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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며칠 전 시작된 아파트 도색 작업이 며칠째 진행 중이다. 밧줄 하나에 몸을 걸고 흔들흔들 매달린 그,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는 나비가 꽃잎 위에 내려앉듯 가볍게 벽을 짚으며 누렇게 변색된 벽을 하얗게, 파랗게 일깨우고 있었다.

어느 오후, 그가 허공의 작업을 끝내고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걸까, 적어도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할 순간인데…. 그런데 그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본 순간 그 위험한 삶이 어떻게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인지 짐작이 갔다. 그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트로트, 일명 뽕짝이었다.

트로트(trot)는 ‘빠르게 걷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가요의 한 장르인 이것은 그 생동감 있는 리듬으로 희·노·애·락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았기 때문에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 음악은 장르마다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트로트는 그 어떤 정서든 즐거움으로 승화시킨다는 매력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의미도 모르고 신나게 따라 부르는 트로트의 가사를 곱씹어보면 대부분 이별에 대한 가사다. 슬픔을 즐거움으로 변색시킬 줄 아는 음악, 그게 바로 우리의 뽕짝이다.

음악계의 일각에서는 뽕짝이 트로트를 비하하는 말이라고 한다. 트로트는 1914년 이후 미국과 영국 등에서 4분의 4박자 곡으로 추는 사교댄스의 스텝 또는 그 연주 리듬을 일컫는 폭스트로트(fox-trot)가 유행하면서부터 연주용어로 굳어졌다고 한다. 우리의 트로트도 이 폭스트로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트로트는 외래어일 뿐 우리의 굳센 정서를 반영하는 말은 뽕짝이다.

우리나라에 트로트풍의 음악이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당시 일본에서는 그들의 고유음악인 엔카(演歌)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신민요풍의 가요와 비슷한 리듬을 가지고 있었는데 1930년대 조선어말살정책이 시행되면서 우리의 가요가 일본의 엔카에 동화되어가고 말았다. 우리의 전통가요보다는 엔카풍의 대중가요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광복 후 우리의 주체적인 가요 제작과 보급에 힘쓰는 한편, 팝송과 재즈 등이 도입되면서 우리만의 새로운 가요가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뽕짝이 바로 그것이다. 엔카에 동화된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고 우리만의 정서가 반영된, 우리만의 리듬을 살린 노래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니 뽕짝은 얼마나 갸륵하고 대단한 우리 음악인가.

얼마 전 한 친구가 나이가 들면서 자기도 모르게 좋아진 게 뽕짝이라고 겸연쩍게 말했다. 뽕짝이 트로트를 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듯 그 노래를 좋아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을 주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편견도 재고해봐야 할 문제이다.

지금 트로트는 우리만의 창법으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독특한 우리의 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에게 면면히 이어 온 굳건한 역사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 뽕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은 그 노래를 통해 위안을 얻고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태풍이 지나갔지만 들판의 벼들은 아랑곳없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고 보도블록에 떨어진 단풍잎은 변함없이 새빨갛다. 이런 신나는 가을의 길목에서 뽕짝 한 곡 정도는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사를 넘나드는 허공에 매달려서도 즐거울 수 있는 이유가 거기 있는데….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김선동 kingofsun@kyongbuk.com

인터넷경북일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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