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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헌경 변호사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영화 안시성을 관람하였다. 전쟁신만 너무 많아 별로였다는 평도 있어 지루할까 생각했는데 거대한 전쟁신을 담은 블록버스트 대작들이 대부분 흥행에 실패한 것에 비해 영화 안시성은 성공적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일각에서는 영화 안시성이 영화 명량과 같이 영웅중심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국뽕영화라는 비판도 있다.

‘정관의 치’라고 불리우며 중국 역사상 가장 강한 나라를 건설하였던 당태종 이세민의 20만 대군을 맞아 고립무원의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겨우 5,000명의 군사로 40배나 많은 당군과 싸워 성을 지키고 고구려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세계 역사상 서너배 많은 군사력을 가진 적군을 맞아 이기는 경우는 더러 있으나 수십배의 적군을 맞아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안시성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의 조선 해군이 울돌목에서 수십배의 적선과 적군을 맞았을 때 12척의 아군 함선 중 11척은 적의 위세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가고 이순신이 탄 대장선 1척만이 적의 앞길을 막아섰으니 거의 초인적인 충무공 이순신이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오버랩되어 떠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수십배의 적군을 앞두고도 민을 아끼고 사랑하며 솔선수범하고 희생하고자 하는 뛰어난 리더의 지휘 아래 군민이 일치단결하여 준비하고 싸웠을 때 강력한 적의 침략에도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몸소 보여주었고 그리고 나라를 지켜냈다. 우리 민족이 중국 변방의 작은 민족이지만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독립한 나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대규모 침략을 몇 번이나 막아내고 이겼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살수에서 무찔러 막아냈고 수십년 후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는 또다시 당태종 이세민의 20만 대군을 물리쳤다. 그로부터 수십년 후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자 당은 신라마저 당에 복속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분연히 일어선 신라는 당나라와 나당전쟁을 벌여 당나라를 물리치고 철령 이남의 땅을 지켜냈다. 그로부터 500년 후 그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거란의 10만대군의 침략을 맞아 칠순의 강감찬 장군은 귀주에서 거란군을 몰살시킴으로써 고려를 지켜내었다. 이러한 대규모 침략을 막아낸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현재 독립국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안시성을 보면서 또하나의 영화 남한산성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도 없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 대의명분만 가지고 입만 살아 분열되었던 조선은 결국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찧으며 조아려야 했다. 그리고 왜국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선조는 백성과 서울 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을 하였다. 명나라의 원병으로 왜군의 침략을 막아내었으나 조선은 명나라에 전시 작전권을 맡겨 싸우고 싶어도 혼자서는 싸울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영화 안시성에서 당군이 안시성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쌓아 올린 토산이 무너진 뒤 수없이 밀려오는 적의 공세 앞에 마지막 고구려의 명운을 걸고 양만춘이 고주몽의 신궁을 쏘아 당태종의 눈에 명중시키고 뒤이어 연개소문의 고구려 지원군이 나타났을 때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흘러내렸다.

1950년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수도 서울과 시민을 버리고 혼자 먼저 수원으로 도망을 갔고 한강다리를 폭파해버렸다. 이승만의 모습은 서울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간 선조임금과 너무나 닮았다. 그리고 이승만은 나라의 작전권을 미국에 맡겼고 미국의 명령이 없으면 싸울래야 싸울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승만은 말로만 북진통일을 외쳤다. 이승만의 모습은 남한산성에 갇힌 주전파 주자학 관료들과 너무 닮았다.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 중국의 대국굴기, 일본의 군사대국화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임진왜란의 뼈아픈 고통과 반성에서 징비록을 썼던 서애 류성룡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조선은 조선인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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