게 변한 모습에 모두가 억새풀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서보니 다른 풀들이 그 사이에서 바쁘게 자라고 있다. 억새풀이 쑥쑥 자라 키를 덮기 전에 저 풀들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길 것이다. 명아주, 닭의장풀, 냉이꽃, 유채꽃까지 얼굴도 다양하다. 누가 가꾸고 돌보지 않아도 다들 살아가는 모습이 ...
꽃 이름이 참 예쁘다. 이름만 들어도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줄 것만 같다. 생김이 꽃 이름처럼 화사하지는 않지만 수수해서 아름답다. 잎 모양이 클로버처럼 생겼는데, 때가 되면 하염없이 연보랏빛 자잘한 꽃을 피워 기쁨을 준다. 꽃이 청초하여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한적한 시골길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화분을 들고 등장하자 남편은 마뜩찮은 눈빛을 보낸다. ‘또, 애꿎은 생명 죽이려고?’ 하는 빛이 역력하다. 엄마가 키우던 화분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하면서 키울 거라고 못을 박는다. 한 마디 더 거들면 눈물이 뚝뚝 흘러내릴 ...
도심을 벗어나니 하얀 감자 꽃이 눈에 들어온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내게 마늘 몇 고랑과 감자 몇 고랑이 집 가까이에 있는 풍경은 거의 환상적이다. 경주 남산이 눈앞에 확 펼쳐진 동네에 집터를 마련한 동료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남쪽으론 산자락에서 흘러내려온 봇도랑물이 졸졸졸 앞마당을 돌아 흐른다. 탁 트인 들녘의 벼가 싱그러움을 더하니 절로 생기가 돋는다. 이 곳에 집터를 마련한 까닭도 남산 때문이라니, 그 마음이 내 마음 같아 내 집이 아니라도 즐겁다. 자주 놀러와 내 집처럼 머물다 가면 될 터이니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내 고향에서는 가까운 이웃 아저씨를 아재라고 부른다. 척간이 걸리기도 하고 먼 친척뻘이 되기도 하는 낯설지 않은 호칭이다. 아재를 아저씨라고 부르면 그 어감 때문에 어쩐지 남처럼 느껴진다. 아재는 결혼을 했건 미혼이건 상관없이 붙여지는 호칭이다. 그런데 아저씨보다는 어쩐지 좀 친근하고 마음을 터놓고 지내어도 허물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아재가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풀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무논이나 못둑 같은 습기 찬 곳에서 노란 미나리아재비꽃을 볼 수 있다. 미나리와는 생긴 모습이 많이 다른데 물을 좋...
우리 집엔 냄비가 여러 개 있다. 그 중에 으뜸은 단연 양은 냄비다. 우선 가벼워서 좋고 무쇠 솥처럼 물을 끓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서 좋다. 남들은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다고 흠을 잡지만 나는 양은 냄비가 좋다. 양은냄비에는 서민적인 맛이 배어있다. 억눌러지고 찌그러진 우리네 삶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같이 우그러질 줄도 알고 찌그러질 줄도 아는 그 속성이 좋다. 월드컵 열기 때문에 온 나라에 있는 냄비란 냄비가 다 들썩거렸다. 쉽게 열 받고 끓어오를 줄 아는 냄비가 그 근성을 제대로 발휘했다. 독일제, 프...
수많은 꽃들이 배턴을 주고받듯이 피고진다. 피는 중에도 지는 꽃이 있고, 지는 중에도 피는 꽃이 있다. 우리네 사는 모습처럼 기쁨과 슬픔이 교직한다. 한 그루 꽃나무 안에도 나고 지는 꽃이 공존하여 바라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 꽃 중에도 선택 사양을 하듯이 안갖춘꽃이 있고, 부족함이 없을 듯 다 갖춘꽃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곡식 종류가 대개 안갖춘꽃에서 얻어진 열매라는 사실이다. 다 갖춘꽃에서 얻은 열매는 대부분 후식으로 쓰이는 과일이거나 먹어도 안 먹어도 될 그런 열매들이 많다. 벼와 보리, 수수와 옥수수, 조,...
봄이 되면서 베란다의 양파 자루가 수상하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싹을 내민다. 모양새가 파처럼 생긴 게 잘도 자란다. 이름에도 ‘파’자가 들어가 있으니 파가 맞긴 맞다. 알토란처럼 볼록하던 양파가 하루가 다르게 홀쭉해진다. 낙타가 물을 저장하듯이 양분을 저장해 둔 양파의 저장창고에서 지금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 물 한 모금 안 먹고도 제 몸의 물기를 말려가며 싹을 내미는 기세가 맹렬하다. 양파에게서 모성이 느껴진다. 입덧을 하는 새댁처럼 보기가 애처롭다. 양파는 무엇엔가 몰입해 있는 듯하다. 생존본능이랄까? 달력을 걸...
