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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따금 케이블 채널의 외화를 시청하는 편이다. 특히 수사 드라마를 즐겨 본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영어 듣기 공부가 주목적. 한글 자막을 흘깃 읽고는 대사의 흐름에 집중한다. 가벼운 단어로 이뤄진 대화가 의외로 들리지 않는다.

‘CSI:과학수사대’를 모르는 미드 팬은 없을 것이다. 그 제15화 전염병 사태 편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신을 접했다가 격리 수용된 수사관들 얘기다. 한동안 갇혔다가 위험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풀려나오는 장면. 배가 고프다는 남자 요원 그렉의 해방감에 여성인 새라가 말한다.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주전자가 증기차 기지개처럼 쌕쌕거리고, 자갈돌 부딪치듯이 자그락거리는 물소리가 실내를 깨우는 아침.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여는 풍경은 나만의 호사일까. 여느 이웃집 일상도 엇비슷하리라. 독특한 향취와 흑갈색 물빛과 뜨거운 열기로 기운을 북돋운다. 스르르 중독성이라는 경계심을 무장 해제시킨다.

‘지옥처럼 검게, 죽음처럼 강하게, 사랑처럼 달콤하게’는 터키의 오랜 속담. 커피에 관해 회자되는 최고의 글귀다. 물론 18세기 음악가 바흐도 ‘커피 칸타타’로 예찬했다.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머스캣 와인보다 달콤하다고.

커피는 9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빨간 열매를 뜯는 염소를 바라본 목동이 덩달아 따먹으니 원기가 솟았다고 한다. 이윽고 졸음을 쫓는 효과로 수도승이 누렸고, 아라비아 반도로 넘어오면서 애초엔 약제로 취급됐다. 이슬람 사원서 재배된 신비의 열매는 유럽에 수입돼 이교도의 음료로 홀대를 당하다가 널리 퍼졌다. 우리는 조선 말기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처음 마셨다.

자택 근처의 폐철도 부지를 개발한 ‘나루여행길’을 산책하면서, 도시는 공원을 가져야 생명력이 있고 인파가 모인다는 진리를 절감한다. 소비자 잉여 같은 행복감. 도심 속 녹지는 사막의 오아시스에 진배없다.

길공원 초입쯤 설치된 특이한 조형물. 구릿빛 잔들이 가느다란 기둥 마냥 높다랗게 쌓였다.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수를 세어 보니 45개이다. ‘Let’s talk’란 제목으로 우레탄을 입힌 청동 작품. 작가에 의하면, 포항제철소(포스코) 설립 당시 경제적 도움을 받고자 수많은 사람들의 대면을 커피잔으로 형상화했다.

정말이지 절묘한 상상력이자 괜찮은 은유라는 소감이다. 미증유의 대역사를 시작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탁자 위에 찻잔을 놓고 밀담을 나눴을까. 거절과 설득의 눈빛을 수북한 사물로 묘사하다니.

커피의 진정한 매력은 인간들 사이의 연결이 아닐까. 맛도 중요하나 이는 부차적이다. 17세기 유럽에 들어왔을 때 악마의 음료로 배척받은 커피는 소통의 매개가 되면서 살아남았다. 그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생면부지로 만나 인사하고 토론하고 정보를 얻었다. 때론 권력을 씹으면서 정치에 관여했다.

한국은 카페 왕국이자 커피 공화국이라 불린다. 5만여 개 커피숍이 골목거리를 지킨다. 서울은 인구 만 명당 17개 정도 카페가 있어 스타벅스의 고향 시애틀보다 많다니 놀랍다. 작년도 국민 일인당 연간 512잔을 마셨다는 통계도 나왔다.

중장년 세대는 예나 지금이나 음주로 친소 관계를 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 요즈음 상당수 젊은이들은 카페에서 만남을 이룬다. 이성을 가진 진실한 대화는 술이 아니라 차라고 여긴다. 이제 바꿔보는 건 어떨까. 우리 커피 한잔 나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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