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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김종필이 인생의 여정을 마쳤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정부가 고 김종필에 무궁화장을 수여한단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훈장을 수여해 버렸다. 정부가 훈장 수여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내부적 방침이 정해졌다는 이유로 훈장부터 전달했기 때문이다.

서훈은 국무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되어 있는데 무슨 근거로 김부겸 행자부 장관은 훈장을 전해 준 것인가. ‘선 추서, 후 의결’이 관례라고 한다.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는 폼으로 있는가? 국무회의에서 부결되면 도로 회수해 올 셈인가. 민주주의에서 절차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인치가 아니라 법치에 기초해서 사회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뜻도 수렴하지 않고 절차도 밟지 않고 왜 훈장부터 주어 버렸는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망각했는가? 헌법에는 4·19 혁명을 이어받는다고 했다. 4·19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권을 총칼로 전복한 장본인에게 훈장을 주면서 민주정부라고 말한다면 그건 위선이다.

인권유린, 사법살인, 간첩조작을 일삼던 중앙정보부를 법적 근거도 없이 만들고 스스로 부장이 된 자가 김종필이다.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을 규정한 헌법을 유린한 자에게 훈장을 주다니! 시민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문 대통령이 시민촛불을 배신하는 행위 아니고 무엇인가.

생전에 유신잔당이라고 비판하니까 김종필은 “유신잔당이 아니라 유신본당”이라 답했다. 유신정권에 참여해서 영화를 누린 사람이 김종필이다. 김종필에게 훈장을 수여한다는 것은 유신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이래도 되는가? 유신으로 희생된 영령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 정부는 제발 정신 차려라.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때 김종필은 사실상 한국 측을 대표했다. 8억 달러를 이런저런 명목으로 받았지만 청구권 형태의 피해배상금이 아니라 ‘국교정상화 축하금’ 명목으로 받았다. 단돈 8억 달러를 받고 일제 지배에 대한 면죄부를 준 한일협정은 굴욕적일 뿐만 아니라 이후 징용, 성노예 피해 배상에 난관을 조성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김종필은 독도가 한일 관계에 걸림돌이 된다면 ‘폭파해 버리자’는 말까지 하고선 세월이 흐른 뒤 농담이었다고 말한 자다. 독도 관련 합의를 수세적으로 하는 바람에 일본이 계속 시비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쿠데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히틀러다. 선거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는 의미에서 박정희, 김종필 등이 주동이 된 5·16 군사쿠데타와는 다르지만 쿠데타를 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독일에서 히틀러나 부역자에게 훈장을 수여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히틀러 체제 부역자나 찬양하는 자에게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독일이다.

하나하나 따져서 억지로 찾아내자면 히틀러도 ‘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프라에 큰 진진이 있었고 전후 독일의 눈부신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의 토대를 놓았고...’ 등. 이런 논리라면 가치 기준은 무의미해진다. 갖다 붙이기 나름이고 ‘과’가 아무리 치명적이라 하더라고 ‘공’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약산 김원봉은 일제를 공포에 떨게 만들 정도로 혁혁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과 광복군 부사령관까지 역임했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아직도 서훈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시가 독립운동가 80인의 초상화와 어록을 안국역에 전시하면서도 약산을 빼버리는 반역사적인 행태를 보였다. 서훈이 안 되어 전시할 수 없다고 했다.

미 군정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약산은 미국의 조종을 받는 친일 경찰에 쫓겼다. 신변의 위협 속에 38선을 넘지 않을 수 없는 사정도 밝혀졌다. 그런데도 김원봉에게 서훈을 거부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면서도 굴욕적이고 매국적인 한일협정으로 민족정기를 훼손한 인물 김종필에게는 서훈을 하고 있다. 반역사적인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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