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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영화 ‘나바론 요새’는 독일군 거포를 폭파하는 연합군 특공대 임무를 그린다.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섬의 깎아지른 암벽을 기어올라 폭탄을 설치하는 장면이 흥미진진하다.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작품. 당시 수작으로 평가됐다.

추자도의 나그네가 심심찮게 접한 ‘나바론’이란 외래어는 생경했다. 전망도 괜찮고 깔끔한 숙박소를 만난 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만족감. 해안가 언덕 위에 자리한 곳으로 항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상호가 나바론 민박집이고 아래층은 나바론 식당이니, 우리의 ‘일박 이일’은 나바론에서 숙식하는 여정인 셈이다. 게다가 포구엔 나바론호 어선이 정박해 있고 도로변엔 나바론 스타렉스가 주차돼 있다. 나바론 절벽을 감상하며 나바론 하늘길을 걸었으니, 이번 기행은 나바론에서 시작해 나바론으로 마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 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이다. 면소 입구에 서서 문지기처럼 맞이하는 돌하르방. 그제야 탐라에 속함을 실감한다. 그 속살이 궁금했다. 인구는 1820명, 택시는 없고 공용 버스 두 대가 고작이다. 하나뿐인 주유소는 기름값이 전국에서 가장 비싸기로 소문났다. 휘발유는 리터당 1910원이고 경유는 1700원. 고속도로 셀프 주유로 1573원에 넣었으니 가격 차이가 크긴 하다.

바로 옆에 경찰 파출소가 있다. 한데 위치가 묘하다. 아마도 전국 유일의 건물 이층에 장소한 치안센터가 아닌가 싶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연유가 있으리. 계단을 올라 복도 끝의 출입문. 지금은 신고 출동 중이란 안내문.

고대 로마는 다신교 다문화 세계였다. 황제들도 죽으면 신으로 추앙됐고 신전을 지어서 바쳤을 정도다.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가 그랬다. 판테온을 건립해 속주의 온갖 잡신을 모두 아울렀다. 신의 수가 무려 30만에 이른다. 제국의 다양한 민족과 종족을 일체화하는 통치의 방편.

한국의 섬들은 제각기 수호신을 가졌다. 연평도의 임경업 장군, 완도의 장보고 장군이 있다면 추자엔 최영 장군이 그러하다. 탐라 목호의 난을 진압코자 관군을 이끌던 최영은 풍랑을 피해서 추자도로 왔다. 그때 어민을 도와준 은혜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소재지 고샅길에 1900년 무렵 축조된 우물 ‘큰 샘’은 사당제에 사용한 제수.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유배’는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이다. 민가엔 귀양이란 말을 썼다. 사화와 정쟁이 얼룩진 조선은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했으며,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유배지로 선호됐다. 광해군·송시열·김정희가 대표적.

이와 관련하여 추자도는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이 있다. 첫째는 신유박해 와중에 발생한 황사영 백서 사건과 연관된 ‘황경한의 묘’이고, 둘째는 유배 문학의 걸작인 ‘만언사’이다. 대전별감 안조환이 국고를 탕진한 죄목으로 일 년 반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는 잘못을 뉘우친 고생담이 구구절절 묘사된 서찰을 한양으로 보냈고, 이를 읽은 정조 임금을 감복시켜 해배됐다.

장안의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 가사이나 주민들 입장에선 섭섭하기 그지없다. 추자도를 ‘천작지옥’ 즉 하늘이 만든 지옥이라 표현한 것이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랴. 홍싯빛 지붕이 검푸른 물결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어촌들, 올레길 도처 쪽빛 바다 닮은 쪼그만 야생화들, 갑판서 만난 캐나다인 부부가 건네준 메이폴트리 캔디, 묵리 마을 갯바당 라면은 가을빛 지상낙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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