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무덤 사이로 붉은 물결 흐드러지면…함께 걸어요

조문국 유적지 전경
의성마늘로 유명하고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의 ‘영미! 영미!’로 더 유명해진 경북 의성은 조용한 농촌도시이지만 의외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과거 삼한시대 때 이 지역에는 작은 소국이었던 조문국이 융성했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던 조문국은 후에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의 막을 내렸다. 그 조문국의 유적지인 고분군이 200여 기가 모여 있는 곳을 사적지(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하고 주변 조경을 멋지게 했다. 의성은 신라에 복속되긴 했지만, 우리 역사의 한 줄기를 담당했던 조문국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전파하는 좋은 관광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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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군 금성면에 위치한 조문국사적지에 5월이면 작약 꽃이 개화를 시작해 장관을 연출한다.
넓은 유적지엔 잔디밭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산책로가 놓여 있다. 나무가 띄엄띄엄 심겨 있어서 한눈에 일대가 조망된다. 고채도의 녹색 잔디밭 사이에 이어지는 저채도의 흙길은 시각적 배색도 잘 돼 있어서 사진이 절로 나올 것이다. 작은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마치 목장 길을 걷는 느낌도 들 것이다. 가까운 시선의 끝은 나지막한 언덕이고, 하늘과의 경계를 잇는 지평선이 눈앞에 그어져 있다. 산책길이 뻗어 나가다가 그 지평선에서 소실되는 풍경은 사진에 담지 않을 수 없다.

산책로
넓은 언덕을 나무로 빽빽하게 채우지 않고 여백을 만들어 둔 것은 신의 한 수. 마치 컴퓨터 바탕화면의 기본 이미지 또는 텔레토비 동산을 떠올리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구도와 각도, 프레임을 잘 잡으면 아주 이국적인 언덕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곳에는 삼각대와 DSLR카메라를 들고 예쁘장한 옷을 차려입은 모델과 함께 찾는 이들이 많다.

작약단지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곳에 유독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시기가 바로 5월이다. 특히 5월 말이면 유적지 한가운데에 조성된 작약단지에 작약 꽃이 만발하는 시기다. 이번 주말에서 다음 주말까지가 개화율이 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작약 꽃이 가득한 이 사진은 작년 5월 말에 찍은 사진이다.
파란 하늘과 녹색 잔디밭 사이에 붉게 피어난 작약은 뚜렷한 보색 배색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선명하고 눈부신 3색의 조화에 눈이 시원시원하다. 그 색상들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는다면 제대로 된 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분홍 작약
작약꽃은 모두 붉은색은 아니다. 간혹 분홍색과 흰색을 띠는 꽃도 있어서 눈길을 끈다. 산들바람을 타고 작약 꽃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장미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고급 지지도 않은, 그저 수수하고 넉넉한 꽃향기가 기분을 좋게 한다.

경덕왕릉
신라의 경덕왕과 이름은 같지만 엄연히 조문국의 왕인 경덕왕의 무덤도 있다. 200여 개의 고분군 가운데 1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 봉분이 없이 오이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는데 의성 현령의 꿈에 경덕왕이 직접 나타나서 원두막을 철거하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봉분을 올리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 제례를 계속 지내고 있다고 한다.

조문국 고분전시관
넓은 유적지 한쪽에 동그란 돔형의 고분전시관이 서 있다. 전시관 내부에는 조문국 사적지에 대한 현황과 발굴 모습, 발굴된 문화유산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동그란 전시공간 한가운데 봉분이 발굴된 모습을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는데 시신과 순장된 각종 토기, 무기 등을 내려다볼 수 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고분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군 사적지에서 약 2㎞ 정도 떨어진 곳에 조문국박물관이 있다. 조문국 고분군에서 뙤약볕 속을 걷고 난 뒤 시원한 건물 안에서 다양한 전시물들을 구경하고 각종 체험을 하면 더위가 가셔진다. 박물관 건물 주변에는 다양한 놀이시설도 있고 그늘과 쉼터도 많아서 쉬어가기도 좋다.

조문국박물관
박물관 입장과 주차는 모두 무료이다. 박물관은 총 3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1층에는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는 가족문화체험실이 있다. 체험실은 유료화 시범운영을 하고 있으며 1000원에서 50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각종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전통탈 만들기, 종이금관 만들기, 한지공예를 이용한 보석함 만들기, 종이부채 만들기, 공룡모형 조립하기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체험으로 가득하다.

박물관 2층에는 조문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실이 있다. 조문국의 역사와 그들의 삶,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박물관 3층은 기획전시실과 옥상정원이 있다.

야외 놀이터
박물관 건물 주변에는 다양한 놀이시설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올여름에 문을 열 물놀이장이다. 물놀이장은 유료 이용이지만 제법 넓고 시설이 잘 돼 있다. 그 외 고인돌 정원, 공룡놀이터, 미로 정원, 난장이놀이터, 장미터널 등 다양한 놀거리가 있어서 마치 하나의 작은 놀이공원 같다. 그 외에 나무그늘과 쉼터도 많아서 천천히 휴식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글·사진= 이재락 시민기자

유적지에서 우리는 역사를 만난다. 역사를 만나는 것은 과거와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하는 과정이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살아간 사람들이 문화유적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조문국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조문국의 문화가 있었고, 조문국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기억하게 된다. 그곳엔 조문국 사람들의 넋이 붉은 작약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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