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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의 신삼국유사] 67. 효소왕대의 죽지랑(竹旨郞)
[윤용섭의 신삼국유사] 67. 효소왕대의 죽지랑(竹旨郞)
  • 윤용섭 전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 승인 2018년 11월 01일 21시 49분
  • 지면게재일 2018년 11월 02일 금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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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공의 부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했다
부산성
제32대 효소왕대(孝昭王代)에 죽만랑(竹曼郞, 또는 죽지랑, 지관)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 혹은 得谷) 급간(級干)이 있어서 풍류황권(風流黃卷)에 이름을 올려놓고 날마다 나오다가, 10일이 넘도록 보이지 않았다. 죽만랑은 득오의 어머니를 불러 그대의 아들이 어디 있는가를 물으니 어머니가, “당전(幢典) 모량부(牟梁部)의 익선아간(益宣阿干)이 내 아들을 부산성(富山城) 창직(倉直)으로 보냈으므로 빨리 가느라고 미처 그대에게 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라 하였다. 죽만랑이 말한다.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로 간 것이라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이제 공사(公事)로 갔다니 마땅히 향연을 베풀어야겠습니다.” 이에 떡 한 그릇과 술 한 병을 가지고 좌인(左人; 우리말에 개질지라는 것이니 노복을 말한다)을 거느리고 찾아가니 낭(郎)의 무리 137명도 위의(威儀)를 갖추고 따라갔다.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득오실(得烏失)이 어디 있는가 물으니 문지기가, 익선(益宣)의 밭에서 예(例)에 따라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낭은 밭으로 찾아가 가지고 간 술과 떡을 대접하며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였으나 익선은 굳게 반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사리(使吏) 간진(侃珍)이 추화군(推火郡) 능절(能節)의 조(租) 30석(石)을 거두어 싣고, 성안으로 가고 있었다. 죽만랑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는 풍미(風味)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이 꽉 막혀 통하지 않음을 비루하게 여겨, 가지고 가던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휴가를 주도록 함께 청했으나 그래도 허락받지 못했다. 이에 진절(珍節) 사지(舍知)의 말안장을 주니 그제야 허락했다. 조정의 화주(花主)가 이 말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서 익선을 잡아 그 추한 때를 씻으려하자, 익선은 도망하여 숨어버렸다. 그래서 그의 맏아들을 잡아갔다. 때는 중동(仲冬) 몹시 추운 날인데 성안에 있는 못에 목욕을 시키자 얼어 죽었다.

효소왕이 그 말을 듣고 영을 내려 모량리 사람으로 벼슬에 오른 자는 모조리 쫓아내고 승의(僧衣)를 입지 못하게 하였다. 만일 승려가 된 자라도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칙사가 간진(侃珍)의 자손을 올려서 칭정호손(秤定戶孫)을 삼아 표창했다. 이때 원측법사(圓測法師)는 해동의 고승이었지만 모량리 사람인 때문에 승직을 주지 않았다.

*원측은 현장법사의 높은 제자로서 당나라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

처음에 술종공(述宗公)이 삭주도독사(朔州都督使)가 되어 임지로 가는데, 마침 삼한에 병란이 있어 기병 3천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했다. 일행이 죽지령에 이르니 한 거사가 고갯길을 닦고 있었다. 공(公)이 이를 보고 감탄하며 칭찬하니 거사도 공의 위세가 놀라운 것을 보고 좋게 여겨 서로 마음 속에 감동한 바가 있었다. 공이 고을의 임소에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나서 꿈에 거사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공의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다. 놀라고 괴상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으니 그곳 사람들이 거사가 죽은 지 며칠 되었다하였다. 사자(使者)가 돌아와 고하는데 그가 죽은 날이 바로 꿈을 꾸던 날이었다. 이에 공이, 필경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다 하며, 군사를 보내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을 조성하여 묘소 앞에 세워 놓았다. 공의 아내가 그 꿈을 꾸던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죽지라고 했다. 이 죽지랑이 자라서 벼슬을 하고 유신공(庾信公)의 부수(副師)가 되어 삼한을 통일했다. 진덕·태종·문무·신문의 4대에 걸쳐 재상으로서 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곡이 죽만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다(모죽지랑가).



간 봄 그리매

모든 것이야 우리 시름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 주름살 지네

눈 돌칠 사이에라도

만나 뵙고 싶어라

낭이여, 그리운 마음 가는 길에

다북쑥 마을에 잘 밤 있으리.

(양주동 해석을 표준으로 다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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