2006년 스승의 날은 유난히도 말들이 많아 학생을 학교에 출입금지 시키고 교사들은 자가연수원을 내고 집에서 연수를 했다. 어느 저명인사는 ‘스승’이라는 용어가 혐오스러우니 사용을 자제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교원단체에서 교사의 명예훼손이라고 소송을 당하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스승이든, 교사든, 노동자든, 지식전달 기능사든 왜 이렇게 우리는 소모적인 논쟁에 연연하는 분위기로 스승의 날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기보다 우리사회가 교직에 대한 인식의 근저에 그럴 수밖에 ...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귀가 아프다. 이러다 난청이 될 것 같다. 복도에선 배식당번들과 아이들의 신경전이 이어진다. 맛있는 것이 나오면 개수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먼저 배식 받은 아이들은 후딱 먹고 배식이 다 끝나기도 전에 추가 배식을 받으러 나온다. 도시락 뚜껑을 열며 ‘오늘 반찬은 무엇일까?’ 기대하던 그 점심시간은 아니다. 일년 내내 장아찌나 김치반찬으로 때웠다는 궁기어린 시대의 애환이 담긴 도시락도 아니다. 도시락 못 사와서 두레박의 우물물로 배를 채웠다는, 돌아보면 배고픔도 따뜻한 추억이 되는 그런 점...
봄비가 다녀가도 등꽃 향기가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에겐가 그리움으로 다가서고 싶은 탓이리라. 누구나 꽃 아닌 사람이 없고, 향기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유독 봄이면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봄 내내 가슴으로 들어와 산나물 향기로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고, 모란꽃처럼 함빡 웃음을 머금었다 사라지는 얼굴도 있다. 바닥을 기어가는 등나무도 지주를 세워주면 그늘을 드리우고 향기를 드리우는 쉼터가 된다. 아이들 속에도 등나무처럼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신체적인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
입안이 소태같이 쓰다. 소태는 소의 코뚜레를 만드는 나무인데, 그 맛이 어찌나 쓴지 소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송아지 엉덩이에 뿔나기 전에 아버지는 소태나무 가지를 휘어 코뚜레를 만들어 끼웠다. 어미 소가 말뚝에 묶인 채 외양간과 마당을 오갈 때, 송아지는 아랫집 헛간 방에도 들어가 있고, 뒷집에도 또래를 찾아 놀러가곤 했는데, 그 자유도 이젠 끝이다. 그야말로 코뚜레를 꿰면 말뚝에 묶인 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못된 망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하더니, 고등학생 딸아이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엄마 몰래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
미국 프로 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의 나라를 방문하여 환대를 받고 떠났다. 단지 얼굴 빛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그는 스포츠를 통해 자신을 극복했다. 어머니의 격려 말씀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는 그의 얘기 속에, 외롭고 먼 길을 달려온 그의 투지와 의지가 묻어난다. 인간승리를 했기 때문에 받는 찬사며 환대에 그는 많은 말을 생략한 채 환한 미소로 응답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많은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이웃으로 살아가지만, 얼굴빛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이웃으로 받...
나이 많은 교사가 대접받던 시대는 지나갔다. 여교사가 홍일점으로 대접받던 시대도 아니다. 학교 만기로 다른 학교로 전출해야 되는 심정이 착잡하다. 새로 부임한 학교에 모인 얼굴들이 대부분 수굿한 아줌마 선생님이다. 드문드문 새내기들이 밥에 콩처럼 섞여 있을 뿐, 마흔 중반의 나이가 이 학교에선 중간층이다. 물간 생선 같은 얼굴에 화장을 하느라 거울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었고, 고도 비만 판정을 받은 몸에 이 옷 저 옷을 걸치며 모양새를 갖추느라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걸으면 사오십 분 거리인지라, 올 핸 ‘몸을 다지는 ...
삼월엔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던 나무들이 마치 제 이름을 말하듯이 눈을 뜨고 있다. 늦게 눈을 틔운다고 ‘느티’란 이름이 붙었다는 느티나무 주변만 아직 잠잠하다. 아이들도 삼월 한달을 지나며 대부분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알쏭달쏭하던 아이들 이름과 얼굴이 제자리를 잡는다. 꽃눈인지 잎눈인지 알 수 없던 것들도 이젠 색깔을 분명히 한다. 어떤 것은 잎을 먼저 틔우고, 어떤 것은 꽃을 먼저 틔운다. 봄의 나무들은 대부분이 꽃을 먼저 틔운다. 개나리며 진달래, 목련, 산수유, 복사꽃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여린...
지난 달 중순, 경주에서는 보기 드문 함박눈이 내렸다. 아침엔 비가 내리더니 시간이 지나자 간간히 눈도 섞여 내렸다. 1교시 수업이 없어 교무실 창밖을 바라보니, 비보다 눈이 더 많이 내렸다. 결국 오전 10시가 지나서는 본격적인 진눈깨비에서 함박눈이 되어 내렸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감탄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봄날에 보기 드문 광경을 볼 수 있어 행복하였다. 2교시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도 들뜬 마음으로 수곤거리고 설레는 표정으로 밝아 보였다. 난 책을 펼치기도 전에 마음 속으로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관찰해 보며, 수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