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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왜 사느냐?’ 답은 먹기 위해서 산다. 일 할 때나, 놀 때나, 출장이나 여행을 가서도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삼시 세끼 해결되는 백세시대 이렇게 좋은 세상에 오래 살아보니 나는 고향이 둘이다. 태어나고 자라며 공부하고 직장도 가지며, 결혼하고 아들딸 키우고 기반도 잡았던 삼백의 고장 상주가 토박이다,

노모(老母)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 위해 글로벌 대구에 살기로 통 큰 결단으로 이사 와서 둥지를 턴 지 벌써 5년, 앞으로 여생을 살아가야 하기에 닮은꼴인 ‘상산벌 상주’와 ‘달구벌 대구’ 두 곳 다 정든 고향, 낯선 고향이나 정겹고 발전 바라는 마음 꿀떡 같다.

부러워하는 철밥통 공직 직장 덕분에 평생 먹고 살도록 해준 상주는 동전앞면 양지의 아등바등한 생존경쟁에 환갑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아늑한 고향산천이다. 십이지 육간이 새로 시작되는 환갑을 스타트로 제2의 인생 출발지 대구는 못다 한 공직의 덕목 봉사와 희생의 삶으로 마무리하는 귀한 세월을 보람차게 살리라,

왁자지껄 덜렁대며 동전 앞면에서 여태껏 벌려온 인생 1막 내리고 동전 뒷면 음지에서 조용히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고 기여하는 조직의 밀알이 되어 간추리고 챙기는 차분한 인생 2막 살며시 올리며 사뿐히 가리다.

지하에는 지하철, 공중에는 지상철이 달리는 도시철도, 거대한 대구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바둑판 같은 도로망에 노선버스, 택시, 승용차, 화물차 꼬리 문 행렬 시끌벅적 하지만 활력이 솟고, 역동감 넘치는 대구도 내겐 멋진 고향이다.

대구와 상주는 낙동강을 낀 주변에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다. 대구 읍성이나 상주 읍성은 역사적으로 큰 고을을 증명하듯 조선 초기 경상감사가 상주에 200년 있다가 대구로 옮겼다. 상주에서는 매년 경상감사 도임순례행사가 열리고 대구에는 경상감사가 지내던 경상감령이 공원이 되어 대대로 기념한다.

조국 근대화를 이룬 최 일선에 농업직 공무원이 앞장섰다. 연고지를 보면 대구농림, 상주농잠 출신이 쌍벽을 이루었다. 군청 농산과, 농촌지도소 공무원이 통일벼 재배로 부자나라 물꼬를 텄다, 식량 증산, 병충해 방제, 퇴비 증산, 가뭄에 하천 굴착하느라고 땀 흘리며 가장 수고를 많은 농업직 공무원 덕분에 우리는 밥은 먹고 산다.

경북대는 대구 캠퍼스와 상주캠퍼스 둘이다. 대구 북부터미널에서 경대 상주 캠퍼스는 직통 버스로 한 정거장 한 시간 거리로 편리하다. 터미널에서 운행 햇수 가장 많은 대구-상주 직통버스가 대구- 상주 광역노선버스도 되어 가끔 타 보면 통학하는 경대 학생으로 붐빈다.

대구에 있던 도청 다음으로 큰 기관인 경북농업기술원이 상주로 유치되어 농업수도를 굳히는 데 힘이 된다, 국가의 보조로 저렴한 의료기관 적십자병원도 대구와 상주 두 곳에 있듯이 대구와 상주는 형과 아우로 닮아 옛날부터 왕래가 빈번하다.

국철 경산~대구 ~구미노선을 경북선 전철화로 상주까지 연장하여 도시철도요금으로 지체 정체 없는 국철 대구 중심부까지 입성이 호형호제하는 대구 상주가 새 통일시대 상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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