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 향한 신라인의 염원 고스란히 녹아있는 '노천박물관'
선사시대 사람이 살았던 삶의 흔적인 선사시대 유적과 150여 곳의 절터, 130개의 불상, 99개의 탑, 13개의 왕릉 등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서로 어울리고 미소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하나의 거대한 야외 종합박물관이다. 남산을 가장 쉽게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능선 아래를 따라 걷는 것이다. ‘동’남산 코스와 ‘서’남산 코스다. 모두 월정교 앞에서 출발한다. 동남산 가는 길은 월정교에서 염불사지까지, ‘삼릉 가는 길’로 불리는 서남산 가는 길은 월정교에서 용장골로 이어진다. 남산의 낮은 곳을 연결해 걸으면서 구석구석 마을과 들판에 자리 잡고 있는 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다. 동남산 가는 길을 먼저 소개한다.
남산 동쪽 문화유적을 잇는 둘레길이라는 의미로 ‘동남산 가는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월정교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짧은 오르막이 두 군데 있을 뿐 대부분 남산 자락을 에둘러 가는 평지다. 도로와 연결되는 길을 나무 데크나 황톳길로 조성해 마음 놓고 주변 풍광을 구경하며 걸을 수 있다. 이정표가 잘 돼 있어서 길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 월정교 남단에서 출발해 인왕동 사지(인용사지)~춘양교지~상서장~불곡마애여래좌상~남산탑곡마애불상군~보리사 미륵곡 석조여래좌상~경북산림환경연구원~화랑교육원~헌강왕릉~정강왕릉~통일전~서출지~남산동 동·서 삼층석탑을 거쳐 염불사지에서 마무리한다. 총 걷는 거리는 약 10㎞가 넘으며 4시간 안팎 걸리지만 문화재를 천천히 둘러 보려면 이보다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 한다.
서라벌대로 고운교 아래를 지나 돌아 올라서면 상서장이다. 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이 난국의 신라를 살려보려고 진성여왕에게 시무(時務) 10조를 올렸던 곳이다. 문이 잠겨 있다면 오른쪽으로 돌아가 최치원 선생 전시관을 거쳐 들어가면 된다. 경주에 있는 최치원 유적지인 낭산 독서당, 황룡사지 남쪽 미탄사지 근처 생가 등은 전부 산업도로 옆이라 차량 소음에 시달린다. 그래서 이 같은 것을 예견하고 말년에 해인사로 들어가버렸는지 모른다. 아래로 내려와 남천 따라 음지와 양지마을 걷다 보면 신라 문화연구에 헌신한 고청 윤경렬 선생 기념관이 있는 양지마을에 잠시 들렀다 간다. 다리 건너 곧바로 시멘트 농로 따라 남산 자락에 들어선다. 짧은 오르막 끝에 ‘금오봉·불곡석불좌상’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에 닿는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갯마을을 벗어나면 오른쪽에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이다. 좌우로 다양한 수종을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어 아름답고, 겨울엔 비움의 여백이 있어 좋다. 화랑교육원을 지나 헌강왕릉 입구 솔숲으로 들어선다. ‘삼국사기’에 보면 헌강왕은 ‘총명하고 민첩하며 글 읽기를 좋아했다. 민가는 이어져 있고 노래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나온다. 처용설화와 처용무로 널리 알려진 탓인지 보름날 무용하는 사람들이 와서 춤을 추곤 한다. 곧바로 정강왕릉으로 가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헌강왕과 정강왕은 형과 동생 사이로 886년 26세에 형이 먼저 죽고, 다음 해 동생이 죽었는데 세상 뜬 날이 7월 5일로 같다. 보름달이 뜬 날 여기오면 이리저리 휘어진 소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너무 아름답다.
솔숲을 따라 내려와 통일전 지나면 이내 서출지가 나온다. ‘삼국유사’에 나온 사금갑(謝琴匣) 이야기로 인해 서출지로 부르고 있다. 원래는 ‘안못’이었다. 여름이면 백일홍과 연꽃, 이요당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