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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상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표결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통과되었지만,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그렇지 못하였다. 국회의원의 표결권이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오랜만일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가 정책을 논의·결정하는 과정에 출석하고 표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통해서 국민 대표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회의에 출석하고 표결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이나 국회법 등 관련 법률에서는 국회의원이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 출석하여야 한다는 출석 의무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은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서 표결에 참가할 권리는 있지만, 반드시 표결에 참여할 의무도 없다. 오히려 헌법상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표결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5대 국회부터 제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개원일이 국회의원 임기 첫날로부터 15대 국회는 39일, 16대 3일, 17대 30일, 18대 83일, 19대 27일 등으로 뒤늦어 짐으로써 그 당시 국회의원의 출석 의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출석 의무에 관한 법률 규정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국회법 등 관련 법률에서는 국회의원에게 출석 의무가 있다고 하는 전제하에,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 집회일부터 7일 이내에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 출석하지 아니하거나 의장 또는 위원장의 출석요구서를 받은 후 5일 이내에 출석하지 아니한 때 등 무단으로 결석하는 경우에 징계를 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사실상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 출석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아울러 국회 규칙으로 제정된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서는 국회의원은 청가서나 결석계를 제출한 경우 또는 공식 해외출장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의 각종 회의에 성실히 출석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출석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국회법에서는 이를 위반한 때에는 징계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출석 의무를 강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회의 출석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여러 시민단체나 언론기관에서 국회의원의 출석 횟수 등을 기준으로 의정활동을 감시하거나 검증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에는 당시 야당에서 국회의원의 출석 의무를 강화하기 위하여 본회의와 상임위원회에 출석한 후 절반 이상 이석시 ‘출석 후 이석’으로 분류 공표하고, 국회의원의 청가서 및 결석계의 제출 허가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국회의원 윤리실천규칙’을 제정 발의하기도 하였다.

급기야 제18대 국회개원이 83일이나 지연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하면서 시민단체 구성원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법원은 헌법이나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출석 의무를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원고패소판결을 선고한 경우도 있었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예산으로 세비, 수당뿐 아니라 보좌진의 급여 등으로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이라는 헌법기관이 국민을 위한 기본적 의무인 출석이나 표결조차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국회의원이 출석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시민적 감시를 하고, 회의에 불참할 경우에는 세비나 수당 등의 일부를 감액할 뿐 아니라 심지어 벌금까지 부과하는 국가도 있다고 한다. 이제 국회의원에게 출석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국회에 맡겨 놓기보다는 시민들이 나서서 논의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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