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이재민 44일째 대피소 생활···이주대상 69% 새 보금자리로
자원봉사자·공무원도 피로 누적···"그래도 힘내서 이재민 도와야죠"

28일 현재 401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는 흥해체육관 주위에 여러 민간단체의 천막이 들어서 있다.
“집보다 좋을 수야 있겠능교? 춥고 무릎도 시리고 여진 나면 깜짝깜짝 놀라고…힘드니더. 그래도 다 무너진 집에 들어가긴 더 무서워서 못 가고 안 있능교.”

28일 낮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이재민 남중기(74) 씨는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15일 포항에서 규모 5.4 강진이 발생한 지 어느덧 44일째로 접어들었다.

이날까지 지진으로 살 집을 잃어 이주대상이 된 549가구 가운데 69%에 해당하는 382가구 973명이 새 보금자리를 구해 이사를 마쳤다.

지진 직후 1천800여 명에 달했던 이재민의 숫자도 그만큼 줄었고,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 수 역시 가장 많을 때에 비해 10분의 1 가량으로 줄었다.

그러나 흥해체육관에는 여전히 401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달하고도 보름 가까이 대피소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재민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이따금 여진이 일어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이들은 말한다.

한동안 잠잠하던 여진은 성탄절인 25일 오후 4시 19분께 비교적 큰 3.5 규모로 다시 시작됐고, 이어 26일과 27일까지 5차례나 이어졌다.

이재민을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나 공무원들의 누적된 피로도 비슷했다.

올해 마지막 해넘이와 새해 첫 해돋이를 대피소에서 맞게 될 이들의 얼굴에서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를 찾기는 어려웠다.

본진 발생 당일부터 흥해체육관에서 활동해 온 포항시자원봉사센터 류미선 사회복지사는 “지금은 자원봉사자가 자원봉사자를 돕는 형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부분 탈진 상태”라면서도 “어디서 새해를 맞든 힘내서 이재민을 도와야죠”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여러 민간단체가 이재민이 먹을 식사를 마련해 꺼내놓았고, 어느덧 얼굴을 익힌 봉사자와 이재민이 먹을 거리와 안부를 함께 주고 받았다.

대한적십자봉사회 포항시협의회 김동수 부회장은 “적십자만 하루 세 끼를 책임지고 있어 지역 봉사자들의 수고가 적지 않지만 이재민분들이 잘 드시는 걸 보면 기분이 참 좋다”고 말했다.
28일 현재 100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는 독도체험연수원은 한산해보였다.
사생활 보호를 위한 텐트를 비롯해 이재민이나 관계자만 체육관에 드나들 수 있도록 통제하고, 어수선하던 천막도 정리하는 등 체육관 안팎에는 40여 일이 지나는 동안 만들어진 질서가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후 100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는 포항시 북구 청하면의 독도체험연수원은 흥해체육관에 비해 한산했다.

드나드는 이도 거의 없었고, 천막의 대열도 없었다.

이 곳의 이재민들이 연수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대부분의 시간을 건물 안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연수원을 찾아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친 단체도 여럿이지만 도심에서 다소 먼 거리에 있는 탓인지 흥해체육관에 비해 관심도는 다소 떨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연수원 건물 입구에는 입주 가능한 주택 현황이나 지원금 안내, 무료로 빨래를 해준다는 포항지역자활센터의 안내문 등이 빼곡해 이곳이 대피소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날 3가구 8명이 새로 살 집을 찾고, 짐을 챙겨 연수원을 떠났다.

“좋다, 잘 지낸다”는 말만 하고 취재를 피한 한 이재민의 바람도 ‘새 보금자리’일 터였다.

김선학 독도체험연수원장은 “연수원이 나름 해돋이 명소다. 이재민들이 연수원 옥상에서 새해 첫 해돋이를 보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묵은 해를 털어버리고 새해의 안녕과 건강을 빌도록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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