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속 서울은 높은 곳 인식···기차 행선지 등 서울기준 사용
포항~영덕 동해선 열차 시간표 통상적 상하 개념과 안 맞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노선을 뜻하는 ‘상행선’과 반대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도로나 선로를 뜻하는 ‘하행선’은 전근대적, 중앙집권적인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레일이 기차 행선지와 관련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코레일이 홈페이지에 제공하는 KTX 열차 시간표에는 하행선과 상행선으로 분리돼 열차의 출발·도착 시간이 적혀 있다.
지난 1월 26일 개통한 포항~영덕 동해선 열차 시간표에도 포항에서 영덕으로 출발할 때 ‘하행’, 영덕에서 포항으로 출발할 때는 ‘상행’으로 표기돼 있다.
코레일에서는 기차의 출발지를 중심으로 상하행선이라 부르고 있다는 해명이지만 통상적인 상하 개념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리적으로 영덕은 포항보다 북쪽에 위치해 이는 방향을 알리는 수단이 아닌 지역 간 상하 관계를 내포하고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다. 통상 서울을 중심으로 서울 방향을 상행, 부산 방향을 하행으로 하는 경우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중앙집권 시대에 형성된 이 같은 용어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행선이나 하행선 대신 서울행, 부산행, 대구행, 포항행, 영덕행 등으로 쓰면 된다는 주장이다.
이상규 경북대 국어국문학 교수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요소에서 비롯돼 상하 종속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언어문화의 잔재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제의 조선 진출을 위한 기반 사업으로 1905년에 개통된 경부선에서 상·하행이 시작됐다”며 “높이의 변화를 일컫는 공간적 개념이 아닌 수평적 개념에서 상행·하행의 사용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이는 수도중심주의에서 기인한 중앙집권의식적 용어가 담고 있는 상·하 개념이어서 생활 속에서 지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향을 나타내기 위해 한글 고유 조사인 ‘~로·~으로’ 등의 사용을 통해 전근대적인 표기법을 개선하는 방안과 이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윤규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한국문학 박사)도 “중앙집권적인 뜻을 담고 있는 상·하행이라는 용어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표기법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00여 년 전 조선 시대에 ‘왕이 계신 곳으로 올라간다’라는 말이 현재 ‘상행’과 일맥상통 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왕이 곧 국가의 주인이던 왕정 국가가 오래전에 끝났다”며 “민주주의 시대에 지역 간 상하관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용어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보다 북쪽에 위치한 파주에서도 서울로 가는 길을 ‘상행선’이라고 한다”며 “이는 오래전부터 이어지던 서울의 지위를 나타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