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들고 서 있는 내게

흐르는 어떤 소리도 들을 수가 없어, 네가 물었을 때

물의 가방 열어보일 수가 없었어

나는 지금 숨소리야 차가움이야 한때의 속삭임이야

나는 이제 속도가 없어

너의 등이 차가워졌을 때, 나는 불투명한 세상을

그 가방에 넣었지, 그 후로 꺼내보지 않았어

그때 너는 투명하지 않은 유리였을까

왼쪽 눈이 시려 너를 건너려다 자주 미끄러졌지

녹는 것에 자신 있다는 너에게

나는 아직 얼음이야




감상) 나는 그 때 끝도 없이 미끄러져봤으면 싶었어. 너는 허공처럼 보였으나 빙판이었고 강물처럼 보였으나 딱딱한 절벽이었지. 그래 그래서 나는 미끄러지기로 한 거야 기억해줄래. 어느 날 네 등이 가렵거나 발등이 묵직하거나 괜스레 허리가 뻐근하거나, 그럴 땐 내가 네게로 미끄러지는 중이라는 거.(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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