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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삼복더위와 더불어 참매미 외침이 맹렬하다. 첫새벽부터 야밤중까지 줄기차게 울어댄다. 라퐁텐 우화는 매미를 게으름뱅이로 묘사한다. 푸르른 그늘에서 노래나 부르다가 겨울 양식을 동냥하는 불쌍한 처지를 빗댄다. 파브르는 매미라는 곤충의 습성을 몰랐던 탓이라고 잘못을 바로잡는다.

매미의 일생은 슬프다. 애벌레 상태로 흙속에서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먹으며 4년의 세월을 지내다가, 여름날 나무에 올라가 우화하여 성충으로서 2∼3주 정도의 삶을 마친다. 지금 듣는 매미들 울음은 어두운 지하의 인고 같은 수년과 겨우 보름간의 절규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숙연해진다.

불후의 명작 ‘곤충기’를 집필한 파브르도 말한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고 나무라기엔 너무나 불쌍하다고. 나는 석학의 연민에 공감하면서, 오늘밤도 가로수 녹음의 매미들 선율을 들으며 길공원을 산책하리라.

스포츠는 두 가지 모델로 대별한다. 관람 스포츠와 참여 스포츠. 현대의 주종을 이루는 관람 스포츠는 고도로 경쟁적이며 폭력적이기도 하다. 오직 승리를 좇으면서 상대를 적으로 간주한다. 참여 스포츠는 이와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 의욕적인 동참과 상호 관계를 중시하면서 경험으로 자기만족을 얻는다.

관전으로 엔도르핀을 추구하는 월드컵 축구는 관람 스포츠의 전형이다. 잉글랜드의 훌리건은 이성적 만족을 넘어 팀을 자신과 동일시할 정도로 과격화한 케이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잠재된 축구 시합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누군가 축구는 동전 던지기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통계 수치로는 그러하다. 미국과 유럽의 프로 게임을 분석한 결과, 도박사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해 배당률이 낮은 축구 클럽이 이긴 확률은 50% 남짓이다. 농구가 70% 언저리이고 60% 가량인 야구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축구는 의외성이 강한 구기 종목이다.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도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점유율과 슈팅에서 앞섰으나 패배한 크로아티아. 축구는 흐름이고 기세의 싸움이나 유리한 국면이 반드시 승리를 뜻하지는 않았다.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삼색기. 다양한 선수로 구성된 대표팀 멤버를 보면, 파랑과 하양과 빨강의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자유분방한 개인사와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 동등한 교육 기회, 그리고 다문화 감수성이 충만한 열린 사고는 역동성이 차오른다. 이십 년 만의 우승이긴 하나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는 남녀 간의 사랑이란 면에서도 파랑색 자유가 펄럭인다. 전임 미테랑 대통령은 45살 때 19살 팽조를 만나 중년 이후 인생을 함께했다. 그의 장례식엔 부인과 연인이 나란히 참석했으나 누구도 흉보지 않았다. 1977년생인 현임 대통령 마크롱은 15살 고교생 때 연극반 지도 교사인 39살 브리지트를 만났고, 목하 합법적 부부로 살아간다.

개인의 사생활과 정치 이념을 동일시하는 한국인 입장에선 낯선 풍경이나, 프랑스인은 이를 철저히 분리해서 바라본다. 사랑은 사랑이고 일은 일이라는 프랑스식 관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언론도 시민도 그걸 인정한다니 놀라울 뿐이다.

월드컵 축구가 끝나면서 관람 스포츠와 참여 스포츠를 떠올렸다. 우리들 일상은 양 부문의 균형 잡힌 시각이 긴요하다. 각종 운동 경기 구경을 통한 희열감도 물론 요구되나, 백세시대 건강의 핵심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육체의 수고로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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