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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빛과 어두움에 관한 구절이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을 가장 먼저 지으셨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빛이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제일 처음 만드신 건 아닐까.

어둠이 절망이라면 빛은 희망이다. 불빛은 길을 잃은 자에게는 나침반이며 추위에 떠는 이에게는 난롯가이다. 또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자에게는 노스탤지어다. 그것은 처지에 따라 다양한 상념으로 투영된다.

풀벌레 울음 자자한 산사의 적요한 불빛, 술잔이 부딪는 도심의 휘황찬란한 네온, 들판을 유영하는 반딧불이의 형광, 그리고 금가루를 흩뿌린 듯한 은하수의 별빛 등등 수많은 광채들. 그중 가장 호화롭고 다채로운 빛은 불꽃쇼가 아닌가 싶다.

포항국제불빛축제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다. 2004년 당시 골양반 안동에 살던 나는 철강의 메카로 이사를 왔다. 물론 직장 인사 발령을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나, 신천지에 첫발을 내딛는 설렘이었다. 최백호의 노래 ‘영일만 친구’를 흥얼거리며 시뻘건 쇳물이 쏟아지는 고로를 떠올렸다.

그해 여름철 북부 해수욕장(영일대 해수욕장으로 변경)에서 첫 번째 행사가 열렸으니, 나의 포항 생활은 형형색색 축포와 더불어 펼쳐진 셈이다. 인생의 정착지는 직업의 선택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듯하다. 줄곧 내륙에서 살았던지라 바닷가 도회에서 삶 터를 정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말이다.

청포도 알알이 영글어 가는 절기. 호랑이 꼬리가 아련한 동해안 드넓은 백사장. 찰싹이는 파도 소리에 맞추어 밤하늘 채색한 빛살의 춤사위. 인간은 불빛을 만들고 불빛은 인간을 모은다. 암흑을 사르며 만개한 꽃들은 순간에 죽는 번개처럼 황홀히 스러지나, 잔영은 뇌리에 각인돼 추억을 남긴다.

여름밤 상공을 장식한 한바탕 삼매경은 밤 열 시쯤 끝났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모두들 한가득 경탄을 품고서 삼삼오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곳의 뒷모습 풍경이 궁금한지라 관객들 사라진 해변에 자정 무렵까지 머물렀다. 주말의 밤늦은 뒤풀이는 청춘들 차지다. 말보가 터진 듯 왁자지껄하다.

유명 관광지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인파가 붐비는 장소는 대부분 그러하다. 불빛 축제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일정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움직이는 종사자가 있었다. 환경미화원을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이통장협의회·청정바다지킴이·수방사·포스코 패밀리봉사단 같은 조끼가 눈에 띈다. 잠깐 사이에 대형 쓰레기 봉지 더미가 여기저기 쌓였다.

‘돈 버는 사람과 돈 쓰는 사람이 따로’라는 말이 있듯이, 오물 버리는 치들과 오물 치우는 분들은 별개다. 제각기 이기심이 작동하는 이걸 일치시켜야 환경 문제도 해결될 듯하다. 화려한 무대의 뒤편에서 청소하는 노고를 잊지 말자. 봉두난발 같은 어지러운 잔해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내일을 맞을 것이다.

갈수록 힘들고 팍팍해지는 세상살이. 각박한 인심을 정화하는 희원의 불빛은 어디에 있을까. 동해 바다 영일만을 수놓은 불꽃이 세상을 밝히는 광휘이길, 천상에서 내리는 돈벼락 같은 행운이길, 또한 당신의 쪼가리 가슴을 채우는 치유의 환호이길, 하여 가난한 마음이 잠깐이나마 넉넉해지길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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